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게망게.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 대한 해외언론 보도의 주된 분위기입니다. “세월호는 선거에서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지 않았다”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예상과 달리 여당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도, 중국 지지통신도, 일본 교도통신도 ‘무승부’라며 유권자들이 박근혜 정부에 ‘기회’를 주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우리 예상하지 않았던가요. 기실 세월호만 아니었다면, 지방선거는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았지요.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모르쇠해왔으니까요. 세월호 때문에 야당이 그나마 ‘선전’했다고 보는 게 언론인으로서 정직한 진단이겠지요.

문제의 핵심은 세월호 참사가 우연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의 흐름,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추구에 우선권을 둔 지난 세월의 필연이 세월호 침몰입니다. 그 세월 내내 언론은 과연 신자유주의 확산을 온전히 감시했는지 자성해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참사를 겪고도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규제완화를 의제로 설정하지 않더군요. 박근혜 정부의 책임 또한 명확하게 짚지 못할 수밖에요. 지방선거의 ‘표심’은 그 결과이겠지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시·도 교육감 선거에선 ‘진보 교육감’이 17곳 가운데 13곳에서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이겠지요. 이른바 ‘조중동’은 곧장 선거 다음날부터 ‘진보교육감 길들이기’에 날마다 나섰습니다. 가령 “진보 교육감, 전교조와 한통속으로 가면 한계에 부닥칠 것” 제하의 조선일보 사설은 “전교조 간부를 지냈거나 친(親)전교조 성향의 후보들이 17곳 가운데 13곳을 휩쓸면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생 718만명의 84%가 이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고 선동합니다.

전교조를 마녀사냥 할 때 ‘단골’ 수법 그대로 문제의 사설은 전교조가 출범할 때 ‘촌지 안 받기 같은 운동’으로 새바람을 불러왔지만 “정치·이념 투쟁에 몰두했다”고 부르댑니다. 과연 그런가요. 이 신문이 전교조 출범 때의 ‘새바람’을 긍정적으로 기사화한 기억이 저는 없습니다. 출범부터 지금까지 내내 살천스레 사냥해왔지요. 사반세기 넘도록 ‘전교조 죽이기’를 자행했음에도 교육감선거의 결과는 전교조가 얼마나 애면글면 참교육에 애써왔는가를 실증해줍니다.

물론, 조중동 고위 언론인들은 교육감 선거 결과를 낮춰보는데 안간힘입니다. ‘보수 분열’로 전교조 교육감들 손에 ‘교육 권력’이 들어갔다는 논조가 지배적이지요. 딱한 일입니다. 이들 ‘고위 언론인들’은 2010년과 14년이 비슷한 상황인데 왜 진보교육감이 늘어났는지를 겸손하게 짚어보는 성찰이 전혀 없으니까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른바 ‘앵그리맘’으로 불리는 학부모들이 경쟁과 효율 따위만 좇아온 후보보다 연대와 가치를 중시하는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4년 강원도를 비롯한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 현장에서 일궈낸 성과들도 정당한 평가를 받았지요. 혁신학교와 무상급식이 대표적 보기입니다.

문제는 선거 결과를 축소하며 압박해나가는 ‘조중동’입니다. 당선 순간부터 작심하고 ‘진보교육감 길들이기’에 나선 ‘효과’가 나타나는 듯합니다.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중간지역인 대전에서 상견례를 가졌지요. 13명 가운데 7명만 참석했더군요. 서울교육감과 경기교육감 당선자는 불참했고, 그 측근들의 말에선 진보교육감들이 모이는 자리에 ‘불편’ 또는 ‘부담’이 묻어났습니다. 그 불편의식과 부담감은 혹 조중동의 시선을 의식한 게 아닐까요.

보도에 따르면, 그 모임에서 오간 말은 참 조심스럽습니다. 한 재선 당선자는 “국민이 우리를 신뢰해 당선시켜 줬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러 계기가 작용해 기회를 부여받은 것뿐이다.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신중한 행보를 당부했습니다. 다른 재선 당선자는 “정부가 사법권을 동원해 작은 흠결이나 잘못도 크게 침소봉대할 수 있으니 모두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했고, “교육행정 관료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 했답니다. 전반적으로 “몸을 낮추자”는 발언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껏 몸 낮춘 상견례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친전교조 교육감들 뭘 하려고 벌써 단합 모임 갖나” 제하의 사설을 내보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만일 서울시교육감과 경기교육감 주변에 이 신문을 근거로 ‘불참하기를 잘했다’고 ‘충언’하는 ‘측근’이 있다면, 바로 그 측근부터 멀리하기를 두 당선자에게 당부합니다.

   
▲ 손석춘 건국대 교수
 
진보교육감 13명은 상견례만 할 게 아닙니다. 자주 만나야 합니다. 13명이 지역적 특성에 맞게 교육행정을 펴나가되 한국의 공교육을 바꾸겠다는 철학은 공유해야 마땅하니까요. 괜스레 ‘눈치’보며 만날 까닭도 없습니다. 당당하게 교육 개혁의 뜻 맞는 교육감들이 정기적으로 서로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구체적 대안을 숙의해나가는 자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겠지요. 하지만 몸 낮추고 겸손한 태도도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만일 뜻이 접힌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생게망게 한 일인가요. 이미 우리는 저들의 길들이기가 ‘민주당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어떻게 파탄 냈는가를 허전하게 지켜보았습니다. 4년 뒤 후회 없도록 교육개혁의 뜻 벅벅이 실현해가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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