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전공했고 현재도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임흥순이 만든 첫 장편 다큐 ‘비념’은 이질적이면서도 기이한 힘이 있는 다큐였다. 제주 4·3 사건이라는 거대한 아픔을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파고 들었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기본적인 다큐의 관습을 따르긴 했지만, 그는 기존의 독립 다큐 감독들이 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인터뷰를 배열하고 사운드를 조절했으며 기이한 연결 화면을 삽입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게 만들었다. 임흥순 다큐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지금 그의 다큐는 한국 독립 다큐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언젠가 친한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독립 다큐를 하는 감독들은 이상한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이 하는 작업이 옳다고 여기며 관객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여기에 더해 각 감독마다 소재에 대한 선점 욕망도 강한데, 문제는 그것을 여전히 오래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여러 생각을 했다. 지금 독립 다큐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감독들의 어려움과 저 불굴의 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지적들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예리한 지적은 많은 다큐 감독들이 소재주의에 빠져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감독들이 많은 소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이상하게도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온다. 차이가 별로 없다는 지적.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임흥순의 신작 ‘위로공단’을 보면 약간의 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그의 다큐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새롭다. 그는 마이클 무어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관객과 쉽게 호흡하면서 동시적 화법으로 다가가지도 않고, 내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면서 일방적으로 관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른 감독과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활용하지만, 그 인터뷰는 정형화된 딱딱한 인터뷰가 아니라, 왠지 정감이 있는 인터뷰가 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위로공단’에서는 인터뷰가 영화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 영화 ‘위로공단’ 포스터
 

그렇다고 ‘위로공단’이 그 시대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바탕으로 기억을 상기하게 만드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는 분명 인터뷰를 중심으로 하면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도록 만들었지만, 인터뷰가 보는 이를 강압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것이 인터뷰를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하거나 당시 자신들을 착취했던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당신들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회고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 나오는 눈물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인데 그 묘한 태도가 사람을 파고들게 만든다.

1960년대에 건설한 구로공단에 근무하던 그 많은 ‘공순이’들은 수출 역군, 또는 수출 전사로 칭송받았지만 실제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했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좋지 않았다. 숱한 사건을 겪으며 지독히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했던 이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진다. 이것은 분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며 그것을 통해 더욱 성장하려는 태도의 반영으로 읽힌다.

   
▲ 영화 ‘위로공단’ 스틸컷
 

해서 감독이 영상 중간에 넣은 여러 재현 장면들이 깊이 다가온다. 눈을 가리고 옥상에 서있는 여공의 모습, 숲으로 걸어가는 모습,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철새들의 몸부림 등이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 회상 화면과 인터뷰 사이에 등장하는데, 기묘하게도 영화적 연결이 자연스럽다. 얼굴을 가린 것은 이름 없는 이들을 기리는 작업으로 보이고, 숲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이제서야 안정을 취하는 모습이거나 당시 안정을 취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담은 것 같다. 하늘의 나는 철새를 보며 고뇌했던 여공들의 심미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편집적 리듬과 의도가 성공적이다.

결국 임흥순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거나 후회를 하는 이들의 허탈한 모습을 담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재생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인터뷰로 만들기 위해 영화 중간중간에 기막힌 영상을 삽입해 ‘미술적 마술’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는 노동 문제를 다루면서도 강압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응시하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과거의 그녀들을 기리고 위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재의 문제들, 이를 테면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의 이야기, 최근 문제가 되었던 항공사의 직원들, 마트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고 많은 현재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생생하게 지금 이 땅의 이야기를 한다.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도 없는 우리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직시.

   
▲ 영화 ‘위로공단’ 스틸컷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공장에서 벌어지는 여성 착취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1960~70년대 구로공단이라고 할 수 있는, 동남아의 한국업체가 운영하는 공장에는 여전히 착취가 있고 억압이 있다.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을 감독은 정직하게 기록한고 또 기록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만나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임흥순의 다큐는 이미지의 다큐이다. 이미지가 주는 힘이 상당하다. 그러나 임흥순은 미술적 실험이나 영화적 실험을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현실에 깊이 개입한다. <위로공단>에서는 과거의 여성 노동자들만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어렵게 살고 있는 여러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를 뒤돌아보고 성찰하고 현재를 냉정히 응시하게 만든다. 실험적인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해 들어가는 감독의 그 자세, 태도가 나는 참 좋다.

   
▲ 영화 ‘위로공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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