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폭침설에 반박한 재미학자 안수명 박사를 해킹시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서울대 공대 출신 잠수함 전문가 중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사람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해 해킹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정황은 또 있다.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에서 변호사 컴퓨터를 해킹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다만 이 이메일은 해킹팀 직원 간 이메일인데 국정원과 모아카(몽골 정보기관) 두 고객의 요구사항을 함께 담은 이메일이다. 국정원은 이 이메일에 거론된 변호사가 몽골 쪽을 말하는 것 같다는 입장이다. 

어제까지 침묵하던 동아일보도 국정원에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중개한 나나테크외에도 국내 업체 3곳 이상이 ‘해킹팀’과 접촉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이 유령회사를 통해 해킹팀과 접촉했다는 정황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오늘도 이 문제에 대해 외면했다.   

   
▲ 16일자 경향신문 만평.
 

다음은 16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낙선재 1박에 300만원…누굴 위한 ‘궁 스테이’인가>
국민일보 <위기의 포스코 ‘뼈깎는 쇄신’>
동아일보 <재정안정 외치며 뒤로는 ‘면세’ 늘리는 국회>
서울신문 <여성 혐오 당신도 빠져들고 있다>
세계일보 <포스코 혁신 시동 “계열사 절반 축소”>
조선일보 <꿈을 잃은 청춘의 절규 이젠 어른이 손 내밀 때>
중앙일보 <중국도 안 먹힌다, 김정은 ‘핵 마이웨이’>
한겨레 <국정원, 2012년 총선·대선 직전 ‘해킹 계정’ 대거 주문>
한국일보 <빚 늘려 세수 메꾸면서…당정 ‘증세 차단막’>

대북공작용이라더니 천안함 전문가 사찰

‘천안함’, ‘미디어오늘 조현우 기자’, ‘서울대 공대 동문회’, ‘안수명’, ‘박사’. 흩어져있던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 12일 국정원(5163부대)가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하며 취재를 빙자해 천안함 전문가에게 해킹프로그램을 발송해 해킹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후 미디어오늘은 천안함 전문가들에게 해당 이메일을 받았는지에 대해 취재했다. (관련기사 : 천안함 전문가들 “국정원 해킹 메일 충격적”

이후 해킹팀 메일에서 확보한 ‘서울대 공대 동문회’ 파일에서 재미 천안함 전문가 안수명 박사의 이름을 경향신문이 확인했다. 

   
▲ 16일자 경향신문 3면.
 

경향신문은 1면과 3면에 걸쳐 국정원이 천안함 폭침설에 이의를 제기한 서울대 공대 출신 안수명 박사를 해킹하기 위해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지난 14일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해킹프로그램 회선 20개 중 18개는 대북용, 2개는 연구용이라고 했던 것과 배치되고 민간인을 사찰한 것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3년 10월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해 안수명 박사에게 해킹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는 한달 전인 2013년 9월 천안함 폭침설을 반박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해 천안함 침몰의 진실 여부가 다시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안 박사가 포함된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단에는 1945년부터 1995년까지 이 학교 입학자 중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340명의 이름, 입학연도, 이메일주소, 전화번호,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나와있다. 

국정원은 안 박사 해킹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3년 10월 23일 해킹팀에 천안함 파일을 다시 보내며 ‘이전 감염시도가 실패했다’고 전했다. 안 박사는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해당) 이메일을 받아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국정원이 내게 그러한 이메일을 안 보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변호사도 사찰하려 했나

국정원의 의혹이 더 있다. 위키리크스는 15일 트위터에 “‘해킹팀’이 한국군(국정원)의 변호사 컴퓨터 해킹을 도왔다”고 밝혔다. 이 메일은 국정원과 몽골 정보기관의 요구사항을 담은 이메일이다. 이메일에서 해킹팀 직원은 “고객의 요청을 이해하기로 목표대상은 변호사다. 전문적 기술자는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 16일자 한겨레 3면.
 

국정원은 이메일에 등장하는 변호사가 우리쪽이 아닌 몽골 쪽을 말한다고 했지만 해당 이메일을 보면 국정원 요원을 훈련하기 위해 해킹팀 직원이 2013년 9월 방한하기도 했다. 

국정원, 이번 해킹 조직적으로 개입 

경향신문은 <국정원 최종 결재 ‘윗선’ 따로 있다>에서 국정원의 내부 보고·지휘체계의 윤곽도 파악해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정원 내에는 모바일, 노트북 등 감청 대상 기기별로 업무파트가 나뉘어 있고, 구매를 담당하는 부서에 ‘SHE’라는 구매담당자가 따로 있다. 경향신문은 “SHE는 나나테크와 계약을 맡은 책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SHE가 최종 결재권자는 아니며 또 다른 상급자가 있다는 사실도 해킹팀 이메일을 통해 밝혀냈다.    

국회 정보위에서 있었던 국정원에 대한 질의 정도만 보도하던 조중동 중 동아일보가 이날 아침신문에서 나섰다. 국정원이 나나테크 말고도 다른 민간 유령회사를 통해 해킹팀과 접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16일자 동아일보 5면.
 

동아일보에 따르면 한 회사의 대표가 지난해 12월 해킹팀 이메일을 통해 “한국 정부가 (원전 도면 등을 공개한) 해커를 추적하고 싶어하는데 방법이 있느냐”고 문의했다. 당시 해커가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자료 등을 올려 국정원이 조사에 나선 상태였다. 이 회사의 대표는 이메일에서 자신을 한국 보안당국과 긴밀하게 협조해 온 보안업체 대표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이 회사를 확인해봤지만 정보보안업과 무관한 의류 판매업체였고, 법인 주소지로 적힌 곳도 그 대표의 아파트였다고 보도했다. 해킹팀과 접촉한 다른 국내 업체들도 비슷했다. 영업정지 상태의 업체도 있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부기관을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사정기관이 보안을 위해 일부러 보안업과 무관해 보이는 ‘유령업체’를 각종 장비 중개에 이용하거나 업체에 보안각서를 요구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국정원장 “모른다”, 여권 “민간 사찰 아닐 것”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할 당시 국정원장이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해킹 프로그램 구입에 대해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 게 전해져 논란이 되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조직적으로 해킹 프로그램 구입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해킹프로그램 구입을 시인한 것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 16일자 경향신문 4면
 

국정원의 부당한 정치개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선 당시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오늘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총선과 대선 직전에 해킹 계정을 대거 주문했다. 국정원이 20개 회선을 주문했다는 것과 달리 국정원은 실제로 30개를 추가 주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석기 전 의원 내란 음모,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 여권의 악재가 됐던 사건에 국정원이 전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여권은 불편한 상황이다. 경향신문은 원유철 신임 원내대표의 한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원 원내대표는 대북, 해외 정보전을 위한 연구용으로 프로그램을 샀다는 국정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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