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훌쩍 떠나 둘러보고 오는 여행이든, 일 때문에 다녀와야 하는 출장이든, 삶의 터전을 아예 다른 고장으로 옮기는 이주든, 살다보면 이래저래 오고 갈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오고가는 길목이 도시가 되었고, 도시에서도 특히나 드나드는 사람 많은 곳에는 역이니, 터미널이니, 항구니, 공항이니 하는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 몰리는 주변에는 숙박시설도 생기고, 밥집도 생기고, 유흥업소도 생긴다. 원래 그 고장에 살던 사람들이나 오가다 눌러 앉게 된 사람들이 타지 사람들 재우고, 먹이고, 쉬게 하는 일로 업을 삼게 되는 목 좋은 자리, 그곳이 도심이 된다.

그런데 한때는 가장 목 좋은 곳이라며 활기 넘치던 자리도 세월이 흐르고, 교통수단이 바뀌고, 사람 오가는 길 새로 나고, 거기에 따라 돈이며 인심도 움직이게 되면 중심에서 밀려나 쇠락하게 된다. 그 도시가 오랜 역사와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큰 것이 아니라 교통과 무역 때문에 성장한 신흥 도시 지역일수록 그런 쇠락의 그림자는 빠르고 짙다. 부산의 원도심 지역도 그런 장소들 가운데 하나다.

부산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인천·원산과 함께 일본에 항구를 열게 되면서 근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고, 자동차, 비행기, 열차에 배까지 모든 교통수단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보니 근현대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국내 제2의 도시가 되었다. 그렇게 교통이 발달할수록 점점 사람 발길 뜸해지는 터미널이 있다. 바로 부산연안여객터미널.

   
 
 

70년대 개장하던 당시에는 연간 170만 명이 뱃길로 오가느라 북적이던 여객터미널이 KTX며 자동차, 비행기에 밀려 이제는 하루 한 두 번 사람 실어 나르는 게 고작이다. 많은 사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로비며, 바쁜 여행객들 발길 돕는 무빙워크며, 배타러 드나들기 좋게 기차역도 도로도 가까운 이 좋은 장소를 배 뜨는 시간에 맞춰 하루 한 두 번만 써먹는 건 참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이 터미널에서 '무빙트리엔날레 메이드 인 부산'이라는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고 고마운 일일 수밖에.

'트리엔날레'란 3년 마다라는 뜻, 그러니까 비엔날레, 이탈리어어로 '2년마다'라는 뜻의 말이 미술계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적 규모의 전시회라는 말로 굳어진 말과 같은 맥락이다. 무역과 관광의 도시인 베니스에서 1893년에 첫 비엔날레를 시작한 이래 세계 곳곳에서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부산에서도 이미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부산 비엔날레 말고도 20년 전인 1995년, 처음 시작된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해 대구, 창원, 청주 등 지방자치단체가 국고 지원과 지자체 예산을 들여 여러 도시에서 비엔날레라는 이름의 미술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의 여러 비엔날레들이 썩 제 몫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개 비엔날레의 취지는 동시대 예술 문화의 흐름을 짚어 보여주고, 흐름을 이끌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갈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관람객들이 보고 느낄 거리가 풍성해질 터인데, 예술이 중심이 아니라 ‘관’이 중심이 된 비엔날레들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가령 올해만 해도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초청한 화가 홍성담(59)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에 대해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고서는 사실상 '전시불허' 입장을 통보해 예술에 대한 사전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일이다.

한국 미술판에서 광주와 더불어 국내 양대 비엔날레를 표방해온 '2014 부산비엔날레' 역시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절차를 무시하고 공동감독 제안과 전시감독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성이 논란이 되며 사퇴하는 파행을 겪고 열렸다. 부산 지역의 젊은 예술인들이 '비엔날레 보이콧' 선언을 하도록 수습하지 못한 채 열렸으니 애초부터 제대로 된 비엔날레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고는 하나 막상 비엔날레가 시작되자 언론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고 있다.

"난해한 담론, 기괴하면서도 덩치 큰 규모를 강조하는 설치작업들, 복잡한 개념어 일색의 설명들, 지그재그로 갈팡질팡하는 관람 동선 등에서 일반 관객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이 전시장을 떠도는 건 권태와 피로감"(한겨레, 9월 21일자), "비엔날레가 주는 기대감이 없다", "프랑스의 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같다"(연합뉴스, 9월 19일자)는 실망, "비엔날레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함인지 도통 알 수 없다"며, "실험성과 지역성, 젊은 미술가 육성이라는 애초 의도에서도 벗어난 전시 구성이나 내용이 실망 그 자체"이며 "작품 채우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뉴시스, 9월 21일자)라는 기사들을 보자면 한숨이 나온다.

그렇기에 지난 9월 27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30일간 부산 중구 원도심 일대에서 열리는 복합문화예술축제 '무빙트리엔날레 메이드 인 부산'이 보여주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저력과 생명력이 더 아름답게 여겨질 수밖에.

   
 
 

부산의 5개 문화예술단체가 힘을 합쳐 연안여객선터미널, 용두산, 복병산 세 장소를 거점으로 부산 중앙동 일대 원도심을 옮겨 다니면서 전시·공연·학술 프로젝트를 복합적으로 선보이는 도시 공공예술프로젝트답게, 행사를 주최하는 부산의 젊은 시각예술, 공연예술단체, 인문학 단체들은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외면하거나 지역의 예술가·시민들과 유리된 채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문화적 가치를 강요해온 관 주도의 기존 대형 문화행사들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이승욱 축제 감독이 설명하듯이 기존의 문화공간에서 벗어나 부산 원도심의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형식의 전시와 공연, 시민참여형 인문학 프로그램이 특히 부산이라는 도시를 특징짓는 '무빙(mov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방, 변화, 공간 탈피라는 문화적 표상을 형상화한다.

미술관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혀져가는 도심의 여러 건축물과 골목길을 거닐며 예술 작품과 함께 지역과 삶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도록 기획된 '마지막 출구-가방, 텍스트, 사이트 프로젝트'에는 국내외 작가, 기획자, 비평가 등 1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주말마다 원도심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음악·무용·영상·퍼포먼스·거리예술 등의 프로그램을 새로운 형태의 이동형 무대장치를 통해 선보이는 공연 프로그램 '무빙스테이지-여러가지 공작소' 무빙 라운드(학술 포럼), 토크 콘서트(작가 대담), 아트 투어(현장 탐방)로 구성된 학술 프로그램인 '부산문화예술생태보고서', 시민·문화예술해설사·예술가들이 축제가 열리는 공간을 직접 걸어가며 소통하는 아트 투어 등등 새롭고, 즐겁고, 기대되는 행사로 가득하다.

   
 
 

무빙 워크를 따라 전시된 작품을 보며 처음에는 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두근거림을 느끼고, 공간과 시간이 주는 기억과 역사가 짐 가방에 얹히고, 그 여행의 끝에서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 아이들, 전쟁에 대한 공포, 핵의 위협까지 두루 겪게 된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 움직임이 잘못된 길이라면 바로 잡을 수는 없는 지를 발랄하면서도 진지하게 묻는 부산의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