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아저씨. 우리가 고생고생해서 얻은 일자리가 ‘저질’이면 누가 제일 힘들지 생각해보세요. 우리도 힘들지만 우리가 우리 엄빠 세대 부양하기도 힘들 거고, 현금 용돈은커녕 빨간 내복도 못 사드릴 거예요. 손자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구요. 애한테 들일 돈도 없지만, 애 보기도 힘든 환경에서 일하게 설계해두고 우리한테 뭔가 막 기대하고 막 그러실 건 아니죠?”

지난달 초 서울의 일부 대학가에 <최씨 아저씨께 보내는 협박 편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화제를 모았다. 

이 대자보는 20대들이 만드는 온라인 미디어 ‘미스핏츠’(misfits)가 “정규직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겁이 나 인력을 못 뽑고 있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을 오프라인 대자보 형식으로 옮긴 것이다.

이 글은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20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 누리꾼은 “대학 가는 아들을 둔 엄마의 심정으로 이 학생들 입장이 너무 이해되고 가슴이 아리게 아프다”며 “정말 우리나라는 왜 이리 계속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하고 있는지, 대선 후보 때 공약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커지고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미스핏츠 홈페이지
 

지난해 8월 5일 창간해 10월 20일 인터넷 신문으로 정식 등록까지 마친 미스핏츠는 처음엔 학보사 출신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쓰고 싶은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3명에서 시작한 미스핏츠 운영진은 현재 10명으로 늘었고 미스핏츠에 기고하는 필진까지 합하면 20여 명이 현재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는 새로운 콘텐츠부원들을 영입하기 위한 모집공고까지 낸 상태다. 

“‘미디어’라는 존재가 신통방통하고 오묘한 존재인 줄은 나이를 먹어 가며 알게 됐습니다만, 그 미디어가 나를 대표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소위) 언론사가 3000여 개라는데 그중에서 그 누구도 내가 느끼는 내 세대의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았던 거죠”

미스핏츠는 스스로를 ‘20대가 말하는 언론’을 표방하지만 20대만을 위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지난해 10월 하루에만 15만 명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썅년이래> 글은 롯데 자이언츠 야구팀 치어리더 박기량씨의 눈물을 이야기했고, 지난해 12월 <잣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은 제조·무역업에 종사하는 한 사무직의 ‘죄스러운 고백’을 담았다.

   
▲ 지난해 8월 SNS상에서 화제가 된 미스핏츠의 ‘한 여대생의 고백’
 

박진영 미스핏츠 공동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20대의 의견을 종합한다기보다 논리적으로 설득 가능한 다양한 글을 보여줌으로써 20대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창구가 됐으면 좋겠다”며 “최씨 아저씨 얘기도 그렇고 박기량씨를 향한 시선에 대한 글도 아이템 자체가 20대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이걸 바라보고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에서 사람들이 많이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사람들은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속 시원히 얘기해주면 거기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씨 아저씨 글을 쓰며 느낀 게 생각보다 당연하고 자신과 그리 멀지 않은 내용에 공감하고 반응한다는 거였다. 진짜 20대가 말할 창구가 없거나 뭐가 문제인지 뻔히 아는 것들을 우리가 확실하게 대신 얘기해 주니까 호응을 이끌어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보다 뻔한 주제라도 새롭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던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여자가 요구받는 처세는 딱 ‘이쁘고 싹싹한 여자 후배’의 역할이다. 웃긴 건 ‘그런 처세 안 할래요’하면 여성주의 열사 취급을 받으며 욕을 먹고, ‘열심히 요구하신 역할을 수행해 보겠사와요’ 하면 여우 같은 년이라며 욕을 먹는다는 거다. 이러나저러나 닐리리 썅년이다.” 

가령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썅년이래> 글에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모순적 태도와 차별에 대해 여성이 ‘처세’를 잘 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차별’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이다.  

   
▲ 미스핏츠 카드뉴스
 

미스핏츠 콘텐츠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글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는 이미지와 카드뉴스 제작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기사에 들어가는 이미지도 카카오톡 메시지창에서부터 만화 캐릭터, 신문광고, 포스터, 방송 캡처와 패러디물 등 다채롭고 코믹하다. 

박 대표는 “대학에 다니면서 페이스북 등을 정말 많이 했고 좋아하는 글들을 보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는 형식이 있고, 좋은 내용임에도 썸네일을 고려 안 하거나 중요한 소개 문장이 뒤에 있으면 안 보게 되는 아쉬움을 느꼈다”며 “우리도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이 긴 편이지만, 좀 더 짧은 호흡에 내용을 비약하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전달하는 카드뉴스와 영상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스핏츠는 현재 사이트 관리와 콘텐츠 제작 등 모든 비용을 사비를 들여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근 청년 주거 문제와 관련한 ‘청춘의 집 프로젝트’와 같은 뉴스펀딩도 시작했다. 이달 말까지 후원금을 모아 다음 달 세계 각국의 청춘의 집을 찾아가겠다는 제안을 통해 현재 목표액(2110만 원)의 12%가량을 달성 중이다.

   
▲ 미스핏츠가 진행 중인 뉴스펀딩 ‘청춘의 집 프로젝트’
 

박 대표는 “미스핏츠를 운영하다 보니 스스로 의미를 많이 찾기도 했고 주변의 지지와 응원으로 책임감도 들었는데, 장래성 확보에 대한 고민 중 뉴스펀딩을 진행하면서 희망을 보고 있다”며 “이를 통해 아직은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된 초기 단계이므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놈의 ‘객관성’을 유지한답시고 묻혀버린 이야기가, 사실이, 사건이 있다면 객관성을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20대의 젊음은 찌질하고 불편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아파도 청춘이니까 참으라고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가 아프면 당신도 아프다’고 당당히 얘기하는 20대들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미스핏츠의 발랄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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