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의 공포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직 ‘지나갔다’고 할 수 없으나 공포의 수준은 6월 초반에 비해 상당히 완화되었다. 메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시기 나는 두 번의 꿈을 꾸었는데, 한 번은 쪽방지역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역 전체가 격리된 채 펜스가 쳐지는 꿈이었고 또 다른 한번은 노숙 지역에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노숙인들을 향해 소독약을 발사하는 꿈이었다.

빈곤지역에서 메르스가 발생한다면 혐오와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날 것을 많이 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최종적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민원은 많았다고 한다. 전염이 두려우니 노숙인을 격리해 달라, 병원에 보내달라, 건강검진을 해달라는 등의 민원이었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돈을 덜 가진 뿐만 아니라 돈이 더 있는 이들보다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대중교통 이용을 삼가라’는 메르스 예방수칙에 따라 자가용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보라. 사회적 예방체계가 무너지고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이 개별적이 될수록 이 간극은 더 커진다.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끔찍한 일들이 메르스 시기 약자들을 덮쳤다.

우선 노숙인과 독거노인 등이 이용하던 무료급식소들이 폐쇄되었다. 집단적인 급식이 감염위험을 높인다는 설명이지만 무료급식소에서의 한 끼, 두 끼가 하루 먹을 것이 전부인 이들에게 이것은 심각한 위협이다. 6월 초 종로구 인근의 무료급식소 여섯 곳 중 문을 연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거리에서 빵을 배포하는 현장에서는 치열한 신경전이 일어났고, ‘원래 이 지역 노숙인이 아닌데 빵을 받아간다’는 식의 전에 없던 다툼도 일어났다.

   
지난달 1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치료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보라매병원에 의심환자가 병원 내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전국의 모든 급식소는 모두 민간에 맡겨져 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따스한 채움터’ 같은 시설 역시 건물만 서울시가 제공하고 급식은 종교단체 등 민간에 위탁되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발길을 끊어 급식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다시 한 번 공적 급식확보가 필요함을 증명했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자가격리 중 활동보조인이 지원 중단되는 일도 발생했다. 해당 장애인은 신장투석환자라 일주일에 3-4회 투석치료가 필요했으나 장애인콜택시 이용도 금지되어 이동조차 할 수 없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도움으로 구급차를 연계받아 투석을 받게 되었지만 80세 노모와 단 둘이 거주하는 상황에서 일상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다른 장애인은 격리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활동보조인들이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활동보조를 꺼려했다. 무연고 독거장애인인 이 분은 돌봐줄 사람이 전혀 없어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6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립중앙의료원 방문 뒤 이곳은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되고, 기존 입원자를 타 병원으로 이동조치 했다. 이동조치는 9일까지 이어졌으나 노숙인, 에이즈 환자 등 가장 약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쫓겨나는 일도 발생했다. 추락 사고로 입원 중이던 한 쪽방 주민은 5일에 병원 측의 퇴원을 요구 받았다. 지역단체의 도움을 받아 요양병원에 입원하려 했지만 요양병원은 국립의료원에서 왔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했다. 거리나 쪽방 등에 사는 홈리스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로 의료지원이 가능한데, 국립의료원처럼 복지부와 지자체가 정한 의료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다. 지정병원을 제대로 연계하지 않아 그냥 방치되거나, 연계된 병원에서조차 입원을 거부당하거나 무작정 퇴원을 종용당한 이들이 있다. 국립의료원에 장기입원 중이던 에이즈환자 13명은 어렵사리 병원을 연계 받았지만 3명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그들 중 두 명은 종합병원 입원비가 걱정된 가족들이 집으로 데려갔다. 병원을 옮긴이들 역시 10만~40만원에 달하는 응급차 이용료는 큰 부담이었다.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체계 확보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염병이라는 집단적인 위협 앞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재앙은 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보건당국은 대처능력이 낮은 이들에게 추가적으로 고려되었어야 하는 점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쪽방주민과 노숙인, 장애인, 에이즈 환자의 현실과 괴리된 방역대책이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었음을 기억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메르스 등의 전염성 질환에 관한 중증장애인 지원대책 마련 요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메르스 무능 정부’가 또 다시 에이즈 환자를 쫓아내다>, 2015/6/16, 참세상
<공문- 홈리스에 대한 메르스 감염예방 대책마련 요청의 건>, 2015/6/8,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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