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과 대만은 선거 때문에 뜨거울 것이다. 한국은 총선이 열리고, 대만에서는 2016년 1월 16일 대통령인 총통(總統)과 국회의원인 입법위원(立法委員) 선거가 실시된다. 현재 여야 후보는 확정돼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 당일 모든 이들은 TV 앞에 앉아 개표 방송을 볼 것이다. 한국의 개표방송을 몇 번이고 지켜봤지만 자정까지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의 인구밀도는 한국보다 더 높음에도 대만의 선거 개표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각 방송사들은 검표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실시간 득표상황을 집계한다. 보통 투표는 오후 4시에 끝난다. 선거결과는 오후 6~7시 사이에 나온다. 중앙선거위원회 개표보다 훨씬 신속한 것이다. 그러나 대만 언론인들은 방송사 개표 결과를 믿지 않는다. 불신의 계기는 바로 2004년 대선 때였다.

   
▲ 2004 대만대선 결과. (사진=양첸하오)
 

2000년 여권은 분열돼 당시 야당인 민진당(民進黨) 첸쉐이볜(陳水扁) 후보는 어부지리를 획득했다.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와 국민당에서 이탈한 친민당(親民黨) 송추위(宋楚瑜) 후보를 따돌리고 대만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뤘다. 4년 후 범야권에서 롄 씨가 총통, 송 씨는 부총통(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단일화가 성사됐고, 연임 목표로 한 첸 총통에 도전했다.

당시 여야 후보는 박빙세였는데 민진당과 사이가 좋은 못한 대다수 대만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 당선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하지만 선거 전날 첸 총통과 루셔우롄(呂秀蓮) 부총통은 선거유세 과정서 총격을 당했다. 당장 어느 후보가 이길 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 찾아왔다.

문제는 투표가 끝난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방송사 개표였다. 오후 4시54분 케이블방송국 개표는 이미 900~1000만표에 달했다. 개표율 68% 수준의 수치였다. 보도채널을 포함한 방송국 10곳 가운데 친(親)민진당 성향 채널 2개를 제외한 나머지 8곳은 렌 후보가 0.8~3%P 정도로 첸 후보를 앞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위가 오후 5시 57분 3.5%를 개표한 시점, 2시간 동안 롄 후보가 앞서고 있던 상황이 반전됐다. 그 후 개표 끝날 때까지 첸 후보의 리드(lead) 국면이 지속됐다. 같은 시간에 방송국 개표 수는 이미 1,100만표, 즉 개표율 75%가 됐고 렌후보가 여전히 0.8%P로 앞섰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방송국 개표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심지어 약 20분 동안 일부 지상파 방송의 개표는 한 표도 늘지 않았다. 뜻밖의 방송 개표에 많은 시청자들은 곤혹스러웠다.

방송사 표수가 오후 6시 이후 반전됐다. 그때 개표율은 87% 상태. 개표가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판세가 뒤집어졌다. 국민당 지지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되레 선거위가 선거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오후 7시 이후 각 방송사에서 황당한 현상이 나타났다. 첸 후보가 651.7만 표이고 롄 후보가 638.3만 표를 얻고 있다고 했는데, 선거위가 최종적으로 발표한 전국 득표결과를 초과한 것이다. 친 민진당 매체인 보도 전문채널 SET(三立新聞台)과 선거위 결과를 인용한 대만공공방송(公視,PTS)을 제외한 모든 방송사에서 표 초과 현상이 이어졌다. 그 후 개표수가 살그머니 줄었다. 

결국 민진당 첸쉬이볜 후보가 647.1만 표로 644.2만 표를 얻은 국민당 롄잔 후보보다 0.21%P 앞섰고, 선거위는 오후 9시15분 첸 총통 연임을 발표했다. 국민당 롄 후보는 선거결과에 불복했다. “불공평한 선거”라고 비판하면서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 개표를 재검정하라고 요구했다. 

   
▲ 2004년 4월10일 선거결과를 받아드리지 못한 시민들은 경찰한테 화염병을 던지면 거세게 반발했다. (사진=대만 자유시보)
 

당시 분노한 국민당 지지자들은 총통부 앞에 모여 농성과 시위를 벌였고, 수도 타이베이를 포함한 일부 도시에서는 폭력적인 충돌까지 있었다. 최고법원은 재검정을 통해 선거무효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혼란스러운 대선이었다. 이러한 논란을 일으킨 주체는 선거위가 아니라 책임감이 없는 대만 언론이었다. “시청자들은 제일 많이 개표한 방송국을 본다”,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는 표를 조금 조정해도 된다”는 심리를 이용해 표 수를 조작하는 것이다. 실제 표 수를 제일 많이 조작한 방송국이 시청률 면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언론이 대중의 신뢰를 잃은 까닭이 되기도 했다. 질서 없이 케이블방송 시장이 개방된 이후 벌어진 악성 경쟁 탓이었다.

이후 선거 국면에서 방송국들은 공동 집계하거나 국민당이 통계낸 집계를 인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여전히 방송사에서의 표 집계는 과잉되고 있다. 한 기자는 “표 조작은 여전하다”며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제어하지 못한 결과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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