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전 세계 단일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해외 송금 시 수수료가 들지 않는 혁신적인 화폐에 관심이 모아지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박' 투자상품으로 떠올랐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를 대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비트코인에 대한 여러 측면의 논쟁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관련기사② : "비트코인, 기존화폐 대체 못하고 실패할 것"]
[관련기사③ : 구글·애플 '족쇄' 푸는 열쇠, 비트코인]

정부 입장에서 비트코인은 두려운 존재다. 화폐 발권력, 환율과 금리 정책을 통한 정부의 금융통화정책이 무력화 될 수 있다. 국가 주도의 거대 자본으로 부의 이전이 어려워지는 효과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처럼 정부의 정책적 '수출 대기업 밀어주기'도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금융통화정책에서 정부를 배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세회피 등 과세 문제는 사회적 해결 과제다. 현재 기술로는 정부가 인터넷을 폐쇄하지 않는 이상 비트코인 계좌를 동결할 수 없다. 정부 규제와 감시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화폐다. 이 때문에 범죄 활용도 손쉬울 수 있다. 스미싱처럼 신기술은 새로운 범죄형태를 불러오는 법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한국을 찾은 미국의 유명한 '비트코인 투자자' 로저 버(Roger Ver·35)에게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로저 버는 "인류 역사상 비트코인은 인터넷 이후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신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사용자가 늘어나고 비트코인이 각광 받을수록 그의 자산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현재 그는 백만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해 '비트코인 백만장자'로 불린다. 1비트코인은 16일 오후 2시 기준 일본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Mt.Gox)에서 약 950달러에 거래된다. 달러로 환산하면 9억5천만달러로 한화로 1조원이 넘는다.

로저 버는 "내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하고 훨씬 더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확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로저 버는 "발행된 후 지난 5년 간 비트코인의 가치는 평균 10배 이상 인상됐다"며 "오늘의 10달러가 미래엔 100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의 많은 역할을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정부나 그 누구도 비트코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명 '비트코인 예수'로 불리는 로저 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비트코인 투자사업에 매진… 별명은 '비트코인 예수'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로저 버는 2000년 컴퓨터 부품 온라인 쇼핑몰인 메모리딜러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초 비트코인을 접한 후 비트코인 투자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그는 약 12개의 비트코인 관련 스타트업 회사에 투자한 주주(엔젤투자자)로 전 세계를 돌며 비트코인의 미래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비트코인 예수(Bitcoin Jesus)'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다. 비트코인 재단의 피터 베세네스 회장이 한 바비큐 파티에서 약 20명의 고등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비트코인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여러 제자에 둘러싸인 예수와 같다"며 붙여준 별명이다. 로저 버의 이번 한국 방문도 비트코인 전도의 일환이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지난 2013년 가파르게 급등했다. 2009년 1월 첫 거래가 시작된 이래 시가총액 기준 2012년 8월 1억달러를 넘고, 2013년 11월 100억원를 돌파했다. 그 사이 1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0.0008달러(2009년 10월)에서 최근 900달러 수준으로 급등했다. 로저 버는 1비트코인이 약 10달러였던 2011년 초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각국 정부로부터 정식 화폐로 인정받지 못했고, 변동성이 크다는 위험이 있다. 중국이 최대 비트코인 거래국으로 떠오르자,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2월 온라인 쇼핑몰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를 금지했다. 다음날 중국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 대비 27%나 떨어졌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로 인해 어느 순간 가격이 폭락해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있다.

   
▲ 미국 달러 기준 비트코인 시가총액의 변화 추이. 2013년 들어 급등했다. blockchain.info 갈무리.
 
로저 버 "그 누구도 비트코인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로저 버는 정부의 규제도 비트코인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결제수단으로서 국내 사용처가 부족하더라도 개인 간 거래나 해외 송금용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운영하는) 메모리딜러도 중국 업체에게 상품을 구매할 때 비트코인으로 결제한다. 중국 업체들도 그걸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해외 송금용으로 탁월한 화폐라고 강조했다. 가격 변동성 때문에 보유하기 불안하다면 송금할 때만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후 다시 기존 화폐로 환전하면 된다고 말했다. 송금의 간편함을 설명하기 위해 로저 버는 인터뷰 도중 비트코인 송금을 직접 시연했다.

