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간지를 인쇄하던 업체 한 곳이 또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한국일보가 지난 2006년 ‘제작국 분사’라는 홍역을 치른 후 8여 년간 신문 인쇄를 도맡았던 한국미디어프린팅(주)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2일 미디어프린팅에 보낸 공문을 통해 “다음 달 1일부터 외주인쇄 계약과 성남·창원공장 임대차 계약, 물품공급 계약, 전산시스템 서비스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의 이번 계약해지로 외간(外刊) 신문 등 60~70만 부를 인쇄하던 성남·창원공장이 사실상 매각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미디어프린팅에서 인쇄하던 한국일보의 기존 물량은 타사 외주 계약 방침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일보가 미디어프린팅과 인쇄계약을 해지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경영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 한국일보는 “한국일보의 회생 가능성 극대화와 회생 절차 종료 후 기업의 계속 가능성 제고, 비용절감 등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부득이한 경영 상황과 미디어프린팅의 계약 의무사항 불이행 등의 상황을 종합해 계약을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상진 한국일보 경영전략실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미디어프린팅과의 계약 해지는 회생 절차에서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고 경영상의 이유가 가장 크다”며 “아직 대체 외주 업체 선정은 안 된 상황이고 미디어프린팅과는 계약관계의 종료임으로 문제될 것은 없지만, 우리로선 마지막 결정까지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 신문사에서 야간 윤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신문사 인쇄공장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은 신문 유료부수의 감소와 인쇄산업의 쇠퇴에 따른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추세이긴 하나, 문제는 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재취업 등 이렇다 할 대안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최호천 미디어프린팅 비상대책위원회 총무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일보 측은 법적으로 계약관계상 아무런 책임질 일이 없다고 하지만 인쇄계약만 해지한 것이 아니라 임대계약까지 해지했기 때문에 직원 80명이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한국일보가 우리와 충분히 협의하지도 않고 아무런 대안이나 조치도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인쇄 계통 쪽으로는 경기도 안 좋아 있는 사람도 못 내보낼 판에 재취업하기는 더더욱 힘든 상황”이라며 “당장 직원들은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멘붕 상태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고 실업급여 외에 어떤 자구책이나 보장도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동아일보도 지난 2012년 서울 오금동 인쇄공장 폐쇄 방침에 따라 노동자 70여 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를 겪었다. 이후 이데일리 신문 인쇄계약 체결로 그나마 유지되던 오금 공장의 윤전기마저 지난해 10월 경남 밀양의 인쇄공장으로 이전했다. 

오금 공장에서 일하던 인원은 충정로와 안산 공장으로 원직 복직하는 등 인위적 인력 감축은 없었지만, 당초 5만 부를 찍던 이데일리 신문은 3만 부로 줄었고 안산·충정로 인쇄공장 인원 중 희망자 5명은 밀양 공장으로 옮겼다. 
    
국민일보도 올해 ‘자립경영’ 대책의 하나로 대구인쇄공장을 약 50억 원에 매각했다.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에 따르면 300억 원을 들여 사들인 윤전기와 잉크탱크 등 설비도 5억 원에 헐값으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정남 언론노조 동아일보신문인쇄지부장은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제2, 제3의 미디어프린팅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우리도 신문 인쇄 부수가 줄면서 외주 군소 인쇄 물량을 수주해오는 식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외간이 가격 면에서 손해는 보진 않겠지만 이전처럼 적정 가격을 받을 수 없고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경영진이 미래 청사진을 내놓지 않는 한 현재 고용 인원을 지키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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