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R&D 투자 지원, 한국만 역주행’이라는 기사는 매우 이상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라는데 객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결론으로 끌어낸 주장도 황당무계하다. 이 신문은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기업의 연구개발(R&D)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세제 감면 같은 인센티브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거꾸로 관련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또 “산업현장에선 R&D 지원 축소가 R&D센터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세금을 더 거두려다 오히려 경제적 손실을 키운다”고 경고했다. 6면에 이어진 기사에서는 “R&D 투자가 1조원 줄면 일자리 1만개가 사라진다”는 전경련 팀장의 주장을 제목으로 뽑기도 했다. 애초에 정부 지원이 줄면 기업들 R&D 투자도 줄어들 거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노골적인 협박성 기사다.

   
조선일보 19일자 1면.
 

조선일보의 주장을 요약하면
-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연구개발비 총액의 최고 6%에서 지난해 3~4%로, 올해는 2~3%로 줄였다.
- 세계적으로 R&D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 이대로 가면 R&D가 줄고 성장 동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 R&D 1조원이 줄면 일자리 1만개 이상이 사라진다.
- 지원이 줄면 기업들이 R&D센터를 해외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
등이다.

조선일보가 빠뜨리고 있는 사실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비중은 4.15%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가운데 2위다. 1위는 4.21%인 이스라엘이고 OECD 평균은 2.40%다.

   
GDP 대비 R&D 투자 비중. 빨간색이 일본, 파란색이 한국, 검정색이 OECD 평균. ⓒOECD.
 

정부의 민간부문 R&D 투자에 대한 보조금과 조세지원은 GDP 대비 각각 0.19%와 0.2%로 러시아(0.39%/0.02%)와 슬로베니아(0.28%/0.06%), 미국(0.26%/0.06%)에 이어 4위다.

한국은 R&D 투자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 지원 규모도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일보가 문제 삼는 것처럼 2013년 R&D 세액공제를 비롯해 비과세·감면 제도가 일부 축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대기업들에 과도하게 편중 지원된다는 비판 때문에 축소된 것이고 여전히 국내 기업들이 받는 세제지원은 해외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GDP 대비 R&D 투자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 순위. 한국은 러시아와 슬로베니아, 미국에 이어 4위다. ⓒOECD.
 

2012년 기준으로 R&D 관련 조세지출은 2조4977억원으로 전체 조세지출 가운데 8.4%를 차지하는 1위 부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정부가 기업에 제공하는 R&D 조세혜택의 40.4%를 상위 10개 재벌이 차지했다.

   
기업 세금을 깎아주기 위한 온갖 다양한 구실들. 국세청 2011년 국세통계. 실제로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투자나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에 따르면 2010년에 10대 재벌기업과 비10대 재벌기업의 고용창출계수는 각각 5.6과 9.9으로 세금 10억원을 깎아주면 재벌 기업은 5.6명, 비 재벌기업은 9.9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미미하거나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통계는 얼마든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기업 가운데 상위 1521개(0.3%) 재벌 계열 기업들이 전체 국내 법인 46만614개 기업이 받은 공제감면 합계 9조3314억원의 58.5%를 차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3년 R&D 투자에 12조7954억원을 쓰고 1조3607억원을 공제받았는데 이는 전체 R&D 세액공제 2조9155억원의 46.6%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08~2012년 동안 낸 법인세 7조8435억원 가운데 6조7113억원을 돌려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삼성그룹의 유효세율은 16.2~16.6%로 흑자기업 전체 평균 유효세율 17.1~18.6% 보다 낮았다.

   
삼성선자는 세금의 절반을 돌려 받기 때문에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실효세율이 낮다. 삼성전자 법인세와 비과세·감면액 추이. 한국신용평가 자료, 강병구 인하대 교수가 정리, 미디어오늘이 가공. 그래프에서 빨간색이 비과세·감면액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딱히 새로울 게 없는 전경련이 늘 하던 주장 그대로다. R&D 지원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세금 깎아달란 말이고 투자 많이 하는 기업에 더 많이 깎아달라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전경련은 대기업 편중 논란에 대해서도 많이 투자하는 기업들이 세액공제를 많이 받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논리로 맞서왔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투자가 줄고 투자가 줄면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는 주장도 해묵은 레퍼토리다.

