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하고 있습니다! 불러만 주십쇼~ 충성” 
“전역 4일째지만 대기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전투할 준비 되어있다. 북한 개새키들 덤벼라”
“덤벼라 이날을 위해 팬티 양말 위장크림 안 버렸다”
“긴말 필요없이 파티원 모집한다 준비된 놈만 와라”

대한민국 육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린 댓글이다. 자신을 예비역이라고 밝힌 이들은 군화와 군복 등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육군 공식 페이지는 지난 21일 오후 1시 32분께 올린 글에서 “어제 북한의 무력도발 이후 페이스북에 달린 예비역들의 댓글”이라며 “정말 든든하다”고 밝혔다.
 
육군 공식 페이지에는 전역을 연기한 육군 병사 사례도 소개됐다. 육군은 병사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며 “육군 50여 명의 장병들이 전역 연기를 희망했다. 박수를 보냅니다. 손바닥이 뜨거워지도록!”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는 해당 게시물을 공유했다.

언론도 동조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24일 오후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로 촉발된 위기상황에서 군 장병들의 자발적인 전역 연기가 잇따르는 가운데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지키던 해병대원이 전역을 미뤄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SBS뉴스 홈페이지에도 실렸다. 

 

   
▲ 육군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사진. 사진=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YTN도 24일 오전 “2030세대의 군복 인증샷 물결이 지뢰 도발에 이은 포격 도발로 남북한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우리 군에 힘을 보태고 있다”며 “이 같은 예비군들의 인증샷에 대해 "당신들이 있어 아직은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라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는 격려의 댓글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미담으로 보도한 셈이다. 

신문도 다르지 않다. 국민일보는 지난 22일 “군복있고 총 쏠 수 있다 예비군 SNS 인증 ‘뭉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국방부와 육군 페이스북에 ‘예비역 결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집에 있는 예비역 전투복을 올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겠다는 다부진 의지를 표명한 것인데 네티즌들은 ‘멋지다’는 찬사를 보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와 언론의 이 같은 태도가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정부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부 예비역이나 병사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며 “하지만 보편적 정서는 아닌 것 같아 사회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일어나는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은 병사들이 군기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언론에서 이런 사례를 보여준다고 해도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런 사례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사람들의 사례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거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YTN 보도화면 캡쳐
 

이대훈 성공회대학교 평화학연구교수는 “대치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이 마치 이것이 바람직한 애국이나 국방의 의무인 것처럼 부추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정치적인 목적이나, 이념적인 목적으로 청년층의 군사적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화연구가인 임재성 변호사는 “안보 상업화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며 “먼저 북한발 공포를 깐 이후에 이에 맞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림’이 완성된다”며 “하지만 이는 국가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기꺼이 싸우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진정하시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말해야 한다.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전쟁 고취'만 남고 ’진짜 문제‘는 사라지고 있다. 임 변호사는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지뢰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제대로 밝히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물으면 되는데 지금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만 남았다”며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현재 상황을 어떻게 해결돼야 하는지 이야기 해야한다. 하지만 재미가 없으니까 안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훈 교수도 “현재 상황을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어이없는 일들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언론은 정부의 말만 그대로 쓸 것이 아니라 왜 다수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지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간의 가장 폭력적인 행위인 전쟁을 단순하고 조급하게 다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언론이)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안보 팔이’가 실제 전쟁 발발에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2004년 자사의 이라크전 보도가 부시 정권의 전쟁 명분을 강화해준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밝히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전쟁 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간주되는 대표 기사 28건의 목록도 공개했다. 지금 한국 언론이 참고할만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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