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서해훼리호 참사와 관련된 얘기는 이만 접구요. 오늘의 주제인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한 생활법률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우리의 삶이 더 팍팍해질까요? 아니면 더 나아질까요?”

무민국의 질문에 50여명의 수강생 중 답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네, 남북통일이 되면 초기엔 분명 우리의 삶이 매우 팍팍할 겁니다. 지금 보다 세금도 더 많이 내야 될 거구요. 좋은 일자리도 많이 줄어들게 되겠죠. 남한 주민들이 북한 주민들과 콩 한 쪽, 빵 한 쪽이라도 더 나눠 먹으려면 틀림없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텐데요. 비단 경제적인 고통만이 아니겠죠.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텐데,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들도 숱하게 벌어질 겁니다. 하지만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에 북한의 자원과 인력을 잘 융합시킨다면 통일한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서 반드시 단기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한국의 경제 문제는 그렇게 해결될 거라 확신하구요. 사회 문제와 정치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 전망하는데,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지만 단일 민족의 동질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정치적인 이질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갈등들을 해소하는데 결코 긴 세월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반만년을 함께 해 온 한민족인데 단지 반백년 서로 떨어져 살았다고 해서 민족이 하나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돕다보면 금세 하나가 돼서 통일한국은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도 단기간에 마련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굳게 믿습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7천만 한민족의  염원이요 시대적 소명인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룩해서 21세기에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여러분, 지난 1990년 10월3일, 서독과 동독이 하나가 됐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분단 45년 만에 드디어 하나로 통합된 것인데요. 40여km에 이르는 길고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인 베를린장벽을 허물며 마침내 민족 통일을 이룬 통일독일의 국민은 지난 3년 동안 힘겨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팍팍한 삶을 살았습니다.”

무민국이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한 생활법률 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통일독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순신의 수강태도는 많이 흐트러졌다. 앞서 무민국이 서해훼리호 참사와 관련된 강연을 할 때는 이순신은 자못 진지했다. 그의 귀는 쫑긋하게 세워져 있었고, 그의 눈은 핏발이 선 채 무민국이 서 있는 연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연 내용이 바뀌자 그는 잇따라 하품을 하면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밀려오는 졸음 탓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걷어 올리느라 무척 힘겨워 보이는 그의 시선이 옆에 앉아 있는 김만수에 꽂힌 시간은 오후 4시30분쯤이었다. 김만수는 조금 전 문방구에서 봉투를 살 때 함께 구입했던 수첩과 필기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메모를 하면서 강연을 듣고 있었다. 이순신은 서해훼리호 참사 후 김만수가 박식하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학력은 고졸에 지나지 않지만 지식과 상식은 어지간한 대졸자들 뺨칠 정도라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의 지적 수준이 그토록 높은 것은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탐구하고 메모하는 학습태도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순신은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있는 박정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역시 열심히 메모를 하면서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런 수강태도는 강연회에 참석한 수강생 대부분이 엇비슷한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저 개새끼들이…”

수강생들의 태도를 살피던 이순신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김금수와 맹철수가 연단 밑 좌측에 있는 강의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수야, 김금수와 맹철수 저 개새끼들이 여긴 어쩌 왔다냐?”     

이순신의 귓속말에 김만수는 고개를 들고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닫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는 김금수와 맹철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김만수의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저 새끼들이 여길 왜 왔지?”

김만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김만수와 이순신의 번득이는 눈빛을 보지 못한 김금수와 맹철수는 강의실 앞쪽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는 김만수와 이순신의 낯빛은 어느 틈에 납색으로 변해 있었다.  

“여러분, 우리도 이제 통일을 준비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은데요. 최근 몇 년간 남한에 들어 온 탈북자는 연간 10명 안팎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탈북자 수가 서서히 늘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이후에는 그 수가 급증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하루 빨리 정부는 탈북자 대량 입국 시대를 대비한 제도도 마련하고 시설도 구비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무민국의 질문에 이번엔 여러 명의 수강생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수강생들의 뜨거운 호응에 기분이 좋아진 무민국은 빙긋 웃으며 강연을 이어갔다. 연단의 무민국은 물론이고 강연을 듣고 있는 박정기 등 수강생들의 얼굴은 대부분 밝았지만 이순신과 김만수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눈앞의 불청객 김금수와 맹철수가 거슬린 탓이었다.

