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90년대 말 ‘안티조선 운동’ 최전선에 있었다. 여론 독점, 사실 왜곡, 친일 행각, 점철된 극우 이데올로기 등 제각각 반대하는 논리는 달랐지만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지식인과 대중이 조선일보라는 특정 언론에 반발해 결집한 사회 운동이었다.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앵똘레랑스(Intolerance, 불관용)’를 일삼는 세력에게는 ‘똘레랑스’를 베풀 수 없다.” 그는 한국사회의 보수와 극우를 구별 짓고, 진보와 보수는 경쟁을 통해 정치 발전을 이루고 연합 전선을 형성해 극우를 포위해야 한다는 논리로 안티조선 운동을 이끌었다. 

미디어오늘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지난주 홍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앞서 설명한 대로 학습공동체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이자 가장자리에서 펴내는 격월간 ‘말과활’ 편집인이다. 그는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시민참여 운동 ‘장발장 은행’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여전히 주류에서 배제된, 한국사회 가장자리에서 활발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 홍세화 가장자리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창간호 20주년을 맞아 미디어오늘과 대담을 갖고 있다. (사진=최창호 ‘Way’ PD)
 

그에게 현재 한국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홍 이사장은 “한국 언론은 그동안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돼 왔는데 지금 언론은 자본권력에 의해 순치됐다”며 “한마디로 말해 언론 스스로 도구화됐다”고 밝혔다. 

그는 원인에 대해 “신자유주의라는 거대 흐름 속에서 지식인과 언론인 모두 ‘의식의 신자유주의화’했고, 이 문제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며 “소유 문제에 갇혀 버린 언론인들이 소비주의라는 틀 속에 갇혀 버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90년대 초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중배의 선언과 맞닿아 있다.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한대로 언론은 자본화했고 충족되는 물적 요건에 언론인은 성찰 없이 안주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권력화한 언론으로부터 겪고 있는 숱한 문제는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것일까? 여전히 언론 운동은 유효할까? 홍 이사장은 “언론 운동은 유효하다”면서도 “운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강조했다. 홍 이사장은 “언론 운동이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었던 것은 정권과의 연계, 이를 테면 참여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FTA, 비정규직 보호법 등 참여정부가 초래한 사회적 갈등에 여론은 분열됐고, 진보 지식인들은 주류에 편승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언론 노동자를 포함한 지식인들이 이러한 흐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우리가 딛고 있는 함정이 얼마나 깊은지 본격적으로 성찰할 때다.”

   
▲ 2010년 3월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창간9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내빈들이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과 함께 축하케잌을 자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가 왕성하게 언론 운동 전면에 섰던 때와 지금의 조선일보는 어떻게 다를까. 홍 이사장은 “과거 KBS, MBC와 같은 방송 언론은 낮은 수준이지만 공공성을 담보했었고,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선일보가 갖는 수구성은 두드러졌다”며 “지금 조선일보가 갖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했지만 공영성을 지녀야 할 방송이 스스로 조선일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헤게모니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과 거리두기를 자처하며 탄생한 대안 언론들이 있다. 뉴스타파가 대표적이다. 홍 이사장은 “그들의 방향성을 지지하고 확장성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면서도 “누차 이야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속성 문제”라고 했다. 그는 “얼마만큼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홍 이사장은 진보신당 대표를 맡으며 정치에 발을 딛기도 했다. 안티조선 운동, 진보신당 대표 때처럼 보다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주문해 봤다. 홍 이사장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언론계에서도 정년퇴임을 했고 나이도 많다”고 했다. 

그는 “사회가 변화해야 다른 얘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이미 10년 전, 15년 전에 말해버린 것을 반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변화하고 국면 자체가 달라진다면 조금 더 섬세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할 기회가 생길 텐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가야 할 방향에 비해 힘이 너무 없다. 언론 노동자들도 같은 고민이 있다고 생각한다.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끙끙 앓고 있겠지.(웃음)”

그는 가장자리에서 여전히 ‘운동’ 중이다. 최근 문을 연 장발장은행은 단순 벌금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낼 돈이 없어 노역을 치러야 하는 이들을 위해 벌금을 빌려준다. 연 4만 명 정도의 사회적 약자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노역으로 내몰린단다. 

마지막으로 그의 운동과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소유의 시대의 목표는 성장이며, 인간에 대한 착취가 만연하다. 진보가 통합이 안되는 문제도 물신주의, 소유, 미래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 반면 관계의 시대는 관계 자체를 성숙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소유의 시대에서 관계의 시대로의 전환,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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