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시청률은 역시 미스터리였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끌다니 말이다. 극단적인 상황설정에 도덕적 비윤리적인 내용이 점철되었는데도 상승하는 드라마의 인기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 제작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법했다. 하지만 ‘왔다 장보리’는 지상파 텔레비전의 주말 드라마가 가져야 할 형식적 요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역시 심오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단순 명쾌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리 단순명쾌하던가. 
 
우선 이런 드라마는 어려운 서사여서는 곤란하다. 척 보면 이해가 돼야 한다. 전개 구도는 단순해야 하고 전개의 목적도 분명해야 한다. 시청자의 기대감을 배반해서도 안된다. 친숙하고 익숙한 소재와 설정이어야 하는데 다만 약간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청자는 곧 외면하게 된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의 몰입(Flow)이론의 맥락에서 적절한 미션 과제가 주어져야 지속적인 몰입이 이루어진다. 너무 어려워도 쉬워도 힘들다. 친숙하기만한 서사와 플롯이 전개되면 지루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적절하게 그리고 색다르게 차별화된 에피소드나 설정, 그리고 사건들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기존 캐릭터에 약간의 변화를 줘야 한다.
 
같고도 다르지만
 
‘왔다 장보리’는 얼핏 겉으로 보면 신분이 바뀐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은비(오연서)가 사고를 당해 부모와 떨어져 보리라는 인물로 살게 되고, 그 자리를 민정(이유리)가 차지한다. 그러나 민정은 친딸이 아니라 양녀로 들어앉는다. 자신을 고아로 속이고 양녀가 된 민정은 자신의 양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이후에도 지속적인 거짓말 퍼레이드를 벌인다. 이런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이 거짓이 숨긴 진실을 차츰 드러내는 것이다. 조금씩 거짓이 드러날 때마다 진실의 공개 과정이 긴장감과 통쾌함을 같이 선사한다. 
 
통속극에서는 악녀 캐릭터의 설정이 빈번하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캐릭터의 설정을 통해 시청자의 기대감과 주목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이에 대한 징치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중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의 심리다. 사람들은 보통은 자신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선하다는 마음으로 착한 주인공에게 김정이입을 하고 통속극은 이를 겨냥한다.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주인공은 멍청하고 천하의 둔한 존재여야 한다. 그럴수록 현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제대로 항의한번 못하는 자신들을 투영할 수 있다. 악녀 캐릭터가 독하고 모질수록 시청자들은 더욱 분노하고 그 악녀 캐릭터의 파멸을 보고 싶어 한다. 이 드라마의 악녀 민정은 좀 세다. 민정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절대 악녀로 등장한다. 요즘에는 이런 센 캐릭터가 많아졌다. 이런 센 캐릭터에 그 엄마나 아버지까지도 악행을 저지르게 만든다. 가족자체가 악인 소굴이 된다. ‘왔다 장보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악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드라마는 여기에 또 하나의 악녀를 등장시킨다. 은비의 어머니 인화(김혜옥)이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누군가를 죽고 다치게 만든 교통사고를 내고 그 과정에서 은비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자신의 고의적인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은폐와 거짓을 방패막이로 삼아야 하고 심지어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까 봐서 자신의 딸이 분명한 보리를 막상 은비로 받아들일지 고민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에서는 정상성 복귀 심리가 흐르고 있다. 원래의 위치나 상태에 대한 회복 열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친딸의 위치로 돌아가고, 양녀가 친딸 이상의 위치에 오르는 것을 경계한다. 결국 보리는 친딸의 위치를 찾고, 양녀 민정은 파멸을 하고 만다.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들의 대체적인 결말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보리가 첫사랑 재화와 결혼을 이루어 어린 시절의 정상성을 극적으로 회복한다. 새로운 배필을 향한 적극적 위지는 과거로 회귀하고 만다. 자신의 상태를 넘어서려는 민정의 노력은 악녀적인 행태로 규정되어 처참하게 붕괴 된다. 자신의 반려자를 찾는 것은 거짓놀음 때문에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 보리가 무조건 친부모를 찾았다고 해서 탄탄한 입지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업을 이룰 수 있는 나름의 재능과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설정으로 이 드라마는 약간의 차별화를 통해 친딸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핏줄을 못 속인다는 정상성에 대한 열망을 대변할 뿐이었다.
 
왜 친딸을 선한 사람으로  양녀를 악녀로 만들었나
 
처음에는 무참하게 당하기만 하던 주인공이 원래의 자리를 찾고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혼내준다는 설정은 보편적이고도 흔한 이야기 설정이다. 여기에 약간의 변주를 줄 뿐이다. 그 변주를 어떻게 주는가에 따라서 콘텐츠의 차별성이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선한 인물이나 악한 인물이나 같은 욕망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며, 선한 주인공을 응원하고 악인들을 비난하는 시청자들도 그렇다. 이 드라마의 창작자나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딸과 양딸의 위치가 바뀌는 문제가 왜 부잣집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결국 재산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아무런 재산이 없는 집안이라면 누가 친딸인지 양녀인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민정이 극악스럽게 달려들 필요가 없고, 보리가 은비로 다시 자리매김할 때 시청자들이 크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막대한 재산과 사회적 위치를 누가 차지하는가이다. 보통의 시청자들은 친딸로 가족의 입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받을 적임자들이다. 그것을 위협하는 이들은 악인이다. 당연히 우리 사회에 양녀가 꽤 많다면, 민정은 악녀로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드라마에서는 핏줄과 재산 상속 문제에서 재벌형 기업 보다 요식업 등 가업형 기업이 더 등장하고 있다. 개인이 혼자 성공하기보다는 조부모나 부모의 일을 물려 받아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펼치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설정되고 있다. 그들은 친자녀라는 명분으로 쉽게 좋은 입지를 차지한다. 악녀들은 이에 도전하다가 파멸한다. 결국 이런 드라마가 범람하는 이유는 한국 현실에서는 재산을 자신의 친자녀에게 물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재산 상속이 서사 전개의 핵심 전제이다. 물론 ‘왔다 장보리’에서는 재산만이 아니라 한복전문기업 비술채의 침선장이라는 지위가 관건이 된다. 그런데 보리는 비술채의 핏줄이기 때문에 가업을 이을 재능을 지닌 존재였다. 웬 유전자인가! 그렇다면, 폐쇄적인 인재운용만이 있겠다. 정말 이 기업이 오래갈까?
 
우리는 정말 장보리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해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를 뿐, 친딸이건 아니건 능력은 같거나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른다. 비록, 주인공 보리의 삶에 감정이입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주인공들에게 붕괴되는 악녀 민정이가 우리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가족이나 가문에 의지할 수 없이 혼자 분투해야할 처지이며 물려받을 재산도 변변치 않다. 드라마처럼 된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막대한 부와 명예를 부러워하고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을 할 때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고 부자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런 드라마를 보는 어린이들에게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게 됐다. 결국 ‘왔다 장보리’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가꾸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돼 있는 재산이나 가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행태들이 합리화되고 있다. 개척에는 소극적이면서 자기 소유에는 능동적인 욕망의 행태에 이런 드라마들이 적극 영합하고 있다. 정말 장보리가 선인이라면 복수에 골몰하는 것보다 상속을 사회에 환원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채용하겠다. 비록 악녀 민정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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