“난 창신동으로 갈턴게 그런 줄 알고 넌 언능 강의실로 들어가란 말이다!”

Y빌딩 건물 밖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이순신이 이렇게 짜증을 냈다. 그는 불쑥 강연회에 나타난 김금수와 맹철수 때문에 몹시 사나워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무민국의 강연이 끝나기 5분 전에 Y빌딩 건물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아니 형님, 정말 왜 이러세요? 그 개새끼들 때문에 일을 망치고 싶으세요?”

강연회가 끝나고 벌어질 뒤풀이 때 조희오의 석방을 도와달라고 무민국에게 부탁할 계획이었는데 김금수와 맹철수 때문에 그 일을 그르칠 생각이냐고 김만수가 따지고 들자 이순신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유!”

볏을 세운 싸움닭처럼 덤벼드는 김만수를 바라보는 이순신의 얼굴은 혈색이 사라진 듯 생기가 없었다.    

“얼른 들어가자구요. 민중현 신부 강연이 곧 시작될테니 얼른 같이 들어가잔 말이요. 먼저 강연을 마친 무민국 의원이 화장실에 갔다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김금수 그 새끼 옆 자리에 앉던데요. 아마도 민중현 신부 강연이 끝나야 뒤풀이 장소로 자리를 옮길 것 같더라구요.”

김만수는 강의실로 들어가자고 다그치지만 이순신은 머뭇거릴 뿐이다.

“형님, 그 개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헐 일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무민국 의원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세상사는 얘기도 나누고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자문도 좀 구해 보겠냐구요. 그러고 형님, 오늘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위도의 현실을 알리고 깜방에 있는 희오 좀 빼달라고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무민국 의원이 직접 나서서 희오를 석방시킬 수 없다면 정치권이라도 좀 움직여 달라고 당부하러 온 것 아니냐구요? 그러니 얼른 강의실 안으로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민중현 신부 강연도 좀 들어보구요. 강연이 끝나면 정기 형을 따라 뒤풀이 장소로 가보자구요.”

김만수의 말을 듣고 난 이순신이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뒤풀이 장소가 어딘디?”

“글쎄요. 매번 강연이 끝나면 저기 저 안경점 있지요. 그 옆 설렁탕집으로 가는 것 같던데 오늘은 어디다 예약을 해놨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김만수는 올 초부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에 Y빌딩에서 열리고 있는 얼쑤패 문화교실엔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지난 7월부터 연사로 참여해 생활법률 강의를 맡고 있는 무민국의 강연을 들은 적이 없다. 오늘은 전주교도소에 있는 조희오의 석방을 국회의원들을 찾아가서 호소하려고 상경한 이순신 때문에 부득이 문화교실에 참석한 것이다. 그 덕분에 Y빌딩 대기실에서 무민국과 통성명도 했고 그의 강연도 듣게 되었다.    

“난 저 강의실엔 죽어도 들어가기 싫은께 만수 니가 안에 들어가서 박 대표헌티 슬쩍 물어보믄 안될꺼나?”

“뭘 물어보라는거죠?”

“뒤풀일 으디서 허는지 가서 좀 물어보라고!”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 올테니 제발 어디 가지 마시구요, 여기서 꼭 기다려야 됩니다!”

이순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김만수는 Y빌딩 건물로 들어갔다. 이순신이 심란한 표정으로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한참 동안 서성거리고 있는데 Y빌딩 안으로 들어갔던 김만수가 돌아왔다.

“형님, 오늘은 저기 저 설렁탕집 뒤편에 있는 김치찌개 전문점인 굴다리식당을 예약해 놨다고 하는데요. 얼른 그리로 가십시다.”

김만수가 앞장서자 이순신이 그 뒤를 따랐다.

“형님, 강연장에 들어가서 정기형한테요, 뒤풀이 때 가능하면 형님을 무민국 의원하고 합석시켜 달라고 부탁을 해놨는데요. 만약 합석하게 되면 무민국 의원허고 마주앉아서 저녁도 함께 먹구요. 막걸리라도 한 잔 기울이면서 위도 얘기도 전하고 희오 문제도 좀 부탁해 보세요.”

“머 그러믄야 금상첨화것지만 내가 보기엔 가망이 읎을 것 같은디!”

 “왜 가망이 없어요?”

 “이 사람 저 사람이 무민국 의원허고 합석을 헐라고 벼르고 있을 것 아녀. 특히 고놈으 새끼들! 김금수허고 맹철수가 합석을 헐라고 아마 단단히 곤허고 있을껄!”

