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부들의 보직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19일 저녁에는 기술본부 팀장 27명이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보직을 사퇴했다. 보도본부에 이어 기술본부에서도 길 사장 퇴진 전선이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특파원들도 조만간 길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본부 팀장들은 보직사퇴를 밝히면서 “입사 이후 지금까지 기술만 공부하고 기술만 바라보고 달려왔고 방송의 독립성·공정성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자, PD들의 몫인 줄 알았었다”며 “그래서 공정보도 얘기가 나올 땐 일부러 못들은 척, 모른 척 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KBS의 주인은 사장도, 직원도 아닌 시청자”라며 “길환영 사장은 그 시청자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고 KBS를 욕보이고 직원들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달라”며 “조금이라도 시청자에게 미안하고 KBS에 미안하고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제 그만 물러나시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아울러 “더 이상 당신(길환영 사장)은 KBS의 사장이 아니”라며 “기술본부 팀장들은 보직을 사퇴하고 KBS가 진정한 시청자의 방송이 되는 그 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회장 조일수)도 제작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20일 기자협회는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KBS 기자협회 회원들은 “길환영 사장의 퇴진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 20일 오전 KBS 신관 IBC 계단 앞에서 총회를 열고 있는 KBS 기자협회. 사진=정상근 기자
 
자유발언에 나선 KBS 공채 38기 한 기자는 “2년 전 입사 1년차 때 파업을 했는데 이렇게 다시 나와야 하는 상황이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며 “지난번과는 다르게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이 투쟁의 기억을 후배들에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4기 기자도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이번 일이 가장 큰 일인 것 같다”며 “이번 일이 KBS가 공영방송으로 가는 첫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5기 기자도 나와 “나는 KBS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무한도전도 보지 않고 1박2일만 본다”며 “그런데 최근 그 소속감과 충성심이 깨져 슬프다”고 말했다

정인석 경제부 팀장도 나와 “2~3년 간 데스크를 하면서 (보도가)유린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청와대의 압력은 오래된 일이지만 그것을 보도본부가 어떻게 막을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유석조 뉴스제작2부장은 “20년 이상 몸담은 KBS가 무너지겠다는 절실함에서 나왔다”며 “부장들도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KBS 기자협회 대응방안도 논의됐다. 한 기자는 “제작거부를 하면서 뉴스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양대 노조가 파업을 하기 직전까지 KBS 뉴스가 오히려 해방구가 될 수 있다”며 뉴스제작 입장을 전달했다. 또 다른 기자는 “일반적인 집회보다 향후 KBS 뉴스를 어떻게 제작해야 할지 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KBS 기자협회는 이날 오후 비대위 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KBS 뉴스도 제작거부 이후 파행 운영을 빚고 있다. 메인뉴스인 뉴스9도 19일 방송은 됐지만 이현주 앵커의 단독진행으로 20분 정도로 제작됐다. KBS는 뉴스9 이후 해외 다큐멘터리 ‘스파이 돌고래’를 방송했다. 이날 KBS 뉴스9는 KBS 기자협회의 제작거부 소식을 전하면서 길환영 사장의 전날 입장 발표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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