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봄, 씨앤앰 하청업체 케이블설치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균(38)씨와 하루를 동행하며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기사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사를 읽고 고맙다며, 동료들과 모두 돌려봤다며, 일요일에 집 근처로 찾아오면 소주 한 잔을 사겠노라 말했습니다. 그는 일요일 오후 밖에 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씨앤앰 케이블설치노동자들은 109명의 해고에 맞서 씨앤앰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가 있는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지난 여름 139일 동안 노숙농성을 이어왔지만 저는 그들을 무심결에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2일 그들의 고공농성 소식을 들은 지 며칠 후에야, 농성자 두명 가운데 한 명이 임정균씨 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취재했던 기자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 그들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반성하기 위해 두터운 침낭을 빌려 지난 일요일(23일) 오후 씨앤앰 농성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고공농성장인 20m 높이의 전광판 아래에서는 이날 오후 있었던 ‘씨앤앰 고공농성 노동자를 응원하는 김장과 연대마당’ 행사가 막 끝나고 함께 먹는 저녁식사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 씨앤앰의 대주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20m 상공의 전광판 위에서 씨앤앰 케이블설치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13일째(24일) 이어지고 있다. 23일 오후 농성장 아래에서 김장과 연대마당 행사가 열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건져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을 해왔던 기륭전자 노동조합이 가져온 큰 솥에, 며칠 전 대법원의 해고무효 파기환송 판결로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 보였던 쌍용차 조합원들이 가져온 돼지고기 수육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전국여성농민회가 운영하는 ‘언니네텃밭’에서 보내온 109포기의 절인 배추는 이날 함께 한 노동자, 시민들이 속을 푸짐하게 넣어 김장을 완성해 놓았습니다.

갓 담근 김장 김치에 수육을 곁들인 맛난 저녁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풍물패 ‘터울림’의 신명나는 공연으로 몸을 후끈 덥히고 연대문화제를 이어갔습니다. 민중가수들은 노래로, 민중미술가는 캐리커쳐로, 시민들은 씨앤앰 109명 해고반대 서명운동으로, 정치인들은 현장 방문과 언론 인터뷰 등으로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 풍물패 터울림의 공연.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연대마당에 참석한 동료 조합원들과 시민들에게 전등을 흔들어 보이는 씨앤앰 하청업체 비정규직 임정균 씨(오른쪽)과 쌔앤앰 하청업체 해고자 강성덕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동수 화백이 참가한 노동자의 아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연대마당에서 지민주 씨, 노래패 꽃다지 등이 노래를 불렀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고공농성 소식을 전해듣고 놀란 표정으로 전광판 위를 쳐다본 후 해고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자정에 전광판은 꺼진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하룻밤 노숙을 청한 기자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 주는 씨앤앰 노동자들은, 그 긴 노숙농성에도 관심없던 언론과 여론이 고공농성 며칠 만에 확 달라져 갑자기 많은 주목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자정에 전광판은 꺼졌고, 다음날 새벽 6시에 다시 켜졌습니다. 씨앤앰 정규직 노조원들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텐트를 치고 자며, 2개조로 나눠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밤을 지샜습니다. 컵라면 한 개로 140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걱정했던 것만큼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해고 철회와 단협 준수 등 노동자들의 요구에 씨앤앰과 대주주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품앗이’는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이라는 순 우리말입니다. 양극화와 일자리의 비정규직화가 극심해져가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약자들은, 몸을 가까이해 서로의 온기로 이 춥고 힘든 겨울을 견뎌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줬던 하룻밤이었습니다.

   

▲ 라면 등을 담은 바구니가 밧줄에 매달린 채 농성장 위로 올라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은수미 새정치 의원(가운데)과 장윤선 오마이뉴스 기자가 24일 아침 고공농성장 전광판 아래서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4일 오전 씨앤앰 노숙농성장을 찾아 집행부와 면담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