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사에 있어 私(사)에 앞서 公(공)이고, 나에 앞서 나라 걱정식이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어려서부터 ‘義(의)가 생명보다 중하니라’고 조상 대대로 구전돼 내려오고 있는 가훈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략)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는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지난 1980년 조선일보가 8월 23일자 3면 전체를 할애해 쓴 <인간 전두환>이란 제목의 특집기사 내용 중 일부다. 5공화국의 독재와 언론탄압 속에서 조선일보는 이렇게 권력에 아부했고 전두환 정권은 언론인 대량해직과 언론통폐합으로 한국 언론을 장악했다. 

김동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지난해 10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창립 30주년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한국 근현대 언론운동사’에서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에서 권언유착을 즐기며 1980년에서 1987년 사이에 24.1%의 성장을 기록하면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를 제치고 업계 1위로 도약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전두환 정권이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으로 철저하게 언론에 재갈을 물렸으므로 언론운동 역시 시민사회로부터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1980년 동아·조선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이 결성되면서 언론운동은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언론민주화를 전담할 단체인 민언협 창립은 우리 언론사에 획기적 전환점이었다. 민언협은 이후 언론기본법 폐지와 신문방송 독과점과 카르텔 해체, 신문방송의 편집권 독립, 신문사 소유구조 개선 등을 구체적 목표로 정하고 언론운동단체로 자리매김했다. 

   
▲ 1986년 9월 6일 말지 특집호.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특히 1985년 민언협의 ‘말’지 창간은 전두환 정부와 제도언론에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학생과 재야 등 민주화운동세력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줬다. 

고승우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의 저서 <한겨레 창간과 언론민주화>(2004)를 보면 말지는 당시 도시빈민들의 고난과 철거반대 투쟁, 농민 소몰이 시위의 진실, 대우자동차 파업과 구로지역 연대투쟁의 전말 등 제도언론이 외면하거나 묵살한 진실 보도에 앞장섰다. 
1986년 9월 6일엔 민언협이 말지 특집호를 통해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시달하던 ‘보도지침’을 폭로하자 정부당국은 즉각 민언협과 말지 관계자들을 수배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이후 보도지침 사건 관련 공판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이어졌고, 지난 1996년에야 검찰의 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무죄로 종결됐다. 

또한 말지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고 이사장은 “6월 항쟁 초기 제도언론은 전 국민적 민주화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며 “동아·조선·한국일보 모두 시위 규모를 축소 보도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며 이들의 정당한 민주적 요구를 폭력 난동으로 몰아붙였다”고 밝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에 종속된 언론은 변함없는 ‘불법·폭력 시위’ 프레임으로 여론을 호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 말지는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을 비롯한 5공 시절 각종 고문 사건과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용감하게 보도한 유일한 잡지였고, 말지의 폭로를 통해 시민들은 군부독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게 됐다. 

   
▲ 한겨레신문 창간호.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리고 민언협은 1988년 5월 15일 민족·민주·민중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신문을 창간함으로써 언론운동의 큰 결실을 거뒀다. 민언협은 당시 민주화 추진 세력의 유일한 언로(言路)로 자리잡은 말지라는 부정기적 간행물만으로는 민주화운동의 촉매제로 역할하기에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은 창간사를 통해 “한겨레신문은 개인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재래의 모든 신문과는 달리 오로지 국민대중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하는 그런 뜻에서 참된 국민신문임을 자임한다”며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은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막고 국민의 민권을 신장해 사회안정을 기할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운동이랄 것”이라고 주창했다. 

이후 1995년 5월 17일 미디어오늘은 언론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언론개혁을 외쳤던 언론노보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을 향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의 엄정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며 창간됐다.

미디어오늘은 <권력·자본을 뛰어넘어 진실되게>라는 제목의 창간사에서 “우리가 오늘부터 향하고자 하는 곳은 언론의 ‘심층’이다. 우리는 한국의 언론을 작동시키는 본질적인 힘의 실체와 그것들의 운동방식을 밝혀내고자 한다”며 “무엇보다도 공정한 언론, 국민의 편에 서 있는 사랑받는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의지와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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