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민주주의 시대, 여론조사의 폐해

필자는 지난 해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 논란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주민주주의(outsourcing democracy) 시대”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조를 SNS에 올린 기억이 있다. 정치적 조정과 제도적 절차를 통해 풀어야 할 의사결정이 민의를 수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여론조사에 대체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의 토로였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방법으로 채택된 이래 여론조사는 민의를 읽는 수단 보다 민의를 명목으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거나 정치적 무능을 변명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후보자 선출은 물론 심지어 헌법개정마저 여론조사에 맡기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현실이지만 4.29 보궐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얼마나 민주주의에 해악을 미칠 수 있는 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논란이 된 관악을의 경우 캠페인 구호와 정책 홍보가 있어야 현수막을 각 후보는 자신한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도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급기야 정태호 후보 측이 인용한 리서치뷰 조사에 대해 서울시공정선거심의원회(이하 공심위)는 선거법위반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현수막 철거 명령' 공고문을 보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정태호 후보 측도 정동영 후보가 게시한 브레이크뉴스-휴먼리서치 조사 결과의 조사는 기호와 정당을 누락하여 인지도 높은 정동영 후보에 유리하게 설계된 불공정 조사라고 반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신환 후보는 CBS노컷뉴스-조원씨앤아이의 4월 20일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오신환 후보가 39.6%, 정태호 후보가 31.4%로 이긴다는 현수막을 내건 바 있다.

   
 
 

세대대표성 왜곡하는 표본: 2030세대 목표표본 42% → 실제 표본은 14~20% 불과

가장 큰 쟁점은 조사 표본의 대표성 문제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료를 보면 리서치뷰 조사의 경우 세대별 구성비를 고려할 때 64명의 표본을 확보해야 할 19~29세 표본이 31명, 71명을 확보해야 할 30대에서도 31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반면 85명의 표본이 할당된 50대에서는 127명, 101명을 확보해야 할 60대 이상에서 164명이나 과대표본을 표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고연령층에 편중된 표본을 교정하기 위해 조사회사는 2030세대 표본의 경우, 한명의 응답에 두 배 이상의 가중치를 곱해 최종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 2030세대 응답자가 전체 2030세대 유권자 분포와 조금만 오차가 있어도 그 오차는 두 배 이상으로 증폭되는 셈이다. 리서치뷰 조사에서 30대에서 정동영 후보 지지율이 0.9%으로 나타난 것은 납득하기 힘든 결과이다.

문제는 이런 세대별 표본 불균형 현상이 리서치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심지어 리서치뷰 조사의 경우는 목표할당 자체도 다른 조사기관들과 큰 차이를 보여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표1]에서 20대와 30대는 합해서 전체 표본의 42%의 비율(20대 21%, 30대 21%)을 채워야 하지만 브레이크뉴스-휴먼리서치 조사, CBS노컷뉴스-조원씨앤아이 조사, MBN-리얼미터 조사 공히 대부분 15~20% 수준에 그쳤다. 2030세대에서 2배 이상의 가중치를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5060세대의 경우 전체응답자의 38%를 확보해야 하지만, 네 기관 모두 64~73%나 되어 고연령층이 과대 표집된 표본으로 조사했음을 알 수 있다. 충격적인 결과다. 낮은 응답율 문제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일관된 잣대의 적용·외주 정치의 극복

사실 부실조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번에 문제가 된 기관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왜 문제는 반복되고 증폭되고 있는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선거여론조사 관리에서 선관위의 일관된 잣대 적용과 규제방식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리서치뷰 조사결과에 대해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것은 정작 세대표본의 대표성 문제가 아니었다. 성, 연령, 지역 가중치 보정 후 18대 대선과 18대 총선 지지율로 반복가중치를 부여한 대목이다. 이 판단 자체는 타당해 보인다. 이 역시 리서치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전 선거에서 선관위는 리서치뷰와 유사하게 성향가중치 부여 방식을 채택했던 다른 기관들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불공정 시비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 선거여론조사 공정성을 심의하는 중앙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이해당사자라할 수 있는 조사회사 대표들을 포함한 것도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심의를 받아야 할 대상이 심의를 하는 상황이다. 선관위 결정에 힘이 실릴 리 없다.      

   

▲ 4·29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왼쪽부터)·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현대HCN 서초방송에서 열린 서울시 선관위 주최 TV토론회에서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선관위는 정작 논란이 크게 된 세대별 표본 대표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물론 과학적 조사방법과 불량 조사를 판별하는 객관적인 규제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심각하게 편중된 표본을 가지고 조사한 결과를 방치한다면 공심위가 부실조사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권자들이 손쉽게 문제를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연령층 표본편중 문제나 과도한 가중치의 폐해를 드러내려면 어려운 샘플링 이론을 설명하는 것보다 가중치를 주기 전 후보 지지율과 가중치를 준 후 지지율을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번 조사들처럼 과도한 가중치가 부여된 경우 가중치 여부에 따라 조사결과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수준이다. 이를 보고도 쉽게 조사결과를 인용할 후보나 언론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 여론분석센터 수석연구원

 

 

조사나 보도에 대한 관리 못지 않게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여론조사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논란 역시 여론을 통한 민의 수렴 자체보다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후보 진영과 조사윤리와 책임보다 비용절감을 우선한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았기에 가능했다. 언론 역시 논란과정에서 조사의 신뢰성 문제에 비판의 날을 세우지만, 이들 조사의 발주기관 자체가 언론이라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여론조사에 외주 맡긴 정치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여론조사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맹목적인 불신이 공존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치주체가 부실해진 결과이다. 직접 민의가 움직이는 현장에서 국민들의 고충을 듣고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수렴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인데, 정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여론조사라는 외적인 수단에 울고 웃는다. 아무리 좋은 여론조사도 민의를 읽는 수단이지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다. 주권자로의 권리와 책임까지 조사회사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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