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견된 문제였다.

19회를 맞는 국제규모의 행사, 처음 시작할 때의 기대와 우려를 딛고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듯 규모며 내용이며 행사 참여자가 점점 더 늘어나 아시아 최대 규모로 커 온 행사, 부산국제영화제.

처음 부산국제영화제가 닻을 올리던 때, 과연 해외에서 이 영화제를 찾아올 게스트가 꾸준히 늘어날지 염려스러웠다. 영화란 그저 ‘가시나’들 꼬여낼 때나 보러가는 작업용 이벤트려니 생각하는 상남자들 목소리가 높은 지역 정서에서 해마다 영화제를 찾아올 관객이 없다면 외국에서 게스트 초청해 번듯한 판을 벌인들 겉치레 요란하고 속은 빌까 걱정도 많았다.

게다가 스크린 쿼터 폐지와 해외 직배, FTA 체결 등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꾸준히 줄어가는 상태에서 국제영화제라는 행사에서 정작 한국영화는 설 자리 없는 들러리만 되는 것이 아닐지 줄곧 불안불안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열아홉 해를 지나면서 부산이라는 도시를 영화의 도시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영화제 기간이면 국내외 스타들, 감독들, 관객들이 부산이라는 도시를 해마다 찾아오도록 하는 행사가 되었다. 영화 상영과 파티, 공연 같은 부대행사로 축제분위기 띄우는 정도였던 초창기를 지나 필름 마켓이며 영화 아카데미, 영화펀드 운영까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성장을 바탕 삼아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등의 영화관련 주요 기관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터를 잡았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번에는 국내외 스타들의 방문, 처음 공개되는 기막힌 작품에 대한 찬사, 이제껏 몰랐던 세상을 펼쳐 보이는 낯선 작품에 대한 기대 같은 영화축제 이야기가 아닌 문제로 이슈가 되었다. 그것도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작품은 개막작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감독의 신작도 아니고, 이름만으로도 사람들 환호가 터져나오게 만드는 스타가 출연한 작품도 아닌 <다이빙 벨>이다.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구조작업에 전국민이 애태우던 때, 이 낯선 장비를 투입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다이빙 벨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이 영화제 존폐가 언급될 정도의 화제작이 된 것은 영화의 작품성 때문이나, 표현의 수위 문제 때문이 아니다. 원래 10월 6일과 10일 두 차례 상영되는 것으로 프로그램에 들어있던 이 영화에 대해, 영화제가 막을 열기도 전부터 상영을 취소시키려는 정치적 외압이 그림자를 드리우자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나서서 상영을 하느냐 마느냐, 한다면 왜 하려는 것이냐를 밝혀야 했고, 결국 예정대로 상영됐다.

지난 6일 오전 11시 <다이빙 벨> 첫 상영이 별 탈 없이 잘 끝나고, 공동 연출자로 참여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까지 진행한 다음에 그런 논란은 잦아들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 상영 다음날인 7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이빙 벨>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더니 김회선, 박대출, 서용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첫 질의랍시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던진 말이 “다이빙벨 상영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작품 하나 때문에 해마다 성장하던 부산국제영화제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정치적으로 이념 편향적인 작품이 사회적 논란을 증폭시키고, 국제전시회 출품작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유통되면서 반정부적인 정서를 이용한다’고 따지는 그 국회의원들은 정작 <다이빙 벨>을 보지도 않았다.

보지도 않은 작품을 지레 반정부적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그들은 정작 ‘다이빙 벨’이라는 낯선 장비가 이토록 화제가 되도록 만들었던 비극,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수습하고 진상을 밝힐 특별법 하나 못 만들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법을 제정하는 일 하라고 뽑아주고, 세금으로 주는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174일이 지나도록, 봄 다가고, 여름 지나, 이제 가을 바람 스산한 지경이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주제에 뭐가 문제인지 좀 살펴보려는 건 반정부적이라고 몰아세운다. 적반하장에 직무유기도 정도가 있지.

부산국제영화제 뿐 아니라 여러 영화제들이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지원받고 있다. 그 지원금은 정부 입맛에 맞는 영화를 상영하네 마네를 통제하는 고삐가 아니라, 국민들이 무엇을 보고, 보지 않을지를 결정할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넓히고, 가꾸기 위한 밑거름이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되어 여러 영상산업 관련기관을 유치하고, 영화제를 축제 삼아 찾은 방문객들이 이 도시에서 사업을 구상하거나 다른 볼거리 먹을거리를 찾게 한 것은 영화제가 지켜온 가치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가 다 명작이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아무리 걸작이라도 관객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영화는 상영 도중 관객들이 일어나 나가 버리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입소문 타고 뒤늦게 표를 구하려 해도 제한된 상영회차가 끝나 버려 발을 동동 구르게도 한다. 어떤 영화는 영화제에서 매진 사례로 개봉될 날을 기다리게 만들지만 수지타산이 안맞아 일반 극장에서는 영영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유독 <다이빙 벨>에 대해 정치권이 이토록 어깃장을 놓는 것은 그 영화가 바로 그들의 아킬레스건에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대통령이 되기도 전인 2005년,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을 냈다가 그게 안 먹히자 영화 속에 삽입된 실제 장면을 삭제하도록 요청한 이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영화가 재현한 사건에 대해 인격권 침해니 명예훼손이라고 시비를 걸었더랬다. 그러더니 기어코 실제 자료화면인 장례식 모습 등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삽입된 것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실제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삭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다이빙 벨>을 상영 못하도록 만드는 것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자꾸자꾸 논란을 키워 결국 영화를 최대 화제작이 되도록 만들어주고, 영화제 마치자마자 개봉 확정까지 되도록 한 것도 결국 그들이다. 보고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다이빙 벨> 하나로 흔들릴 정부라면 지금껏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리라.

79개 국가에서 온 312편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전부가 반정부적인지 아닌지 검열하고 판단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영화제에서 관객과 함께 보고 생각할 작품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은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몫이다. 우리는 그러라고 영화제에 세금이 지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세금으로 세비 받고 제발 정치 좀 제대로 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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