삼성전자와 함께하는 무한도전? 협찬이 프로그램 삼킬라
삼성전자와 함께하는 무한도전? 협찬이 프로그램 삼킬라
협찬고지규칙 개정안 논란… “방통위, 공공성 버리고 사업자 이해만 대변”

‘삼성전자와 함께하는 무한도전’, ‘LG디오스와 함께하는 집밥백선생’. 앞으로는 프로그램명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 방송광고 시장의 축이 ‘광고’에서 ‘협찬’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이 같은 규제완화가 방송의 사유화를 앞당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의 상업화를 경계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가 되레 협찬시장 파이 키우기를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6일 방통위가 협찬주명을 프로그램 이름에 쓰는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에 다르면 협찬주명 대신 구체적인 상품명, 상표 또는 협찬주의 소재지를 쓸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함께하는 무한도전’뿐 아니라 ‘갤럭시S6와 함께하는 무한도전’도 가능하다. 프로그램 제목 협찬주명 고지는 예능과 교양, 드라마 등의 장르에서 허용된다. 사실상 광고지만 형식적으로는 협찬이기 때문에 상업광고를 편성하지 않는 KBS1과 EBS2 역시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을 붙일 수 있다.

협찬주명을 프로그램명에 붙이게 되면 시청권 훼손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 협찬주가 개입할가능성이 크다. MBC PD출신인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해본 입장에서 이번 협찬고지 규제완화는 PD에게는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계약”이라며 “예컨대 프로그램 제목에 삼성이 붙을 경우 타 기업이 해당 프로그램의 간접광고를 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협찬과 간접광고 모두 삼성이 독식하고, 프로그램 내용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협찬주명 방송프로그램 제목고지 예시. 사진=방통위 제공.
 

이번 사안을 협찬제도와 광고시장 전반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고의 경우 판매대행사를 둬 광고주가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했는데 협찬은 방송사에서 직접 계약을 맺는 구조다. 즉, 협찬 규제완화는 곧 광고시장의 음성화와도 직결된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사실상의 ‘제목광고’ 도입으로 방송광고시장의 왜곡이 초래된다”면서 “향후 광고주들이 광고보다 협찬주명을 제목에 포함하는 제목광고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광고시장보다 투명성이 낮은 협찬시장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MBN 미디어렙 영업일지에서 드러난 불법적인 광고영업행태를 보면 대부분 협찬을 통해 이뤄졌지만 이를 ‘고지’하지 않았다. 영업일지에 따르면 MBN의 ‘경제포커스’는 한국전력으로부터 협찬금을 받고 한전의 자원외교 성과를 보도했다. ‘천기누설’에서는 한국인삼공사로부터 협찬을 받고 아로니아의 효능을 강조하는 방송을 만들었다. ‘MBN 영업일지’는 MBN 미디어렙 영업 1팀의 영업일지를 뜻하는데 미주 한인 주간지 ‘선데이저널’이 해당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MBN미디어렙 측은 영업일지 내용은 일종의 메모성격이라며 예산집행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다.

협찬은 기존에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상황에서 1999년 통합방송법을 제정하면서 제도화한 것이다. 제도화 이후 협찬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방통위에 따르면 2014년 방송사업자 광고매출이 전년 대비 5.4% 줄어든 데 반해 협찬매출은 24% 증가한 5358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광고매출은 1864억 원 줄어들었으나 협찬 매출은 1296억 원이 증가했다. 협찬은 특히 종편 매출신장의 효자 역할을 했다. TV조선과 JTBC의 2014년 협찬매출액은 2013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채널A의 협찬매출액은 전년 대비 7배나 늘어났다. 물론 음성화된 협찬액은 이보다 큰 규모일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작 협찬의 허용범위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방통위의 규제 역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에 협찬매출은 반영되지 않고 광고매출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협찬주를 프로그램 제목에 노출해도 광고총량 규제 대상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규제기준을 마련해야 할 방통위는 규제완화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최성준 방통위원장부터 “방송시장 활성화를 위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신유형 광고가 나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방통위가 추진중인 가상광고 규제완화, 프로그램 고지 제한시간 폐지 추진 역시 같은 맥락이다.

   
▲ 언론노조 등 시민사회단체는 1일 오후 KT 광화문지사(구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찬 규제완화를 반대했다. 사진=언론노조 제공.
 

방통위는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시사, 보도프로그램에 대한 협찬 가능성도 열어둬 논란이 예상된다. 기존 방송법의 ‘협찬고지에 관한 규정’은 ‘협찬고지의 예외사항’을 두고 있는데 표현이 모호해 ‘협찬과 협찬고지 모두 불가능하다’는 뜻인지 ‘협찬은 가능하지만 협찬고지를 할 수 없다’는 뜻인지 불분명하다. 입법취지와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면 ‘협찬고지’와 ‘협찬’은 같은 개념으로 사용돼 협찬고지가 안 된다는 건 협찬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방통위는 손쉽게 협찬 규제완화를 추진하기 위해 협찬이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둔 후자로 해석하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방송협찬 문제점 및 개선방향 분석보고서’를 내고 “방통위의 논리대로라면 보도프로그램에서 협찬을 받고 편향된 뉴스를 내보내더라도 ‘고지’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고, 도박업체나 사채업자에게서 협찬을 받아도 고지만 하지 않으면 문제 삼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의원은 “협찬의, 협찬에 의한, 협찬을 위한 방송이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라며 “(방통위가) 협찬제도의 공익적 가치와 공공성은 내팽개친 채 오로지 사업자 이해만 대변한 채 ‘광고효과’와 ‘재원조달 확대’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참에 협찬에 대한 명확한 규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민희 의원은 협찬의 허용범위를 규정하는 ‘방송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협찬규제의 틀을 마련할 계획이다. 앞서 유승희 새정치연합 의원은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을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문제는 단순히 제목에 협찬주 이름이 들어가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SBS미디어렙은 SBS 대주주인 태영건설 소유의 인제스피디움을 지속적으로 방송에 노출했다. 규제완화가 되면 대놓고 방송이 사유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정안은 9월 중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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