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서는 올해 초부터 한 중국계 여성 CEO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엘렌 파오(Ellen Pao)는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벤처투자회사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바이어(KPCB)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불이익을 받았다며 지난 2012년 회사를 고소했다.

1972년에 설립된 KPCB는 AOL, 아마존, 구글 등 굵직굵직한 스타트업들에 투자해서 성공한 거물급 벤처 투자자인데다가, 고소인이 실리콘 밸리에 흔치 않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소송은 미국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 법원은 회사가 성차별의 혐의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소송을 종종 벌여온 변호사와 결혼한 직후에, 그것도 남편이 지고 있던 빚과 정확히 일치하는 액수의 고액 소송을 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패소 판결과 함께 파오는 언론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 해, 유명한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Reddit)의 CEO로 자리를 옮긴 파오는 이번에는 그 회사에서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자신의 운영방침에 반대하는 직원을 하루 아침에 해고해버린 조치 때문이었다.

레딧은 한 달 평균 방문자가 1억60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웹사이트 중 하나로, 거의 모든 포스팅이 회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하고 활발한 댓글이 큰 매력요소인 커뮤니티다. 20, 30명에 불과한 직원으로 방문자 수 세계 32위의 커뮤니티가 유지되는 비결은 거의 모든 서브레딧(subreddit: 주제별 포럼)들이 ‘모드’라고 불리는 자발적 관리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서브레딧들이 자체적으로 룰을 세우고 지키며, 회사는 크고 중요한 원칙들만 세우고 관리하는 방식이어서 각 주의 자치와 연방정부가 공존하는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과도 닮아있다.

파오가 해고한 사람은 모드이면서 동시에 직원인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로, AMA(Ask Me Anything)이라는 서브레딧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빅토리아 테일러라는 인물. 테일러는 오바마 대통령부터 록스타까지 온갖 화제인물들을 레딧에 초청해서 회원들과 직접 대화하게 도왔던 인기 모드. 파면의 이유는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AMA에 비디오를 도입해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서비스로 키우자는 경영진의 주장에 "레딧의 정신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인기 모드의 해고조치로 모드와 회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300여 개의 서브레딧들이 항의의 표시로 문을 닫았고, 인터넷의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서는 파오의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이 20만명에 달했으며, 레딧에는 파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도배가 되는 사태가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Reddit) 회원들이 중국계인 파오의 얼굴을 모택동의 이미지로 제작한 그림
 

온갖 압력에도 버티며 회원들과 대화를 거부하던 파오는 미국시간으로 월요일, 드디어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잘못을 시인하고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The buck stops with me”)며, 회원들의 요구사항들을 실행에 옮길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회원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파오가 “회원들과의 대화창구를 강화하겠다”며 내세운 사람이 파오가 주장해오 일련의 조치를 이행해오면서 회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파오와 회원들 사이의 그러한 소통문제도 심각하지만(회원들은 레딧의 기초적인 룰과 에티켓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CEO를 하느냐고 주장한다) 문제는 좀 더 깊이 들어간다. 그 근본에는 레딧의 상업화를 통한 이윤의 추구가 있다. 상업화와 대중화를 위해서는 레딧이 좀 더 ‘깨끗해질’ 필요가 있다고 믿는 현 경영진은 발언권의 자유를 꾸준히 제한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반발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레딧의 정화노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터넷의 축소판인 레딧에는 미성년자들의 선정적인 이미지를 모은 서브레딧부터 증오집단(hate group)들까지 다양한 하위 커뮤니티가 존재해왔고, 도를 넘을 경우 회사는 서브레딧 폐쇄라는 조치를 취해왔다. 문제는 그 선이 어디까지이냐는 것과 그 의도가 무엇이냐에 있다. ‘청소’의 목적이 커뮤니티의 활성화냐, 아니면 상업화를 통한 이윤의 추구냐는 것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서브레딧들을 폐쇄할 때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파오의 CEO 취임 이후로 벌이고 있는 정화작업은 그 밖의 다른 조치들과 맞물려 그 의도가 순수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CEO가 회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거부하면서 외부 언론들에게는 “일부 극렬회원들이 벌이는 일로, 대다수의 회원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식의 전형적인 독재자의 화법을 구사해서 회원들의 분노를 샀고, 회원들은 중국계인 파오의 얼굴을 모택동의 이미지로 제작한 그림을 퍼뜨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대다수의 회원들은 관심이 없다는 파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어느 회원의 말처럼 대다수는 “이 문제에 관심도 없고, 흥분하지도 않는다. 파오가 함부로 커뮤니티에 관여해서 레딧을 망쳐버리면 그냥 떠나서 다른 데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개별 사용자들에게 무한한 이동성을 주었다. 그렇게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사용자들이 대규모로 모여있는 생태계는 물리적인 생태계의 변화 못지 않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회사나 서비스만이 그들을 묶어둘 수 있다. 열린 소통이 그 첫번째 룰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