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떠나지 않았다. 고작 3일짜리 활강경기다. 대한민국 최고 천연림 가리왕산을 지켜내기 위한 기회는 아직 유효하다는 말이다.

올림픽 헌장의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임무와 역할에서 13번째 내용은 ‘환경 이슈에 대한 책임감 있는 관심에 대하여 격려하고 지지한다’는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은 IOC 올림픽 운동 정의에 포함된 내용이다. 그런 올림픽에 관한 이야기다. 동네 협잡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올림픽 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관한 이야기다. 3일짜리 활강경기를 위해 가리왕산이 수백 년 수십 년을 품어온 주목, 분비나무, 마가목 등을 한순간에 베어버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안도 분명하다. 국제스키연맹의 규약집에는 활강경기에 있어 ‘2Run규정’을 명백하게 제시한다. 개최국의 지형여건상 표고차 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땐 350~450미터의 표고차에서 두 번에 걸친 완주기록 합산으로 활강경기를 치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가리왕산에 새로운 스키장을 만들 필요가 전혀 없다. 같은 정선군의 하이원리조트나 또 다른 기존 스키장에서 활강경기를 치르면 그만이다. 또 국제스키연맹 규약엔 750미터 규정도 허용하고 있다. 용평리조트에서 예정된 대회전경기 등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로 옮겨 진행하고, 50미터 구조물을 세워 활강경기를 표고차 700미터인 용평스키장에서 진행하면 된다(구조물을 세워 치룬 활강경기는 98년 나고야올림픽이 있다). 당연히 수천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고, 가리왕산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 2012년 10월 우이령포럼 '가리왕산 대책위원회' 한 회원이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가리왕산에 동계올림픽 스키활강경기장 건설을 반대하며 스키 복장을 하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되돌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들 말한다. 공사기간이 너무 빠듯해 이젠 늦었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기가 찰 노릇이다. 멀쩡한 산 밀고, 새로 스키장 만드는 일이 어떻게 기존 스키장을 정비해 활용하는 것보다 더 간편하다는 것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난감할 지경이다. 그리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면 더욱더 답답하다. 당시 활강경기장 예정지는 이와스게야마였다. 주경기장과의 동선 등을 고려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될 당시부터 결정된 사안이다. 하지만 이와스게야마는 시가고원에서 유일하게 미개발된 곳으로 일본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활강경기장은 이와스게야마에서 기존 스키장이 있는 하쿠바 핫포오네 스키장으로 변경되었다. 상황이 또 전례가 이런데도 뭐가 그리 불가능한 일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한국 언론들은 이와 관련해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몇몇 일간지의 사설과 단신을 제외하면 너무도 조용하다. 예산낭비, 자연파괴를 질타하는 기자회견은 매번 썰렁하다. 강원도 주민들이 주민소송을 위한 감사청구까지 했음에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잠잠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사고들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여름 가리왕산을 오를라 치면 잠깐 주저앉아 쉬는 사이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산중에 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등허리를 스치기 때문이다. 겨울 가리왕산을 오를라 치면 적잖게 훈풍이 반긴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바람이 저민 옷깃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풍혈지역인 가리왕산이 사람과 자연에 베푸는 선물이다. 가리왕산은 산 전역이 우리나라에 25곳만 있다는 풍혈지역이다. 그래서 가리왕산은 기후변화에 약한 식물들의 보금자리다.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주목부터 수백 년 된 주목까지 세대가 함께하는 주목군락을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으로 인체공부를 했다는 밀양 얼음골이 가리왕산 전체에 퍼져있는 셈이다.

   
▲ 정규석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아도, 행정이 벽처럼 모르쇠여도 이대로 가리왕산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리왕산을 지키려는 환경단체들이 시민들을 기다리는 캠핑장을 가리왕산 아랫자락에 차렸다. 막무가내로 삽 들이대는 강원도를 감시하기 위해서, 가리왕산의 자연을 나누기 위해서,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리왕산은 결코 우리세대의 자산이 아니다. 가리왕산은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할 유산이다. 매번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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