“어이구 형님도 참, 오늘 뒤풀이의 물주는 김금수허고 맹철수가 아니라 바로 형님이잖아요!”

“머시라고야, 내가 물주라고야?”
“네, 아까 형님이 정기 형 헌티 전해 준 후원금으로 오늘 저녁에 먹고 마실 밥값허고 술값을 지불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오늘 뒤풀이의 물주는 형님이시죠!”

“넘사시럽기 너 어쩌그냐?”

“뭐가 넘사시러요?”

“얌마, 내가 그럴라고 얼쑤패에 후원금을 냈냐? 사람이 그러믄 못쓴다. 돈을 쓸라믄 앞뒤 안가리고 앗살허기 쓰는 것이지, 쪼잔허기 돈 멫푼 갖고 유셀 떨면 쓰것냐?”

“형님, 말씀도 틀린 건 아닌데요. 오늘은 좀 특별한 자리니 제발 내 말을 좀 들으세요.”

입이 도끼날 같은 김만수의 말발에 이순신의 말문이 막혔다. 한마디 말도 없이 김만수를 따라 500m 쯤 걸어서 굴다리식당 근처에 다다른 이순신은 잠시 닫혀 있던 말문을 열었다.

“저기 만수야!”

“네, 형님!”

“내가 보기엔 암만 혀도 김금수허고 맹철수 이 새끼들이 무민국 의원허고 합석을 헐 것 같은디, 니가 그 틈에 어찌끼든 끼어서 앉어가꼬 밥도 먹고 술도 마시믄 안될꺼나?”

앞서 걷던 김만수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순신을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내 말이 머 잘못됐간디 그러냐?”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지요!”

툴툴거리며 빈정대는 김만수를 바라보고 있는 이순신의 표정은  서글펐다.   

“제가 아까 분명히 말씀을 드렸잖아요. 형님하고 무민국 의원하고 합석시켜 달라고 정기 형 한테 부탁해 놨다구요. 그러니 더 이상 김금수허고 맹철수 이 새끼들이 형 대신 무민국 의원허고 합석헐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말란 말에요. 그리구요, 형님! 무민국 의원헌테 희오 문제를 부탁허는 일도 제가 나서는 것 보단 형님이 나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같아서 그러는 건데 정말 왜 이러시냐구요. 형님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단순히 고향 선배인 제가 무민국 의원한테 희오 문제를 거론하는 것 보단 고향 선배이자 육촌 형인 형님이 거론허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머 그럴 것 같다만, 저기 만수야, 니가 잘 알다시피 난 언변도 읎잖여. 그런디다 김금수허고 맹철수 고 개새끼들이 가차이 앉어 있으믄 심장이 벌렁벌렁혀서 하고 싶은 말을 지대로 못헐턴디, 대관절 이 일을 어쩌면 좋냐?”

“하 참, 그래도 형님이 직접 무민국 의원헌테 부탁해야 된다닌까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형님 바로 옆에 정기 형을 앉힐 테니깐 걱정 말고 마음 푹 놓으세요.”

이순신이 시름에 젖은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만수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재촉했다.

“형님, 얼른 식당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뒤풀이가 시작될라믄 아직도 한참이 남었는디, 벌써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고야?”

이순신의 말에 김만수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 때 이순신이 이를 박박 갈아붙이는 듯한 소리로 혼잣말을 지껄였다.    

“아니 근디 저 개새끼들이 어쩌 열로 온다냐 잉?”

이순신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오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던 김만수가 번쩍 얼굴을 쳐들고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그가 노려보고 있는 곳은 50m쯤 떨어진 전방이었다. 김만수는 손짓을 하고 이순신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굴다리식당 근처의 인도를 살펴보았다. 붐비는 인파 속에 낯선 두 사람의 얼굴이 부릅뜬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두길과 김동필이었다.

“아니 형님, 저 개새끼들이 왜 이쪽으로 걸어올까요?”

“글씨, 내가 그 속을 어찌끼 알것냐만 저 개새끼들이 아직 우덜을 못 본 것 같응게 만수야, 언능 절로 몸을 숨겨 볼꺼나?”

이순신의 제안에 김만수는 오른편 골목 안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그 뒤 김만수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김두길과 김동필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니 근데 왜 저 새끼들이 굴다리식당으로 들어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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