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떼가 들끓는 고장이 있었다. 쥐는 음식을 갉아 먹고, 아이들이며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고, 병을 퍼뜨리고, 건물을 망가뜨리는 짐승이다. 쥐떼 등살에 사람살이가 험해 지니 그 고장 지도자들은 쥐를 없애주는 이에게 큰 상금을 내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나타나 피리를 불어 그 소리에 홀린 쥐들을 몽땅 강으로 이끌어 빠뜨려 죽게 했다. 막상 쥐떼가 사라지자 어른들은 약속한 상금 대신 푼돈 쥐어주고 사나이를 쫓아냈다. 그러자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었다. 이번에는 마을 아이들이 사나이를 따라 줄줄이 동굴 안으로 사라져갔고, 다시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약속보다는 돈주머니를 지키던 야비한 어른들은 울며불며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른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그렇게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이 사라진 그날부터 그 고장은 날짜를 새로 헤아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른들이 이익만 따지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화가 아이들에게 미친다는 잔혹한 교훈이 담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다.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의 숫자가 130명, 1286년 6월 26일이라고 날짜까지 남겨진 이 옛이야기는 아이들이 집단으로 희생되는 것이 한 사회에 가장 가혹한 처벌이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경고를 담고 아이들 이야기책으로 700년 넘게 전해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왜 아이들에게 읽혀야 하나? 약속을 지켜야할 건 어른들이며, 아이들을 지켜야할 것도 어른들인데.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이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하멜른에서 사라진 아이들 세 배가 넘는 사람들이 탄 배가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았고,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 숫자만도 하멜른에서 사라진 아이들 두 배가 넘는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 그 배에 타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까지 몇 명이나 잃었는지 알 수도 없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허튼 정부, 무능한 정부, 나쁜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아니었다. 이 나라는 무정부 상태인지 이미 오래였다. 눈 먼 자들의 사회에 살면서 눈 뜬 자들의 사회가 되는 것이 두려웠던 거다. 고립될까봐. 눈앞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자들을 실종자라고 할 때, 그때라도 깨달았어야 했다.

   
▲ 대한문 앞에 모였던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을 천천히 세바퀴 돌면서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서울시청이 내건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현수막
이치열 기자 truth710@
 

중세 구전 설화도 아닌,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벌어진 이 참극에서 알 수 없는 건 숫자만이 아니다. 도대체 처음에 누가 전원 구조라는 거짓 정보를 퍼뜨렸는지,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해운회사는, 해경은, 언론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숨기는 건 많은데 제대로 밝혀지는 게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도저히 그보다 저열할 수 없을 그런 이권결탁, 부정부패, 무책임과 탈법이 드러나도 그 실체는 아직껏 잡히지 않고 있다.

이 엄청난 참사 앞에서 처음에는 말을 아꼈고, 글도 쓸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실종자’라거나 ‘희생자’라는 표현을 쓴 적도 없었다. 눈앞에 배가 있고, 그 안에서 아직 살아있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바깥에서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고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절대 '실종자'가 아니라 '조난자'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실종자라고 단정 짓는 언론의 입방정이 소름끼쳤고, 피터팬에서 팅커벨이 죽어갈 때 독자들이 한마음으로 믿어준다면 살아날 수 있다던 그런 간절한 희망으로 분노나 원망같은 기운이 혹시 망칠까봐 꾹꾹 누르고 참으며 조난자들이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삼가고 또 삼갔다.

그러나 한 명도,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백 명이 넘는 넋들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희생과 실종이 현실이 되었을 때, 미안하고 참담한 마음에 조문 갔던 안산 분향소를 나서며 또다시 아찔했다. 단원고 아이들이 친구들 그리워하며 붙여 놓은 쪽지들,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켜놓은 촛불들, 함께 나눠 먹던 음료수며 과자들 갖다 둔 그 학교 바로 앞, 한집 건너 하나가 상주가 된 아이들 살던 바로 그 동네 한가운데에 정부가 차려놓은 분향소가 있었던 것이다. 헤아리고, 삼가고, 아무리 사과해도 돌이킬 수 없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사람이라면 차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나서야 분향소를 옮겼다.

이 지경이 되도록 청해진해운의 불법행위, 그걸 오히려 감싸고도는 해경, 조난자 구조가 아니라 시신 인양이 목적이라는 언딘, 규제 완화와 비정규직 확대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최소한조차 저버린 정치권, 이권에 국민 생명을 담보로 영혼을 판 관료 집단,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왜곡하는 언론,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할 공감과 연민조차 없이 진심어린 국민들의 애도를 종북좌빨로 모는 수구 꼴통들.

그런데 이런 게 처음이 아니다. 이 상황은 2009년 1월 20일, 생존권을 호소하며 철거 될 건물 옥상 망루에 올랐던 다섯 명의 철거민과 이들을 진압하러 몰려간 경찰 특공대 가운데 한 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었던 '용산참사'의 데자뷔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은 바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자본과 결탁한 공권력과 자본이 무슨 짓까지 저지르는지, 그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정한 이웃인지를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이 당시 용산참사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철거민들에게 유리한 경찰과 철거업체 관계자들의 진술이 담긴 수사기록은 철저히 감춰두고, 철거민 측 변호인이 당연히 받아 보아야할 그 기록들을 법원이 제공하라고 명령해도 주기를 거부했으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내려지고 나서도 숨기고 있던 자다. 그런 자가 세월호 담당 검사란다. [관련 칼럼 : 무시무시한 용산 도시괴담에 왜 차분했을까]

   
▲ 영화 ‘두 개의 문’ 포스터
 

홍지유 감독은 SNS를 통해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며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겠다는,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안상돈. 나는 이자를 용산참사 법정 검사석에서 봤다. 이자가 진실을 덮치는 과정을 보았다."고 고발한다. 철거민 측 변호인이었던 황희석 변호사는 '이 자를 지명한 것은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모독이자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노한다.

<두 개의 문>에서 타오르던 망루의 불길은 그 안에 타 죽어간 사람들에게만 재앙이 아니었다.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밝혀낸 진실을 바탕으로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 한 이 나라 어디서고 오래오래 타 오르는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재앙이 우리 아이들을 덮쳤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자, 약자에게 가혹한 자,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으로 치는 자들의 나라에서 아이들을 얼마나 더 잃어야 하겠는가?

생목숨 잃은 시신으로 아이들 되찾은 유가족들은 그래서 특검을 바라고,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그러다 정부가 그나마 구조마저 손 놓을까 두려워 특검 대신 법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달라고 한다. 장례식장 꽃바구니 하나조차 나중에 이루어질 보상에서 셈해 뺄 궁리부터 하는 이 천박하고 비정한 나라에서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겠거든 기필코 이번만은 무심한 구경꾼이 되지 말자.

아직 놓지 않고 싶다. 단 하나라도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기적은 하늘에 맡기더라도, 세상을 옳게 바로 잡는 건 우리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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