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부추겼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24년 간 살았다고 상상해보자. 답답함과 억울함에 가슴은 썩어 문드러지고 세상은 환멸로 가득 찼으리라. 특히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던 언론에 대한 원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거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1991년 자살방조혐의로 3년간의 징역형을 받았던 강기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4년만이었다. 이날 강기훈씨는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18일 간단한 입장을 냈다.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책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언론은 1991년 공안몰이에 나섰던 노태우정부와 검찰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책임 있는 공범이다. 당시 한겨레와 동아일보가 검찰수사에 배치되는 주장을 내보내며 각을 세웠지만 신문·방송 등 다수의 주류언론은 검찰 주장을 받아쓰기 급급했다. 직무유기다. 당시 주류언론을 대표해 사과해야 할 언론사가 있다. 조선일보다. 

   
▲ 조선일보 1991년 5월5일자.
 

“자살을 이용한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운동의 실패를 내포한다. … 자살을 통한 운동에 부화뇌동할 국민은 이미 그리 많지 않다.” 1991년 5월5일자 조선일보 사설이다. 명지대생 강경대씨 사망이후 조선일보는 시위문화를 비판하며 김지하의 기고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를 실었다. 운동권이 생명을 경시한다는 주장이었다. 조선일보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박홍 서강대 총장을 두고 “교육자다운 용기 있는 발언”(5월10일자 사설)이라고 평가했다. 

5월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서강대학교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검찰은 재야민주단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분신의 배후혐의를 찾는 내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는 매일매일 검·경발 기사를 내보내며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했다. 5월9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는 <분신현장 2~3명 있었다 : 목격교수 진술, 검찰 자살 방조 여부 조사>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옥상엔 혼자 있었다 : 서강대 운전사 경찰에 밝혀, 목격 교수들 “2~3명 있었다고 말한 적 없다”>라는 정반대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김중배였다. 

5월 25일, 검찰은 전민련이 제출한 김기설씨 수첩이 조작됐으며,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김씨 필적과 유서 필적을 감정한 결과 필적이 다르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그리고 강기훈씨가 1985년 경찰에서 쓴 자술서와 유서가 동일필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사설 감정기관에 의뢰한 결과 전민련이 제출한 김씨 수첩과 유서가 동일필적으로 나타나 국과수 감정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4건의 연쇄분신 사건이 시위군중이 다수 모인 곳이 아닌 한적한 곳에서 투신하는 등 방법이 유사하고 2~3일 간격을 두고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도 호남-영남-경기-서울 등의 분포를 이루고 있는 등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5월9일)고 보도하는 등 검찰의 유서대필 주장에 힘을 실었다. 

   
▲ 한겨레신문 1991년 5월 9일자 1면.
 

한겨레는 5월26일자에서 “문제의 수첩에는 숨진 김씨 밖에 쓸 수 없는 내용이 다수 들어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하지만 검찰과 주류언론은 타당한 의혹제기에 눈감았다. 그렇게 강기훈씨는 자살방조죄로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 이후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중앙일보).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5월27일자에서 김기춘 신임 법무부장관을 두고 “깔끔한 외모에 업무처리가 빈틈없고 치밀해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다”, “검찰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그리고 8년이 흘러 이윽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법관의 주관적 판단이 달라지면서 원래와 정반대되는 판결이 나왔다.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 있다”며 “궁극적 진실은 강씨 본인이 아는 것”이라 주장했다. 

궁극적 진실이라니. 24년 전 강기훈 사건을 취재했던 김의겸 한겨레 기자는 이 사설을 두고 “법치를 외치는 조선일보가 대법원 판결마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인가. 인생이 망가진 한 인간에 대해, 아니 한 인생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한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 유서대필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가 1991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청년 강기훈은 24년 만에 누명을 벗었지만 누명을 씌운 자들 중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강씨는 24년간 줄곧 무죄를 호소하며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며 “무죄판결이 난 이상 국가는 강씨에게 합당한 보상과 함께 명예훼복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제3자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조선일보는 “모든 법관은 자신들의 판단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어 하나만 바꿔보겠다. “모든 언론은 자신들의 기사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 

적어도 조선일보만큼은 강기훈의 잃어버린 24년 앞에 사과해야 한다.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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