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4’ 혹은 ‘빅5’ 병원이라 손꼽히던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의 진원지가 되어 가고 있다. 11일 기준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온 메르스 환자만 55명이다. 

어느새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의 1차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을 제치고 최대 진원지가 됐다. 40대 임산부 확진환자, 응급실 밖 첫 감염 등 각종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의료명가’는 왜 메르스의 본산이 됐을까.

1. 응급실 과밀화, 14번 환자는 2박 3일간 응급실에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이 시설과 장비가 낙후한 중급병원들보다 더 많은 메르스 환자를 배출하는 원인으로 ‘응급실 과밀화’가 꼽힌다. 삼성서울병원에는 수용능력 이상의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려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자료에 따르면 응급화 과밀지수는 133.2%로 전국 의료기관 중 4위다. 수용인원 100명인 응급실에 133명 이상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환자들이 몰려 있다 보니 한 명이 감염될 경우 환자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응급실에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들까지 수시로 오고 간다. 삼성서울병원에 메르스를 퍼트린 14번 환자는 5월 27일 응급실에 들러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 간 응급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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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처음에 폐렴으로 의심됐던 14번 환자가 2박 3일 간이나 병실에 안 가고 응급실에 있었다”며 “응급실에 비해 병실이 부족한, 자원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장을 지낸 송형곤 이천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지난 1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하루 내원 환자가 150~200명 수준이다. 주말에는 250명을 넘을 때도 있다. 환자 한 명이 오면 보호자가 2~3명씩 오는데 사실상 도깨비 시장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병원 직원들이 마스크와 보호복 등을 갖추고 근무하고 있다.ⓒ민중의소리
 

2. 대형병원의 수도권 쏠림현상,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 높인다

응급실 과밀화는 삼성서울병원 같은 ‘빅5’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김태훈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정책위원은 “삼성서울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 응급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게다가 응급실 체류시간도 길다”며 수도권 쏠림현상이 메르스가 확산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보통 응급실이란 들어갔다가 빨리 회복해서 나가거나 병동으로 올려 보내져야 하는 환자들이 가는 곳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수도권 몇 개 병원으로 몰리니 병실도 부족하고 입원하려면 대기시간도 길다. 따라서 응급실에서 사실상 입원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은 “사람은 몰리고 병실은 부족한 상황에서 입원을 빨리 하고 싶으면 일단 응급실에 가서 눕는다. 그래도 응급실에 가면 1순위로 입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보호자도 같이 들어간다. 간호인력이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라 간병이 사회화 되기 않았기 때문으로, 그러니 응급실은 엉망진창이 된다”고 밝혔다.

변 실장은 이어 “삼성서울병원에 하루에 응급환자가 500명, 외래환자가 8000명 씩 몰린다. 거기다 보호자까지 합치면 엄청난 인구가 감염에 노출돼 있는 셈”이라며 “병원이 대형화되고 재벌화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밖에서 감염된 첫 외래환자(115번 확진환자)도 발생했다.

관련 기사 : <115번 환자, 병원 밖 4차감염 가능성 크다>

수도권 몇몇 병원으로 전 지역의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다시 지역사회로 되돌아가면서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14번 환자에게 병이 옮은 환자가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본인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갈 경우 지역사회 감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실제 지난 6일 오전 부천에서 발생한 메르스 확진자가 14번 환자와 함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렀고, 같은 날 부산에서 발생한 메르스 감염자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거쳐 간 것으로 확인됐다. 

   
▲ 삼성서울병원. ⓒ민중의소리
 

3. 14번 환자 발견 못한 이유, 정보부재? 병원 관행?

삼성서울병원이 14번 환자를 발견하지 못한 과정에서도 각종 문제점이 얽혀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일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11일 국회에 출석해 ‘대처에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과장은 “14번 환자는 중동에서 온 환자가 아니었고 다른 병원을 거쳐 온 폐렴환자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집단 발병하고 있다는 정보가 없다면 전혀 알 수 없었다”며 “14번 환자가 어느 병원을 거쳤는지는 알았으나 평택성모병원에 집단발병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앞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도 “14번 환자의 기침 증상이 단순 폐렴인지 메르스인지 체크했지만 (당국으로부터) 어떤 정보도 받지 못해 메르스 판정을 내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료진한테라도 확진환자 및 병원 정보를 공개했어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에도 책임이 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KBS는 9일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할 때 평택성모병원의 기록까지 모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14번 환자의 부인은 자료를 모두 제출했는데도 남편이 가해자처럼 비난받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삼성서울병원이 평택성모병원의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변혜진 실장은 “병원들에 초진 환자가 오면 이전 병원의 기록은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로 다시 검진하는 관행이 있다. 새로 들어온 환자에게 가장 많은 돈을 뽑아내기 위함”이라며 “검사를 수시로 하는 관행이 메르스 확산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정보를 공유하지 못해 14번 환자를 발견하지 못했든, 삼성서울병원이 관행대로 검진하다 발견하지 못했든 둘 다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KBS 뉴스 갈무리.
 

4. 보건당국 통제 밖에 있는 삼성서울병원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8일 메르스 확진 환자로 밝혀진 최초의 10대 메르스 감염자의 경우 삼성서울병원이 지난달 말부터 ‘의심환자’로 관리를 받았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전혀 몰랐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은 자체적으로 CCTV를 분석해 격리자를 판단하거나 PCR 검사(메르스 확진을 위해 바이러스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방식의 검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등 보건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삼성서울병원을 특별대우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가 발생한 사실도 확진 후 이틀 늦게 공개하거나 이후 확진환자가 된 의료진 2명에 대해서도 확진 후 사흘이 지나서 공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료기관은 의심환자 때부터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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