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녹취록 파문 이후 한국일보의 논조 변화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1월 동화그룹(승명호 회장)이 인수한 이후 법정관리를 졸업하면서 누차 기존의 ‘중도’ 가치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일보 내·외부에선 지면 기사 배치와 사설 등을 볼 때 논조가 우경화 또는 상업화돼 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일보는 지난 4일 <모처럼 혁신효과 기대되는 갤럭시S6 출시>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내며 최근 삼성전자가 선보인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6에 대해 “삼성이 명운을 걸고 만든 제품”이라고 치켜세웠다.

“표면은 금속과 강화유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세련된 일체형으로 디자인했고, 첨단 무선 충전기술, 모바일 결제서비스인 ‘삼성페이’ 등이 적용됐다. 무엇보다 전통적 마그네틱 리더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애플페이’보다 편의성을 더 높인 삼성페이를 발 빠르게 탑재한 점이 돋보인다. 휴대폰을 충전패드에 10분 올려 놓으면 4시간 쓸 수 있는 무선·고속 충전기능은 애플도 내놓지 못한 서비스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다.”

   
▲ 지난 4일자 한국일보 사설
 

놀랍게도 이는 경제면 신제품 소개 기사가 아닌 한국일보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설에 실린 내용이다. 한국일보는 이 밖에도 지난 4일부터 <깔끔한 디자인, 선 없이 충전…삼성 야심작 승부수 띄웠다>, <“삼성폰 중 가장 아름답다” “모바일결제 아이폰에 반격”>, <“갤S6, 잠수함용 금속과 최강 강화유리로 만들었다”>, <삼성페이, 갤S6 타고 하반기 출격> 등의 기사를 연일 내보냈다. 

이에 대해 이준희 한국일보 주필은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일보의 사설은 논설위원들과 협의해 내가 주제를 정하는데, 삼성 갤럭시S6는 외신에서도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등 주목하고 있었다”며 “아이폰6가 나왔을 때 우리 신문의 반응도 똑같았고 이슈 크기로 보나 한국경제 끼치는 영향으로 보나 적절한 아이템 선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논조 변화는 삼성 관련 기사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중 나온 기사에서도 날카로운 분석이나 정책 검증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일보는 지난 3일 <“열사의 땅서 새 성장엔진 찾자” 朴 대통령 代 이은 중동 진출> 기사에 이은 4일 <한국형 스마트원전 첫 수출 길 열렸다> 기사 등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자원외교 비리로 얼룩졌던 ‘원전 수출’ 정책에 대해 “창조경제 정책을 처음 수출하는 것으로, 창조경제가 글로벌 경제발전 모델로 확산될 것”이라는 청와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할 뿐이었다. 

   
▲ 지난 3일자 한국일보 4면
 

아울러 14일(박 대통령 ‘블루·그린’ 사랑)과 15일(중동 간 박 대통령 무채색 드레스코드) 한국일보 지면을 형형색색으로 장식했던 ‘대통령의 패션’에 대한 기사는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과 맞물려 ‘절제된 색으로 예의와 격식 외교’, ‘튀는 색으로 이미지 외교’라는 표현과 함께 대통령의 취임 초기 보수언론이 주로 다뤘던 ‘낯간지러운’ 보도를 방불케 한다.

해당 기사와 관련해 고재학 편집국장은 “(대통령 패션 기사는) 포털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였고, 사진부에서 2년 동안 찍은 2만 장의 사진을 분석해 기획한 것”이라며 “독자들에게도 많은 반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대한 포털 누리꾼들의 반응을 살펴본 결과 한국일보와 관련해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은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은 옷 한 벌 사 입기가 어려운 판에 2년 동안 124벌의 새 옷을 입다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이냐 패션모델이냐. 빨아대는 한국일보도 대단하고.”(다음), “이게 뉴스거리가 되냐”(네이버), “이런 XXX 기사를 한국일보까지 써야 하나요?”(페이스북) 등이었다. 요즘 유행어로 하면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 기사인 셈이다.

   
▲ 지난 4일자 한국일보 14면
 

한국일보 내부에서도 최근 청와대와 삼성 등 정치·자본권력을 향한 논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부장급 이상의 한 한국일보 기자는 “내가 보더라도 최근 동화 인수 이후 비판성이 상당히 퇴색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며 “지난 인사 등 회사가 말을 안 듣는 간부를 솎아내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부장단 회의에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기사 발제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새 경영진의 목표는 어떡하든 매출을 늘리는 쪽에 신경을 쓰지 지면 콘텐츠 강화엔 관심도 없다”며 “노조 나름에선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려고 하긴 하는데 역부족이고 내부적으로 비판과 감시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한국일보 기자도 “동화 인수 이후 아직은 논조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갤럭시S6는) 우리 사설에 쓸 만한 내용이 아닌 것 같고 문제가 있다”며 “지금 부장단들이 많이 바뀌어 조금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 같은 사설과 기사가 반복된다면 회사 내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주성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지부장은 지난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논조의 변화가 있으면 당장 내부에서 지적을 하고 시끄러울 텐데 지금 그런 지적은 내부에선 없다”며 “만약 논조 변화가 있거나 특정 기업이나 정치집단에 대해 과도하게 옹호한다면 당연히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제목과 본문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편집자 주 3월6일 오후 1시40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