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자 출신의 자유기고가 김하영씨의 '한국언론, 안녕들하십니까'를 연재합니다. 김하영씨는 2002년에 프레시안에 입사해 2014년에 퇴사, 지금은 1년 가까이 세계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김씨의 연재는 세부 목차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신문은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니다, 인터넷 광고 시장 몇 명이나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우라까이 언론판에서 독점은 불가능하다-파란의 교훈, 진보/보수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언론, 한국 언론의 생존 방법, 미국 베끼면 되나? 등의 주제를 연속해서 다룰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성완종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느 유력 정치인과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곤 했겠지. 그리고 후식이 나올 때 쯤 이런 말도 했을 거야. "의원님. 큰 일 하시는데 이번 선거에서 제가 좀 도와 드려야 하는 건데." 그러면서 쇼핑백에 담긴 돈 뭉치를 건냈을 수도 있을 거야.'

"좀 도와 드려야 하는데"

   
 
 

다음은 언론사 간부와 대기업 홍보 파트 직원의 가상 대화이다.

상황 1.

××신문사의 경제면 기사가 반향을 일으켰다. OO대기업 홍보실 A 상무가 ××신문사 B 부장과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기사 좀 아팠습니다. 그래도 B 부장님이 신경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뭘요. 그 정도야 뭐."
"그나저나 이번에 좋은 행사 하시는 것 같던데. 저희도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상황 2.
××신문사 적자 폭이 커졌다. 간부들에게 광고 판매 할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B 부장이 A 상무를 불러냈다.

"요즘 경기가 많이 안 좋죠? 그래도 OO대기업은 영업이익 꽤 잘 나온 것 같던데, A 상무님 보너스 좀 많이 받으셨나 몰라요."
B 부장이 '광고 달라'는 말을 빙빙 돌리는데, A 상무는 이미 ××신문사 사정을 잘 안다. 눈치 채고 말을 자른다.
"다 B 부장님이 보살펴 주신 덕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반기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홍보 예산이 깎였습니다.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
대기업과 신문사는 계약에 의한 거래 관계가 아니라 '도와드리는' 관계다. 아름답다!

   
본문 기사와 별 상관 없는 비타500 광고. ⓒ광동제약.
 

솔직해지자.

'광고' 사전적 의미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 시대에 종이 지면 광고는 광고주에게 그닥 매력적인 수단이 아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 본 적이 있는가? 게시물에 따라 도달률이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성별, 나이, 지역, 학력 등) 이 게시물을 봤는지, 어떤 시간에 많이 보는지 등등의 데이터를 제공해 준다. 이거 광고주 입장에서는 엄청 솔깃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를 이끌어 내는지. 실시간 수치로 나타나는데 재미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페이스북에 광고비를 더 많이 지출하면 더 많이 노출되고 이와 같은 데이터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구글 광고만 돌려도 이런 데이터가 쏟아진다. 신이 난다. 돈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종이 신문에 내는 광고? 몇 명이 보냐고? 조선일보 독자가 750만 명? 그렇다고 750만 명이 그 광고를 봤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보는지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750만의 조선일보나 60만의 한겨레나 광고비 차이는 유료 독자 수의 차이만큼은 아니다. 같은 광고라고 조선일보에 750만 원 내고 한겨레에 60만 원 내지 않는다.

기업들은 신문사에 광고를 주지만 '광고'를 위해 주는 게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광고를 주는 것이다. 왜 도와주냐고? 지금까지 도와줘 왔으니 관행적으로 돕는다. 삼성 라이온스가 그 해 우승을 하면 삼성전자가 10개 일간지에 똑같이 축하 광고를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광고는 신문사들과의 관계 유지 비용이다. '보험'이다. 몇몇 신문사들은 이를 악용해 수시로 보험료 청구를 한다.

   
이런 아름다운 시절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솔직해지자.

허구헌 날 신문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언제부터? 10년 전? 20년 전? 그런데 지금까지 10대 중앙 일간지 중에 망한 신문사 본 적 있나? 한 군데도 안 망했다.(한국일보가 망할 뻔 했지만 새 물주를 만나 회생했다.)

나는 이게 더 신기하다. 우리 아파트 단지 1200세대 쯤 되는데 신문 보는 집 거의 없다. 내가 사는 동 라인에도 신문을 보는 집에 두 집인가 세 집인가 그렇다.(새벽에 배달부에게 물어봤다. 참고로 우리 동네 배달은 조선일보나 한국경제, 한겨레 등등 신문사 상관 없이 한 지국이 다 한다. 그래서 2~3집이 신문 보는 집 전체임을 알 수 있다.) 주변에 도통 신문 보는 집들이 없다. 그런데도 안 망하고 살아 있다.

이게 다 사실은 '도와줍쇼' 하고 다니는 신문사 영업맨(일부 편집국 간부들 포함)들이 발바닥이 손바닥이 닳도록 뛰고 비벼서 있어서 살아 있는 것 아닌가. 얼마 전 유출된 MBN 영업 서류를 보면 기사로 '엿 바꿔 먹기'도 한다.

   
한국일보 성남공장 윤전기가 멈춰있다. 성남공장은 2월 1일자로 폐쇄됐다.
 

솔직해지자.

요즘은 지면 광고 판매가 안 되니까 온갖 행사를 만들어 협찬 장사를 하고 다닌다. 유명 인사들 불러다 무슨 무슨 포럼하고 미술 전시회도 연다. 티켓 장사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폼 나는 장사다. 지식을 전파하고 교양을 쌓게 하는 행사를 열고 돈도 버니. 참, 마라톤, 걷기, 자전거 대회 등을 수시로 개최해 국민 건강 증진에도 기여한다. 문제는 이런 행사 수익 역시 기업들 입장에서는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적정 시장 가격도 없고 부르는 게 값이고, 아니면 주는 대로 받는 게 값이다.

언론사들이 이게 장사가 된다 싶은지 너도 나도 뛰어들자 '협찬 예산 전액 삭감'을 한 대기업도 있다. 한 자치단체장은 한 중앙 일간지에서 전임 시장 때부터 개최해 온 마라톤 예산을 끊었다. 웬만하면 할 수도 있었는데 액수가 4억. 안 그래도 재정 적자가 문제인데 4억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왜 4억이 드는지 설명도 못 하더라는 것이다. 차라리 사회의 바퀴벌레 취급 받는 '우라까이 어뷰징'이 영업적인 측면에서는 더 도덕적인지도 모른다. 인기 검색어로 페이지뷰 늘리고, 딱 페이지 뷰만큼만 광고료를 받으니까.(뭐 안 그런 경우도 있긴 하다)

솔직해지자.

정치인의 부패 스캔들과 언론사의 영업 행태를 동급으로 비교하는 것이 무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언론들이 정상적인 영업 행위를 하는 건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물론 모든 언론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런 비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고를 광고로 받지 않고 '도움'으로 받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도와드려야 하는데"

이 말을 부끄럽게 여겨야 언론의 생존이 가능하다.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을 떠난지 거의 1년. 그러니까 언론판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된 셈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웹으로 스마트폰으로 한국 언론을 접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정점으로 '기레기'가 된 한국 기자들. MBN의 영업문건 유출 사건. 언론 혁신(혹은 생존)을 위한 많은 담론들. 변화를 위한 몸부림들이 보인다. 다만 여전히 고준담론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크다. 13년 동안 언론판에 몸 담으며 공부하고 듣고, 느꼈던 현장의 경험들과 생각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거창하게 '한국 미디어의 갈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한국 언론, 미디어의 발전을 위한 고민 거리 정도는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조언과 비판 부탁드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