조선일보는 과도한 비과세·감면 때문에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이 오히려 더 낮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 10대 기업의 실효 법인 세율은 13.0%로 대기업 평균 17.3%는 물론이고 중소기업 평균 13.3%보다 낮다. 2012년 기준으로 법인세 공제감면 금액의 74.9%가 대기업에 귀속됐고 대기업의 47.3%가 최저한세를 밑도는 세금을 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더 깎아달라는 전경련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물론 한국이 R&D 부문 정부 지원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서 더 늘리면 늘렸지 줄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R&D는 정부 지원과 상관 관계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간 부문 투자를 대체하는 효과도 있다. 조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구개발 투자에 조세지원이 1% 늘어날 경우 연구개발 투자가 추가적으로 0.36%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과 민간 연구개발 투자는 오히려 보완적이라기보다 대체적인 관계로 정부 지원이 1% 늘어나면 민간 연구개발 투자는 0.04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이 오히려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crowding out)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에서는 조세지원의 투자견인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원은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R&D 조세지원은 유지 또는 지속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지만 대기업은 유지 또는 점진적 축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R&D 조세지원과 별개로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도 전경련의 단골 민원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고투세제는 과거 임시투자 세액공제가 2011년 이름이 바뀐 것인데 1982년 도입된 이래 올해 까지 30년 동안 중간에 8년을 제외하고 22년간 적용돼왔다. 임시가 아니라 상시 세액공제라고 불릴 정도였다. 한시적인 일몰 지원제도로 도입됐지만 폐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면서 투자유발 효과도 크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조선일보 기사에는 대기업들에 현금이 넘쳐나는 상황이라는 사실이 빠져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매출 기준 국내 10대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자산(연결 기준)이 125조4100억원에 이른다. 2013년 말 108조9900억원과 비교하면 15.1% 급증한 규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의 현금성자산(현금 포함)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158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3년 말 150조3천억원보다 8조원이 증가한 규모다.

현금을 쌓아두고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으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애초에 기본 전제부터 잘못돼 있다. 정부 지원을 줄이면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는 엄포는 말할 것도 없다.

   
투자지원이라고 하지만 결국 세액공제 형태로 지원된다. 이 그래프는 깎아준 세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준다. 소득분위는 2012년 국세통계연보 수입금액(매출액) 기준. 비중2와 공제감면비율2는 공제감면총액에서 외국납부세액공제를 제거한 후 산출. 자료: 홍종학 의원실, ‘수입금액 100분위별 법인세 주요항목 신고현황(2012년 국세통계연보기준)’, 국세청 국회제출자료,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최근 법인세 인상 논란이 벌어지면서 조세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자 그걸 회피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이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2009년~2013년간 법인세 실효세율 및 공제감면세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전체 근로소득자의 실효세율은 2009년 10.59%에서 2013년 11.3%로 증가세였지만 법인의 실효세율은 2009년 19.59%에서 2013년 15.99%로 감소세를 보였다. 개인이 내는 세금은 늘고 기업이 내는 세금은 줄고 있다.

전경련이 감추고 싶은 진실이 여기 있다. 법인세 공제감면세액 총액은 2009년 7조 1483억 원에서 2013년 9조 3197억 원으로 2조 1714억 원 가량 증가했다. 공제감면세액 중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 비율은 2009년 21.61%에서 2013년 30.57%로 급증하는 추세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실에서 2008년~2012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은 기업 지원금의 43.4%를 차지했다. 2012년 기준 기업 규모별 연구비 지원 현황을 보면 대기업은 한 곳당 평균 43억2000만원을 받았고, 중소기업은 평균 3억2000만원을 받았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은 R&D투자의 상당부분을 기업에 위탁하고 있는데 이런 사례는 외국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워낙 법인세율이 낮아서 세제감면수준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과거 유럽이나 미국도 법인세율이 아주 높았다가 세율을 낮추면서 감면도 낮췄는데 한국은 법인세율은 낮추면서 지금껏 감면수준은 낮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요한 건 법인세율과 감면수준의 조화인데 한국은 법인세가 낮고 감면 수준은 높기 때문에 법인에 대한 실효세율은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