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양첸하오 BBC 월드서비스 중국어판·대만공공방송(PTS) 객원 서울특파원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양첸하오는 지난 1월 BBC 중국어판에 "한국방송국 MBC, 자사 비판한 PD 해고 파장"이라는 기사를 게재해 MBC 권성민 PD 해고 소식을 중국에 알린 바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 현장과 미디어 산업, 특히 방송의 공공성 이슈에 관심이 많은 양첸하오는 지난 5월 미디어오늘에 "외신기자가 바라본 MBC 파업과 그 이후" 라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양첸하오 칼럼은 한국과 대만을 넘나들면서 언론 현장의 고민을 담아내는 기획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난 칼럼에서 대만의 타락한 TV 산업을 간단히 소개했다. 칼럼이 게재된 이후 경영난에 빠진 CTS 이사회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사 사옥 일부를 파기해 호텔을 짓겠다고 선포했다. 한 지상파방송이 이런 지경까지 이른 것 자체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어에 ‘승다죽소’(僧多粥少)란 성어가 있다. 승려들에게 줄 죽의 분량은 똑같은데 승려들이 많아 양이 적다는 뜻이다. 이 말은 세분화된 대만 TV 시장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밥을 달라고 얘기하면서 점차 스스로 밥 만들 능력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 대만 지상파 방송인 ‘중화방송공사’(華視,CTS). (사진=양첸하오)
 

현재 대만 TV를 보면 한국 프로그램이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모든 채널에서 방영된다. 중국 프로그램과 서양 영화도 마찬가지다. 대만 프로그램 질이 떨어진 것뿐 아니라 그 양도 많이 줄었다. 

대만은 오랜 기간 유럽,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 등 강권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보다 외래문화를 쉽게 받아들인다. TV산업 시장이 급변한 최근 20년간 더욱 그러하다. 

2000년부터 SBS <불꽃>과 KBS <가을동화>를 비롯한 한국드라마가 대만 케이블TV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02년 지상파 대만방송(TTV,台視)은 파격적으로 프라임타임인 저녁 8시 시간대에 SBS <유리구두>를 방영했다. 전국 최고 시청률이었다. 

구양근 전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는 “대만은 한류의 발원지”라고 했다.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류’란 단어는 대만에서 유래했고, 다른 나라보다 대만 방송사들이 한국드라마를 대거 구입했다. 다시 말해 대만이 한류 산업의 토대를 만든 것이다.   

지난해 12월 둘째 주 대만인들이 가장 자주 봤던 채널 32개 가운데 18개 채널에서 방영된 외국 프로그램이 전체 방송시간의 20%를 넘었다. 지상파인 CTS(中視)는 22.9%였고, CTS(華視)는 33%에 달했다. 두 방송사는 많은 중국 드라마를 수입한다. 

그리고 케이블인 ETTV(東森)과 GTV(八大)가 소유한 3개 채널은 거의 한국프로그램 중심으로 방영됐다. ‘대만 최초의 드라마 전문채널’로 표방한 GTV드라마채널 (八大戲劇台)에서도 한국드라마 비율은 이미 70%를 넘었다. 

실제 대만의 방송 관련 법규를 따르면, 지상파TV는 자국 프로를 방송시간의 70%, 특히 케이블채널의 경우 20%만 달성하면 된다. 재방송 시간은 제외된다. 

   
▲ 2002년 지상파 대만방송(TTV,台視)은 파격적으로 프라임타임인 저녁 8시 시간대에 SBS <유리구두>를 방영했다. 전국 최고 시청률이었다.
 

현재 대만 드라마 제작비는 매회 한국 돈 3500만~1.1억 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를 구입하면 비용은 매회 1700만~2800만 원으로 떨어진다. 시청률도 나쁜 편이 아니기에 대량으로 한국 드라마나 다른 외국 프로를 수입한다. 효율적인 수익구조만 따지기 때문이다.     

대만정부도 이런 상황이 TV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첸쉐이벤(陳水扁) 전 총통이 집권한 2006년, 정부가 황금 시간대(오후 6~10시) 자국 프로 점유율을 70%이상으로 높이려 하자 언론들이 “정부가 한국 드라마를 방송 금지시키겠다”며 논란을 일으킨 바가 있다.  

“한국 드라마가 TV에서 방송 금지되더라도 대만 프로그램은 보지 않을 것이다. 퀄리티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라는 의견은 이미 주류의 사고방식이 됐다. 한국 문화가 이미 일상이 된 젊은 층에서 이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정부가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단순히 자국 프로그램 비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TV 시장 구조 자체를 조정해야 하는 시기다.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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