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지난 13일 보도한 서울 수서경찰서 경찰관의 미담성 기사가 오히려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에 휘말렸다.

경향신문은 <112신고 여성, 울다 통화 중단… 경찰 초비상 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부제로 ‘가정폭력 드러나자 안도’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사실상 가정폭력과는 상관없는 남녀 연인 사이에 발생한 폭행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해당 기사에서 경찰은 112 신고를 한 여성이 통화 도중 누군가가 잡아채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기자, 신고자의 주소를 끝까지 추적, 파악해 결국 피해 여성을 병원으로 옮기고 가해 남성을 체포했다. 

경찰이 ‘가정폭력’임을 확인하고 안도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는 동일한 사건을 취재해 보도한 연합뉴스와 뉴시스, SBS 등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경향신문 13일자 12면
 

이에 대해 (사)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5일 논평을 내고 “경향신문에서 다룬 해당 사건은 피해여성 얼굴이 온통 피로 덮여 있었고, 방바닥 한쪽은 폭행할 때 생긴 혈흔으로 가득해 자칫하면 피해여성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심각한 사건이었다”며 “이러한 사건에 대해 경향신문은 ‘가정폭력 드러나자 안도’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가정폭력과 안도’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여성의전화는 또 “기사에 언급된 ‘오원춘 사건’은 피해여성이 112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부부싸움’인 것 같다며 안일하게 대처했고 결국 피해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이었다”며 “그러나 경향신문은 ‘통화가 끊겼고, 이후 살해됐다’고 언급함으로써 ‘오원춘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의전화는 “이는 ‘오원춘 사건’에서 경찰이 보여준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다르지 않고, 경향신문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45.5%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정폭력이니 안도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라며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시키는 기사를 보도한 것에 대해 각성하고 즉각 입장 표명과 사과문을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기사를 쓴 박용하 경향신문 기자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부제는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고 편집기자가 작성한 것인데, 아마도 제목을 지나치게 압축하려고 단어를 선택하려다 착오를 한 것 같다”며 “어떤 과정에서 그렇게 됐는지는 나도 회사에 확인을 해보고 회사의 입장을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해명했다.

박 기자는 이 기사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출입기자들이 주기적으로 경찰과 돌아다니면서 미담성 사례를 발굴해 소개하곤 하는데 사실 이 기사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며 “기사에서도 남자친구라고 분명히 기술했고 가정폭력으로 읽힐 여지는 없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생활 부분이어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