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정부의 무책임과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메르스 확산을 ‘참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 메르스의 국가간 감염 위험이 급증하고 있다는 WHO의 경고를 무시하고 중동발 입국자들에 대한 검역을 사실상 중단해버렸다. 다섯달 뒤인 10월에도 WHO가 봄철 메르스의 확산을 경고했지만, 보건복지부는 국내에 메르스 감염이 일어나기 전까지 원래의 검역 활동을 재개하지 않았다. 

국내의 첫 환자는 사업차 중동의 바레인에 머물다 메르스에 감염되었는데, 그는 입국 후 적절한 치료는 커녕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조차 몰라 병원 4곳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첫 환자가 입원하게 된 대형병원은 “메르스 증상이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해달라”고 신고했으나 보건당국은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가가 아니다’라며 이를 묵살했다. 보건당국이 수행해야 할 검역과 입국자 홍보만 했더라도 메르스는 조기차단될 수 있었다. 

   
▲ 6월 4일자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
 

평택성모병원은 첫 환자가 메르스 확진을 받은 뒤에도 다른 환자와 가족들을 방치함으로써, 30명 이상의 환자들이 메르스에 마구잡이로 감염됐다. 현재 메르스의 2차 숙주가 된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가 중동 및 메르스 노출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격리조치를 하지 않아 수백명의 인원에 노출시켰다. 

<한겨레21>은 “휴원 당일까지 메르스 환자인 줄 몰랐다” 기사에서 보건당국과 병원의 무책임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던 김정옥(가명)씨가, 8층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사실조차 모른 채 열흘간 방치됐고 끝내 기계호흡기를 단 채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연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배적 언론이 구사하는 프레임은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없다. 조선, 동아, 종편, 그리고 공중파의 일부 보도는 △환자의 도덕성 △괴담(유언비어) △엄격한 정부 △전국민적 단결 △의사의 인권과 같은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다. 

첫번째는 감염병을 비롯한 국민 안전에 대한 정부와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과 무책임을 가리고 있는, 환자의 도덕성 프레임이다. 9일자 인터넷판에서 조선일보는 ‘“그 병원 간적 없다” 환자 허위진술이 일 키워’라는 기사에서 실명도 없이 건국대병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환자(메르스 확진환자)가 중요한 한마디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환자가 지난 2주 이내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던 이력을 말하지 않아 의료진과 환자들이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례에서 보듯 의료계에선 메르스 확산 저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환자와 보호자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며 부제목으로 ‘70여명 ’날벼락 격리‘ 부른 후진적 보건의식’을 뽑았다. 

동아일보도 9일 인터넷 판에서 조선일보와 똑같은 환자를 놓고 “76번 환자 긴박했던 2시간, 의료진 집요한 질문 없었으면...”이라는 기사를 냈다. 진료거부를 두려워한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방문사실을 숨겼지만 현명한 의료진의 대처가 3차감염을 막는데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들 기사의 내용 어디에도 마땅히 존재해야할 할 감염병 격리병상의 태부족과 메르스에 대한 홍보 부족, 정부의 비밀주의로 인한 환자들의 집단감염, 병원내 감염을 막기위한 시설 및 진료절차의 결여 등 정부와 보건의료체계의 후진성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두번째 프레임은 괴담 프레임이다. 이런 프레임은 감염병의 환산 등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은 괴담을 유포하며 스스로 혼란에 빠지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보도한대로 정부가 대표적인 괴담으로 꼽았던 ‘메르스 공기 전파’설은 다름아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만들어낸 주장이었다. 

   
▲ 6월 9일자 조선일보 10면
 

이같은 괴담 프레임은 곧바로 ‘엄격한 정부’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국민이 무책임하고 무질서하므로 정부가 ‘계엄상태’에 준하는 엄격한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6월 4일자와 5일자에서 연속으로 이같은 프레임을 사용했다. 4일자 조선 1면 헤드라인은 “‘보건 계엄령’ 수준 대응을...공포의 확산 끊자”였다.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이미 심리적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에 정부가 “총력전” “계엄령 수준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5일자 헤드라인 역시 “메르스 공포 차단,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였다. 역시 ‘방역 총력전’ ‘공포’ ‘국가적 비상사태’ 같은 전쟁을 연상시키는 용어들이 사용됐다. 

네번째는 세번째 프레임의 연장선에서, 정부가 총력전의 사령탑이므로 국민은 사령탑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조선일보의 6일자 헤드라인은 “정부, 지자체 힘 모아야 메르스 이길 수 있다”였고 부제로는 ‘박원순 “선제대응”발표에... 복지부 “오해 유발”’ ‘정치적 이용, 중구난방식 대처는 공포만 부추겨’ 등이 사용됐다. 그리고 1면 사진으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사용됐다. 그러나 기사의 내용 어디에도,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무너진 방역체계에서 애꿎은 국민들이 메르스 집단감염에 노출된 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동아일보도 8일자 헤드라인을 “메르스 2차 확산... 함께 뛰어야 막는다”로 뽑았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선 또하나의 독특한 프레임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의사의 인권’(부차적 프레임은 ‘병원도 피해자’)프레임이다. 무차별적 감염피해에 노출된 환자와 국민의 인권이 아니라 ‘의사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을 의사에 대한 공격으로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 이하의 프레임이긴 하지만 실제 국정원 대선부정 국면과 세월호 참사에서도 각각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론, 유족자녀 대입특례로 인한 역차별 학생들의 인권론, 언딘 및 언딘이 투입한 잠수사들의 인권론 등이 사용된 바 있다.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은 네번째(전국민적 단결)와 다섯번째(의사의 인권) 프레임에서 보수 언론의 타겟이 된 것으로 보인다. 즉 박 시장의 메르스 관련 정보 공개 등 정부와의 엇박자가 국민적 단결을 해쳐 혼란을 부추기고, 의사의 인권에 대한 침해라는 식이다. 

낙타도 없는 한국이 사우디에 이어 중동호흡기증후군 2위의 발병국으로 추락하게 된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이는 보건당국이 메르스 검역에 아예 손을 놓았기 때문이며, 현 정부 하에서 감염병 관리체계가 무너져 환자에 대한 적절한 진료와 격리, 접촉자들에 대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보수언론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침소봉대하여 메르스 ‘참사’를 ‘우연한 사고’로, ‘개인의 일탈’로, ‘국민의 후진적 의식’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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