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총 3450여억 원의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외주제작되는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는 제작비 이상의 협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협찬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사실상 해당 기업의 광고·홍보 프로그램으로 활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주목된다. KBS의 공영성이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실이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KBS의 2009~2012년 까지 협찬매출액은 광고매출액(2조3312억 원)과 수신료매출액(2조2895억 원)의 1/10을 넘긴 수준이다.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의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협찬은 ‘방송프로그램제작자가 방송제작에 관여하지 않는 자로부터 방송프로그램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최 의원은 KBS의 외주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제작비를 넘는 협찬을 받으면서 사실상 ‘광고’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2010년부터 2013년 8월까지 KBS의 외주제작 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 제작비를 초과한 협찬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107개의 프로그램에서 제작비 130여억 원을 초과하는 190여억 원의 협찬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KBS는 6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 연도별 KBS 협찬수익과 광고-수신료 수익. 자료=최민희 의원실
 
   
▲ 지난 2013년 방송된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방송화면.
 

특히 KBS가 지난해 7월 3부작으로 방송한 특집 <스마트 교육이 몰려온다> 다큐멘터리는 삼성전자로부터 2억6400여만 원의 협찬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삼성제품이 등장했고 삼성로고도 빈번히 등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에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됐다”며 공영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KBS가 지난 2012년 방송한 <힐링투어 야생의 발견>이라는 외주제작 다큐멘터리의 경우 아웃도어 업체 네파가 4억5000여만 원을 협찬했다. 제작비 2억8900여만원을 초과하는 협찬 금액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네파의 상품들이 여과 없이 방송에 등장했다.

그 밖에도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특집 프로그램은 원자력 관계사들에 협찬을 받아 제작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위험성을 배제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2011년 국가브랜드위원회로부터 협찬을 받아 방송한 <특별기획, 코리아 세계를 매혹시킨다> 다큐멘터리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 연도별 KBS 외주제작 교양·다큐프로그램 중 제작비 초과 협찬비 현황. 자료=최민희 의원실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에는 ‘방송사업자가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아울러 ‘협찬주 또는 관련 있는 제3자의 상품과 용역의 구매를 권유하는 표현을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됐다.

최 의원은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경우 KBS가 외주제작사에게 지급하는 제작비 외 별도의 비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제작비를 초과하는 협찬비를 받는다는 것은, KBS가 협찬비로 외주제작비를 100% 충당하고도 가만히 앉아서 수익을 남긴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성과 공영성을 추구해야 할 교양·다큐 프로그램을 협찬 수익을 남기는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의원 측은 KBS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협찬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했다며 “KBS는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요청한 같은 자료에 대해 성실히 제출했으나 최 의원이 국감 이후 내역까지 포함해 요구하자 ‘영업비밀’을 핑계로 거부해 이번 분석 대상에서 2013년 8월 이후 현황은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 측은 “지상파 방송광고의 경우 판매를 대행하는 미디어렙을 통해 내역을 제출받을 수 있지만 각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영업하는 협찬은 각사가 철저히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불투명한 협찬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BS 측은 이에 대해 반박자료를 내고 “방송법 시행령(제36조 제4호)도 ‘협찬 수입’을 KBS의 재원으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KBS가 협찬수익을 남기는 것은 법령에 위배되는 사항이 아니”라며 “수신료 이외의 수입을 늘려 부족한 제작비를 뒷받침하는 것은 오히려 수신료의 부담을 줄이면서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순기능적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KBS 측은 이어 “KBS는 협찬을 유치할 경우 1차적으로 제작부서에서 방송 아이템의 공익성과 협찬주의 적합성 등을 철저히 검증한 후, 편성제작회의 심의를 포함한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도록 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고 실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광고효과에 대한 지적이나 제재를 받은 사례도 극히 미미하고 자료에서 지적된 프로그램은 오히려 방심위가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수상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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