받는 이의 스마트폰에 '비트코인 지갑 애플리케이션'만 다운로드하면 하나의 계좌가 개설된다. 로저 버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받는 이의 계좌 QR코드를 촬영한 후 송금 비트코인 액수를 입력하자 10초도 안돼서 송금이 완료됐다.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듯 해외 송금을 손쉽게 할 수가 있다.

게다가 송금 시 수수료도 없다. 그는 "비트코인은 온라인 뱅킹, 신용카드 결제 등 보다 더 쉽고, 안전하고, 빠르다"며 "송금에 드는 수수료도 없으며 이 세상 그 누구도 개입하거나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송금이 쉽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한 후 "만약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비트코인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저 버는 향후 비트코인을 통한 거래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만 1만개가 넘는 곳에서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매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제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은 한국에선 온·오프라인을 포함해 비트코인 구매가 가능한 곳은 약 10여곳에 불과하다.

   
▲ 비트코인. bitcoin.org 갈무리.
 
"자유주의·아나키즘 성향이 반영된 화폐"

한국에선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 보다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더 강하다. 대부분 언론이나 이용자들도 '대박 신화'를 노리는 심경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비트코인이 세계적으로 대박 투자 상품으로 떠오른 건 사실이지만, 철학적 배경엔 정부의 규제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와 아나키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비트코인은 P2P(개인 대 개인) 네트워크 방식이기 때문에 정부와 금융기관의 금융정책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의 정신과도 맥이 닿아있다.

김건우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12월 한 토론회에서 "비트코인 주요 참여자들은 중앙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도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반감과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다양한 형태의 전자화폐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저 버는 "경제문제가 생길 때마다 각국 정부가 나서서 화폐를 찍어내는 등 금융정책을 펼치지만 결국 피해는 개개인 국민들이 받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양적완화나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 각국 정부가 화폐 발행과 환율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금융정책을 펼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런 성향은 그의 정치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저 버는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1.2%를 득표하고 낙마했다. 자유당 후보였던 로저 버는 선거 기간 자신이 중앙은행의 무제한적인 발권력을 비판하고 자유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오스트리아 학파 성향임을 밝혔다.

또한 그의 핵심 공약은 대규모 감세와 법의 축소였다. 그러나 단순히 자유주의 보단 정부 존재 자체에 비판적인 아나키즘 성향이 더해있다. 그는 2012년엔 아나키즘을 표방한다는 글을 남겼고, 현재는 스스로를 '자발적 행동주의자(Voluntarist)'라고 표현한다. 로저 버가 비트코인 이용자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공통점은 찾을수 있다.

 
과세는 논란거리… "조세회피처 대신 이용 가능"

다만 정부의 규제를 반대하는 자유주의 성향이 반영된 비트코인의 확산이 우려되는 점도 있다. 과세 문제 등이다. 현재 기술로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개인의 비트코인 계좌를 폐쇄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 사업자가 결제수단으로 비트코인을 받으면 정부는 사업자의 소득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로저 버는 "비트코인 이용자 중 정직한 사람들은 제대로 소득신고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줄여서 신고할 것"이라며 "현금을 받는 사업자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이나 부호의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로저 버는 "삼성 같은 기업이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게 기업에게도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이나 부호들이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회피처 대신 비트코인을 이용할 수도 있다"며 "그럴수록 비트코인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CC BY 2.0
 

한국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김진화 이사는 "비트코인은 정부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주의, 아나키즘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처럼) 다양한 사람이 비트코인을 '우리 거'라고 본다. 미국의 월스트리트(금융업), 실리콘벨리(IT업), 유럽의 아나키스트, 미국 자유주의자도 다 (제각각 해석해) 이건 우리 거라고 한다"고 말했다.  

최용관 P2P협회장은 "비트코인 이용엔 일부 자유지상주의(우파) 그룹이 포함되어 있지만 네오 아나키스트 그룹도 참여를 하고 있다"며 "그런 것만으로 화폐의 (정치적)성격을 딱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금융자본주의를 반대하고, 국가의 화폐 발행을 부정하는 성향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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