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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IT)업계에선 비트코인이 경제학 교과서의 화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기존 경제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물음표를 제기하고 있다. 기존 화폐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박종현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열린 '비트코인 소개, 가능성과 문제점' 대담에서 "비트코인이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건 맞지만, 원화나 달러를 대체할 정도의 새로운 화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의 도전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자산가치로서 비트코인 가치의 폭등이다. 2008년 개발된 비트코인의 역사는 고작 5년 정도다. 그런데 1비트코인당 가치는 0.0008달러(2009년 10월)에서 최근 1000달러까지 폭등한 바 있다. 비트코인 초기 보유자들에겐 엄청난 자산 증가를 선사했다.
박 교수는 "화폐는 현실에서 거래수단 역할을 해야 한다. 물건을 사고파는데 매개가 됐는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보단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투자대상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지난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비트코인 소개, 가능성과 문제점' 대담이 열렸다. 왼쪽부터 한국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김진화 이사, 딴지일보 박성호 정치부장(물뚝심송), 경남과기대 산업경제학과 박종현 교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전문 연구위원 강정수 박사. 사진=김병철 기자 | ||
강 연구위원은 "큰 손해가 아니니깐 빵 정도는 살 수 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묵혀두면 더 오를 수 있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등록금을 비트코인으로도 받겠다고 밝힌 키프로스 니코시아대학의 예를 들며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올라) 절반만 내도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사용하기) 불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폭등하는 자산가치가 교환가치로서 비트코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비트코인 가격 폭등의 원인은 두 가지"라며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이 '대안화폐로서 가치 있다'고 말하고, 중국에서 대규모 마이닝(채굴)이 시작된 후 투기성 자본이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말 비트코인 청문회에 앞서 "범죄와 자금 세탁에 악용될 위험은 있으나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이점도 많다"고 밝혔다.
이들은 채굴량이 2100만비트코인으로 한정된 구조도 문제로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전체 공급량이 2100만이라는 건 원화, 달러를 대체하기에는 심각한 결격사유"라며 "수량이 고정돼 있어서 경제변화를 반영 못하고 디플레이션을 수반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도 "비트코인 버블이 폭발하기 전까진 계속 자산가치가 높아지지만 경제규모의 확산에 비해 디플레이션이 구조화되어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 세계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지는 몰랐을 것"이라며 "(그가)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본 비트코인 거래소(mtgox.com) 갈무리 | ||
박 교수는 비트코인이 주목받은 배경에 대해 "정부가 금융기관을 구제금융하면서 불신이 커졌고, 달러가 약세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독립된 화폐를 원하는 열망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없는 사회가 이로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정부가 마음에 안들지만 투표로 바꿔가야지, 정부의 금융정책 역할을 없앤다면 양육강식의 사회가 될 수 있다. 각자가 강한 윤리의식을 가졌다면 모르겠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비트코인 업계는 이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미래 화폐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김진화 이사는 "기존 화폐에 비해 불안정하다는 취약점이 있고 그런 한계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역사상 이렇게 성장하는 화폐는 처음이다. 화폐 교과서도 새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