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이 난타를 당하고 있다. JTBC가 15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였던 경향신문 기자와의 인터뷰 녹취파일을 방송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의 녹음파일을 제공했고, 16일 지면을 통해 전문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JTBC가 녹음파일을 공개하자 15일 저녁 전문을 공개했다. 경향에 따르면 이 녹음파일은 검찰의 수사를 도운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에 의해 JTBC로 유출됐다.

경향신문은 “JTBC가 무단 방송했다”며 “유족과 경향신문은 JTBC와 녹음파일을 무단으로 유출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은 ‘알 권리’를 이유로 들었다. 손 사장은 15일 방송에서 “시청자 여러분들의 알 권리를 우선하고 그동안 단편적으로 보도된 통화내용 외에 전체적인 맥락을 그대로 전해드림으로써 그 뜻이 무엇인가, 어떠한 내용을 함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많은 분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15일자 JTBC '뉴스룸' 갈무리.
 

관련기사 : <JTBC 성완종 녹취 공개에 경향신문 “법적대응할 것”>

이번 사안을 ‘알 권리’와 결부시킬 수 있을까. ‘알 권리’란 권력이 정당한 취재와 보도를 막으려 할 때 이에 대항해 쓰는 개념이다. 만약 경향신문이 권력의 외압에 의해 성완종 리스트 보도를 중단했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전문 공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면 JTBC가 ‘알 권리’를 내세우며 인터뷰 육성을 공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이미 16일 지면에 녹음파일 전문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JTBC는 경향신문이 예정한 시간보다 8-9시간 앞서 녹음파일을 공개했고, JTBC 보도로 경향신문이 보도시간을 앞당김에 따라 결과적으로 경향신문보다 1-2시간 먼저 녹음파일을 공개한 셈이 됐다. 경향이 곧 보도할 사안을 몇 시간 앞서 보도하는 것이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인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성 전 회장의 유족들은 육성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육성 전문 공개에 유족이 동의하지 않는다며 전문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성 전 회장의 장남 승훈씨도 JTBC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육성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박래용 경향신문 보도국장도 오병상 JTBC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유족들이 녹음파일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며 방영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JTBC 뉴스룸은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들의 휴대전화 동영상을 보도했다. 유가족들은 JTBC를 신뢰했기에 이 동영상을 건넸을 것이고, JTBC는 영상을 공개하며 유족의 심정을 배려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약 JTBC가 포렌식 작업을 하던 전문가에게 이 영상을 받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 동영상 보도를 원하지 않았다면 JTBC가 이 영상을 보도했을까.

이번 사안은 ‘알 권리’가 아니라 ‘취재경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를 위기에 빠트린 두 가지 단독, 정윤회 문건의혹과 성완종 리스트를 비교해보자. 정윤회 문건 의혹은 세계일보의 단독보도로 알려졌으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JTBC 등 다른 언론들이 새로운 팩트를 추가하며 취재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경향신문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성 전 회장이 경향과 마지막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이후 CBS 노컷뉴스가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을 파헤치는 단독보도를 내놓긴 했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다음 날 경향신문 1면을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처지였다.

   
▲ 16일자 경향신문 8면
 

아마 많은 기자들이 경향신문의 팩트 외에 새로운 것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JTBC는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를 입수하며 새로운 팩트를 내놨다. 박은하 경향신문 기자는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향신문 편집국에서도 (JTBC) 보도를 보고 바짝 긴장했다”고 밝혔다. JTBC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녹음파일을, 유족의 동의도 없이 공개한 이유도 이러한 취재경쟁의 맥락에서 읽어야한다.

실제 JTBC의 15일자 녹음파일 공개는 매우 다급해보였다. 자막에 오타가 많았다. 손석희 사장은 방송에서 “굉장히 늦게 이 자료를 입수해 급하게 제작해서 한두 군데 오타가 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양해를 좀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어떤 이들은 경향신문이 JTBC의 녹음파일 공개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네 꺼 뺏겨서 저런다’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경향의 성 전 회장 인터뷰를 ‘자다가 로또 맞았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왜 죽음을 결심한 성 전 회장이 하필이면 경향신문 기자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을까? 경향신문이 ‘ㄱ’자로 시작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JTBC를 신뢰해 휴대폰 영상을 건넸듯이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 기자를 신뢰했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수많은 기자 중에 하필 나에게 전화를 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기자에게 매우 중요한 취재력이다.

경향신문은 이완구 총리가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말한 다음 날 3천만 원이 이 총리에게 전해진 경위를 자세히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 측 인사를 만나 추가로 취재했다. ‘비타 500 박스’라는 디테일은 성 전 회장의 입이 아니라 이 추가취재를 통해 나왔다.

(관련 기사 : <[단독]2013년 4월4일 오후 4시30분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언론사의 취재경쟁이 심해질 경우 어떤 비극이 발생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JTBC는 다른 언론이 ‘기레기’라 불리던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1주기 하루 전 JTBC의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JTBC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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