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신문 판매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스포츠신문을 ‘먹여 살린 것’은 박찬호다. 경기가 열리고 있을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겨울철 같은 비수기에도 박찬호 기사가 1면에 나가면 ‘기본’은 팔린다는 것… 물론 연예기사가 판매에 끼치는 영향력도 무시 못 한다. 최진실·GOD·HOT·조성모 등 스타 관련 기사가 1면에 실리면 곧바로 독자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특히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비수기에 연예 기사, 특히 스캔들 기사는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다.”

지난 2001년 4월 당시 스포츠신문의 가판 경쟁과 관련해 신동아에 실렸던 기사 중 일부이다. 당시 스포츠신문의 판도는 한국일보가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와 1985년 스포츠 일간지 시장에 뛰어든 서울신문사의 ‘스포츠서울’, 1990년 연예와 만화 지면을 강화하며 탄생한 ‘스포츠조선’의 3파전 양상이었다.

고교야구 붐에 이은 프로야구 열풍,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월드컵 4강까지 화려했던 스포츠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포츠신문. 지하철 가판에 펼쳐진 스포츠신문 기사에 모두가 눈을 돌리곤 했던 그때의 향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스포츠지 위상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일 것이다.

독자가 신문을 고르는 데 걸리는 `20초’ 가판 전쟁에 목맸던 스포츠신문의 발행부수는 반 토막이 난 지 오래고, 전체 매체 수는 2배 이상 늘었지만 신문광고 매출은 호황기의 반의반으로 급감했다. 2002년 지하철 무가지 등장은 스포츠지의 광고시장을 잠식해 나갔고, 포털이 뉴스 플랫폼을 장악한 2000년대 중반부턴 콘텐츠 경쟁력도 무력화됐다. 연성의 어뷰징 기사를 남발하지 않으면 온라인 광고 수익조차 기대할 수 없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 지난 2007년 12월 3일자 스포츠서울·스포츠조선·일간스포츠 1면.
 

200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신문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등 스포츠 경기들이 신문사에 큰 성공을 가져다줬고, 연예인의 근황 소개와 인기 드라마의 제작 상황, 연예가 화제 등의 기사가 특별한 시즌 없이도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교적 안정된 삼국지 구도를 유지해 나가던 스포츠 일간지 시장은 1999년 3월 국민일보사 계열의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2001년 9월 경향신문의 ‘굿데이’ 창간으로 본격적인 가판 경쟁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그럼에도 스포츠신문이 한동안 호황기를 누렸다는 사실은 생경하다. 이런 차이는 스포츠신문의 발행부수와 직원 수, 매출 등을 통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10년 이전에는 스포츠신문 발행부수를 별도로 집계하지 않았지만 당시 언론보도 등을 보면 주요 스포츠신문은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50만 부 이상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는 200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점차 내리막길을 보이는데 2004년 4월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당시 3대 스포츠신문 중 한 곳은 발행 부수가 크게 줄어 대외적으로는 40만 부가 발행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판매 부수는 40만 부를 크게 밑돌았다. 가판도 다른 스포츠지들과 마찬가지로 50% 이상 판매율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잘나가던 스포츠지 부수 반 토막, 직원·매출은 반의반 토막 

지난해 한국ABC협회가 발표한 2013년 스포츠신문의 발행부수를 보면 20만 부 이상의 신문을 찍어내는 매체는 스포츠조선(26만 부)과 일간스포츠(24만 부)뿐이다. 스포츠서울과 스포츠동아는 18만 부가량이며 스포츠경향과 한국스포츠는 7만 부, 스포츠월드는 4만여 부에 그쳤다.

스포츠신문 종사자 수와 매출액 감소는 이보다 더 뚜렷했다. 한국언론재단이 발간한 ‘한국신문방송 연감 2003/2004’를 보면 2003년 스포츠신문 5개 직원 수는 1280명이었다. 언론사별 인원은 스포츠조선이 29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간스포츠가 222명으로 가장 적었다. 정규직 비율도 스포츠신문이 94.2%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언론재단이 발간한 ‘2014 신문산업 실태조사’ 통계에 의하면 2013년 기준 5대 스포츠일간지 종사자 수는 323명으로 급감했다. 감소 폭도 2011년(494명)에서 2012년(424명)과 2013년으로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다.

매출액 역시 지난 2000년 스포츠조선과 스포츠서울이 900억 원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최근 3년 연속 스포츠신문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에도 스포츠조선·일간스포츠·스포츠서울 3개 신문사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매출액도 3개 신문사를 합해 753억여 원이었다. 

이에 대해 언론진흥재단은 “일간스포츠는 전년 대비 매출액이 35.32%나 축소돼 207억여 원에 불과했고 스포츠조선도 300억여 원으로 -21.34%의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스포츠서울(-6.64%)은 상대적으로 작은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었지만 2012년 성과가 최악이었고, 당기순손실도 269억여 원으로 매출액을 앞질렀다”며 “스포츠지가 수행하던 많은 기능을 스마트폰이 대체하고 있고, 더욱이 속보성이나 현장중계 등에서 모바일을 이길 도리가 없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4년 4월 신문광고 불황과 무료신문 창간으로 스포츠신문 가판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서울 시내 한 지하철 가판대에서 스포츠신문을 구입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스포츠신문 ‘삼국지’라고도 불리며 소위 ‘잘 나가던’ 스포츠지가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이렇게 급격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미디어환경 변화 탓뿐일까.

