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 광복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에 대해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KBS PD협회에 이어 역사·언론단체들도 심의위원들의 무분별한 ‘정치심의’에 강하게 반발했다.

방통심의위(박효종 위원장)는 23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6·25 한국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던 방송된 <뿌리깊은 미래> 1부(지난 2월 7일 방송분)에 대해 방송심의 규정 제9조(공정성) 제1항과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벌점 2점)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심의위는 “해당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전쟁 발발과 서울 수복 후 부역자 처벌, 미군의 흥남 철수 등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맥락상 필요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특정 장면의 부각, 사실과 다른 내용의 내레이션 등으로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역사정의실천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8일 공동 논평을 내어 “이미 학계에서는 상당히 근거 있는 것으로 인정된 문제를 방송에서 언급했다고 (심의위가) 반미 선동 방송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심의위의 심의가 객관적인 자료나 전문성에 기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민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만을 토대로 결정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 KBS 광복70주년 특집 ‘뿌리깊은 미래’ 1부 <生의 자화상>
 

이들 단체는 특히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이 KBS 안의 세 번째 노동조합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늘 논란이 돼 오던 ‘KBS 공영노동조합(황우섭 위원장)’과 뉴라이트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인식에서 심각한 편향성을 드러내던 이인호 KBS 이사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와 같은 논란을 겪으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4부작으로 기획됐던 <뿌리깊은 미래>는 2부작으로 축소됐고, 이 방송은 방통심의위에 민원이 접수되면서 심의에 오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심의위가 방송에서 6·25전쟁의 원인을 ‘남침’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이 ‘객관성’ 위반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비상교육에서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남침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누가 봐도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서술이 있고 <뿌리깊은 미래>의 관련 내레이션도 이 서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런데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했고 방송은 심의위의 제재를 받았다. 앞으로 6·25전쟁을 다루는 드라마나 보도프로그램이 남침을 적시하지 않으면 모두 제재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어 “이러한 중징계는 방송가 자기 검열을 강화해 조금이라도 정권에 입맛에 안 맞는 내용을 만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방송 길들이기’”라며 “방통심의위의 코미디에 가까운 심의 결과에 불복한 방송사들이 법정 공방을 벌이고, 법원에 의해 번번이 심의위의 패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인 손실이며 예산 낭비”라고 질타했다.  

앞서 지난 24일 KBS PD협회도 심의위의 <뿌리깊은 미래> 중징계 결정에 대해 “TV 다큐멘터리의 잣대에 국가 정체성을 들먹이는 이들은 20세기 초반 일본과 독일의 파시즘의 사관에 입각해 역사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냐”며 “앞으로 방송심의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무분별한 정치심의만 일삼고 있는 방통심의위에 대해 일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PD협회는 KBS 사측을 향해서도 “<뿌리 깊은 미래>와 관련 행정심판 등 제작진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처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라”며 “우리는 심의위의 부당한 징계와 관련 일선 제작진이 이에 영향을 받는 어떠한 상황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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