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수상하지만 국가가 자행하는 고문과 도청을 정당화하는 칼럼이 유료부수 100만이 넘는 신문사에서 등장할 줄은 몰랐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헌재 결정이 울려주는 경각심>이란 제목의 23일자 칼럼에서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우리 체제를 깔보고 덤벼드는 종북 세력에 울리는 경종”이라고 정의한 뒤 “우리는 분단된 채 이념적 대치 상황에 있는데도 관련자를 고문했다 하면 정권이 넘어가고, 도청했다 하면 정치가 마비되는 나라다”라고 주장했다. 

고문으로 정권이 넘어간 사례를 떠올려보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떠오른다. 이 사건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졌다. 김대중 칼럼의 맥락은 자칫 1987년 이후 민주질서와 개정 헌법을 폄훼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 위험하다. 더욱이 ‘국가안보’를 위해선 고문과 도청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군사독재시절의 논리마저 엿보인다. 아무리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공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했던 시대를 정당화하는 식이어서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다.

북한에 대한 김대중 고문의 비판은 자유다. “친북·종북 세력은 공공연하게 지상으로 부상해 여기저기서 우리 체제를 시험하고 있다”는 주장까지는 백번 양보해 의견차이로 들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북문제에서 수용적이거나 후진적이거나 피곤함을 느끼면서 북한에 관련된 끈을 늦추거나 풀어주는 추세에 있고, 북한은 이것을 극도로 활용하는 분위기다”라는 주장도 경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만큼 늘어질 정도로 방만하고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는 주장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 조선일보 12월 23일자 김대중 칼럼.
 

그는 “미국도 나라의 안보를 해치는 일이면 고문도 하고, 도청도 하고, 추방도 한다”고 적었다. 며칠 전 CIA 고문보고서가 드러나자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며 고문은 미국의 가치에 반한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도청과 광범위한 감시는 전 세계적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고문이 이러한 국제 정세를 모를 리 없다. “늘어질 정도로 방만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칼럼 어디에도 없다. ‘종북 세력’이 활개 치는 게 방만의 증거라면 방만의 주체는 ‘우매한’ 대중인가.

국가 안보를 위해 고문도 하고 도청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의 공안정국에서 다분히 의도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공안몰이에 유리해진 정국을 이용해 독재적 발상을 한껏 드러내는 식이다. 공권력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민 스스로 정부에 위임한 물리적 힘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부의 안위를 위해 사용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빨갱이 척결’을 주장하며 공권력을 남용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 연합뉴스
 

김대중 칼럼은 헌재 결정이 종북세력에게 울리는 경종이라 해놓고, 정작 북한의 집권 정당인 조선로동당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지배방식을 추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김대중 고문은 종북從北으로 의심받게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고문과 도청으로 나라가 들썩여야 정상이다. 김대중 칼럼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조선일보 편집국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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