스포츠신문 관계자들과 학계의 공통적인 진단은 1차적으론 지하철 무가지 등장으로 인해 광고시장이 축소되면서 스포츠일간지 모두 경영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일간스포츠의 한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IMF 이후 광고 물량이 줄면서 경영 압박이 시작됐는데 1차적 타격은 무가지 등장으로 가판 중심의 신문을 돈을 주고 안 사게 되면서 가장 크게 받았다”며 “그러고 나서 뉴스 소비가 포털 중심으로 가는 구조가 됐는데 스포츠신문은 포털에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고 결국 2000년대 이후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렸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파란닷컴과의 독점 계약이었다. 지난 2005년 5대 스포츠신문들이 한꺼번에 네이버·다음과 계약을 끊고 KT그룹 계열 KTH의 포털사이트 파란닷컴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네이버와 다음에는 마이데일리와 스타뉴스 등 연예스포츠 분야 신생 인터넷매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타깝게도 파란닷컴은 포털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스포츠신문들과 독점 계약도 1년 만에 끝났다. 

무가지의 등장과 독자적 포털 구축 실패…자본력도 취약해

일간스포츠 기자는 “가판 판매 비중이 크게 줄면서 온라인 수익을 위해 언론사마다 자체적으로 닷컴을 만들었는데 경영이 어려워지자 나중에 상당수 분사를 했다”며 “처음엔 포털에  기사 제공을 큰 수입원으로 생각 안 해 별 고민 없이 뉴스를 공급하다가 네이버 등 다른 포털에 비해 파란이 많이 준다고 해서 독점 계약을 했는데, 신문사 경영을 좌우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포츠신문이 호황이던 시절 연 매출이 900억 원 이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 포털에서 주는 연 12억 원 정도는 큰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포츠지들의 파란과 독점계약은 인터넷 스포츠·연예 매체의 범람으로 이어졌고, 연합뉴스와 CBS노컷뉴스 등에서도 연예 기사를 쏟아내면서 스포츠신문은 뉴스 생산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됐다. 이에 따른 경영 위기로 스포츠신문이 더욱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다른 한편에선 포털이 뉴스 플랫폼을 장악하기 이전부터 이미 자생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90년대 후반부터 스포츠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한 전직 기자는 “인과관계를 따져봤을 때 파란닷컴과의 독점계약이 스포츠신문 위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나 이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라며 “경영 측면으로 봤을 때 모든 스포츠신문이 독립사업체가 아닌 종합지 자회사로 시작해 독자적 경영전략을 세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스포츠신문이 2000년대 초반 코스닥에 상장했다가 코스닥이 무너지면서 기존에 벌었던 돈이 거의 모회사로 넘어갔고, 유보금과 자산도 없는 상황에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스포츠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할 틈도 없이 업계 1·2등 신문이 그렇게 무너지면서 광고시장을 모두 잃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쇄광고시장에서 스포츠신문의 추락은 해마다 지속되고 있고 인터넷 광고는 지난 2011년부터 신문광고를 추월했지만, 인터넷 광고 역시 일정 부분 모바일로 넘어가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스포츠신문은 모바일 광고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가 지난 2013년 <신문과방송> 6월호에 기고한 2013년 1분기 모바일 디스플레이 광고비 비중 그래프를 보면, 포털이 36.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스포츠신문은 상위 10곳 매체 중 꼴찌인 1.73%를 기록했다. 

“어뷰징만으론 한계수익 뚜렷, 라이프스타일·지역 흐름 읽어야”

스포츠서울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스포츠신문사에겐 신문광고시장이 무너지는 속도에 비해 인터넷 광고가 늘어나는 건 월 3억~4억 원 정도의 소폭에 불과해 인터넷 광고에만 의존해선 벌충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콘텐츠 파워가 포털로 넘어갔고 점차 모바일로 이동하는 마당인데, 스포츠신문 콘텐츠가 모바일 환경에서 읽히기 좋은 강점을 살려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고 진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고 밝혔다.  

현재 스포츠신문들은 줄어든 광고 매출을 메우기 위해 오프라인 지면 제작 비용을 줄이고 온라인과 뉴미디어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다양한 수익사업에도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타개책을 못 찾고 있는 상황이다.

   
콘텐츠에 대해 더 알기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판매 방식을 통해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미국의 스포츠 매거진 스포팅 뉴스(sporting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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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인건비와 숙련도가 낮은 비정규직·파견 기자들을 고용해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 기사를 대량으로 포털에 쏟아냄으로써 페이지뷰를 통한 온라인 광고수입 늘리기에 급급하지만, 포털의 정책 변화와 콘텐츠 질 하락을 극복할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는 문제 인식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자생적 모델을 만들어야 될 때 콘텐츠에서 승부가 나기 때문에 콘텐츠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로 가야 한다는 인식은 같을 것”이라며 “버즈피드와 같은 콘텐츠 큐레이션을 통해 재밌는 기사를 만드는 방향과 SNS에서 공유하기 쉬운 카드뉴스와 동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수익모델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메릴랜드 주 최대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일간 신문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은 유료 모델을 실시하고 지역 구독자들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풋볼팀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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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스포츠신문이 위기의 돌파구를 좀처럼 못 찾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 포털에서 트래픽을 많이 차지하는 스포츠신문과 인터넷 스포츠·연예 매체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 같은 공급 과잉으론 트래픽이 많아도 광고수익의 한계는 뚜렷하다”며 “트래픽 증가에 매몰돼 어뷰징에 집중하다 보니 광고주와도 접점은 축소돼 비즈니스 면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이어 “비용이 많이 안 들고 어뷰징만 해도 아직 그럭저럭 먹고는 살겠지만 더는 규모를 키우기 어렵고, 결국 스포츠지들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다양한 측면을 다뤄야 광고주와 접점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스포츠 분야만 해도 프로야구 등 메인경기에만 집중하고 돈 되는 골프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미국처럼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한 스포츠 사업이라든지, 스포츠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위한 기획력과 투자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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