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여름 언론보도를 통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희생이 2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왜 그들이 자살을 선택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더구나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라는 사실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받은 상처는 깊었다. 멀쩡하던 회사가 갑자기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며 노동자 3분의 1을 정리해고 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니 누구인들 납득했겠는가. 더 놀라운 사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나선 사람보다 ‘희망퇴직자’의 자살과 희생이 많다는 점이었다. 희망을 찾아 스스로 회사를 떠난 사람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시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던 필자는 집행부를 설득, ‘쌍용차 사태 특별조사단’을 발족했다. 그리고 발족과 동시에 한국경영자총연합회에서 협박성 서신이 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개입으로 발생하는 모든 손해에 대해 배상청구를 하겠다는.

하지만 우린 물러서지 않았다. 15명의 변호사들이 대한문, 쌍용차 평택공장, 지원센터 와락 등을 방문하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의견도 들었다. 회계자료 등 가급적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로 했고 나아가 희생자들의 현재 상황, 파업진압과정에서의 인권침해도 조사했다. 하지만 회계기준의 추상성에 비춰 ‘손상차손’을 과다 계상했다는 점만으로 ‘회계조작’이나 ‘고의부도’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 보고서는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 상황, 정리해고 요건충족여부, 파업진압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노사합의 이행과 복직문제, 20여명 이상 희생자 발생의 근본원인, 노사와 국가기관에 사태해결을 위한 제안을 담고 있다. 여러 날 고민 속에 보고서 제목은 ‘인간의 존엄성회복을 위한 특별보고서’로 선택했다. 쌍용차사태는 이념과 노사갈등을 넘어 사람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결부된 사안이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고법에서 해고노동자 승소판결이 나왔다. 5년에 가까운 해고노동자의 거리의 삶이 이제야 끝나는구나, 그래도 한국사회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해고노동자들이 서초동 올 때마다 연락이 왔고 풍찬노숙으로 약해진 그들에게는 법원 앞 식당에서 보신탕 대접 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인 듯 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선고일이 잡혔다. 전원합의체가 아닌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소부’에서 선고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암담했다. 참사 그 자체였다. 또 다시 거리로 내몰린 150여명의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전화를 하기 조차 두려웠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과 주말에 전화를 돌렸다.

25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정리해고노동자들이 2000일을 거리에서 헤매다 일터로 돌아가기를 고대했던 중대한 사건을 전원합의체 회부도 없이 단 종이 몇 장으로 정리된 점에 대해 비판이 필요했다. 정리해고 요건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 사회적 약자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대법원에 한마디 해야 했다. 대법원이 변호사들에게는 아주 높고 견고하며 권위의 상징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마음이 모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법관의 양심이 형성될 최소한 시간도 가지지 않고 내린 것이 분명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심도 깊은 성찰을 통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 대법원에 그 존재의 이유를 물었다. 법과 법관이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은 일반인의 시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그렇게 소홀히 다룬다면 누가 과연 대법원을 믿을까. 

   

▲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아직 기회는 많다. 쌍용차 경영성적은 매우 좋고 복직여력은 충분하다. 모든 것을 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하다. 그 동안 침묵했던 사회와 국가가 진정성을 갖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설 때다. 한상균, 김정우, 김득중, 양형근, 고동민, 송치호…. 그리고 이름 모르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그들의 이름을 혼자 불러보고 얼굴을 그려본다. 서초동 오시면 밥 한 그릇 합시다. 내년 봄 복직되어 탄 월급으로 우리 딸 돌잔치에 꼭 오겠다는 한 약속을 꼭 지켜주세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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