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정전협정이 62주년을 맞았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한 협정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은 맺어지지 않아 불안한 평화가 한반도에서 지속되고 있다.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은 평화협정 추진을 외면하고 중국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상황인데 비해 북한은 적극적이다.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국이 아닌 상태여서 한반도 준전시 상황 청산에 제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주로 미국 입장을 추종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는 언제든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군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적 해법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면서 한사코 평화협정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한반도는 가까이는 수년전부터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적 해결 모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자칭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아닌 핵 군축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미국은 물론 남한 미군부대 등을 핵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남한은 북한 도발 시 도발 원점과 지휘부까지 타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수년전부터 북한 붕괴론을 기반으로 북에 대한 봉쇄와 제재조치를 유엔 등을 중심으로 강화면서 대북 교류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 또는 왜곡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군사적으로 개입할 조치를 미국의 적극적 협조 속에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하면서 미래의 한반도 침략전쟁을 예비하는 것으로 우려된다. 동북아 전반적 상황은 한반도 준 전시상태의 평화적 해법과는 거리가 자꾸 멀어지고 있다.

정전협정은 1953년 유엔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한국 전쟁에서 전투 행위를 멈추자고 서명한 휴전협정이다. 정전협정은 남북간에 전쟁을 완전 종식시키고 정치적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킬 평화협정을 추진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지만 아직껏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나 미국 등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정전협정이후 최초로 이 협정문의 일부를 공식 폐기한 것은 미국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도 대표하는 미군은 1957년 6월21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유엔군 사령부는 정전협정 13조(새로운 무기 반입 금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북측에 통보했다. 미국은 이런 통보를 하기 전에 북한이 이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은 그 다음해인 1958년 1월 단거리 핵미사일과 280mm 핵 발사 대포를 주한미군에 반입하고 이어 1959년 중국과 소련을 사정권 안에 둔 크루즈 핵미사일을 반입했다.

당시 북한은 핵전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전방에 배치해 미국이 북에 대해 핵무기 사용 시 미군이나 한국군도 핵 피해를 입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1963년 소련과 중국에 핵무기 개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남측에서 논란이 된 전방지역의 땅굴도 북한이 핵전에 대비하기 위해 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전협정과 관련해 남북이나 유엔 등이 남북은 70년대 이래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였지만 평화협정 추진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은 1972년 7·4공동선언과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상호간 불가침을 선언했지만 이는 정식 조약도 평화조약이 아닌 것으로 북측이 주장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1975년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1996년 유엔안보리는 의장성명을 통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기 전에 정전협정이 철저히 준수될 것을 강조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무용론을 오래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준수치 않을 것이라고 1994년, 1996년, 2003년, 2006년, 2009년, 2013년에 최소 6차례 발표했고, 정전위원회 불참을 공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판문점에서 연락관을 통해 접촉하는 등 정전협정의 일반적 조건은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2013년 3월 남북한간의 불가침 협정을 폐기한다고 발표하면서 핵 선제 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반도의 위기는 껍데기만 남은 정전협정을 다른 실효적인 군사, 정치적 협정으로 대체하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다. 한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핵무기 등을 고려해서 군의 전시작전지휘권조차 미국에게 계속 행사하도록 맡긴 형편이어서 외교, 군사적 자주권 행사를 통한 한반도 당사자다운 홀로서기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자체 보유 핵무기가 아니면 중동의 이라크나 리비아 꼴이 될 것이라면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고 이를 지속할 기세다.

북한의 법적 위상은 유엔 회원국과 같이 국제법상으로는 국가인데 반해, 국가보안법과 같은 한국 국내법으로 보면 상종하면 신세 조지는 반국가 단체다. 이런 2중적인 북한의 법적 위상은 국내에서 평화통일 운동이 자칫 친북 운동으로 처벌 또는 탄압 받는 것과 같은 공안정국이 때만 되면 등장하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부터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집중 검토했고 정전이후에도 북에 대한 핵 위협을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를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전략 주요 지역으로 삼아 90년대 초까지 매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해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군사훈련을 매년 실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시작되어 결국 소형 핵무기가 개발되어 미 본토까지 공격할 상황이 되었다는 추정이 공공연한 사실로 언급되고 있다. 핵무기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모습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진즉 체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까지 만들었지만 북한의 달러 위폐 사건을 터뜨리면서 그 이행은 중단되었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북한이 가짜 달러를 만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이란과의 핵협상을 타결 지은 후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의 진정성이 아닌 객관적 검증을 통한 협상이행이 가능하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는 북에 대해서 언급하는 상투적인 ‘진정성 먼저’와는 다른 논리다. 미국이 상대에 따라 내미는 논리가 다르고 그것이 국제 정치를 요리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이라는 것이 이란과 북한 핵 협상에서 드러난 것이다.

현대 과학의 발달은 미국과 러시아가 상호 검증 속에 전략 핵무기 감축 협상을 수십년간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에도 이를 적용하면 되지만 한미 두 나라는 이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계속 유지하고 6자회담 재개나 이행을 반대하면서 주한미군이 중국의 목에 칼을 겨눈 것과 같은 전략적 이익을 동북아에서 유지, 증대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1958년 핵무기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서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무기를 한국에 반입할 수 있고 한국은 이를 승인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반입 의사에 한국은 반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최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의 한국 반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조약에 따르면 사드 문제는 미국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주한미군에 배치할 있고 단지 한국이 한미행정협정, 즉 소파에 의해 그 비용을 얼마나 대느냐 하는 것만이 협의사항이 될 뿐이다.

   
▲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미국의 고(高) 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도입을 추진하는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국내 정치권이나 대부분의 언론은 한국이 마치 반대할 권한이나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보만을 양산할 뿐 군사주권이 원천적으로 전무한 한국의 실상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미국이 주도하는 정전협정 구도는 더욱 강화되면서 평화협정 전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반도 정전협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국제법상 정전협정 서명국이 평화협정 추진의 주체가 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유엔이나 중국의 역할이 기대된다. 특히 중국은 유엔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 노력을 거의 않는 것으로 비춰진다. 중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도 평화협정 문제에 함구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반도가 정전협정 체제 속에서 전쟁 발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은 달성될 수 없다. 한반도 당사자의 하나인 남한 정부는 장기화되는 저성장 경제 침체 원인의 하나가 한반도의 전쟁 위기 지수가 높다는 구조적인 이유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전쟁 위기 해소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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