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CBS를 비롯한 몇 개 채널의 프로그램들을 포함한 ‘유사보도’ 목록을 발표한 것을 두고 언론계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30일 “다수의 전문편성 방송사업자가 전문분야 이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편성‧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문편성방송사업자의 유사보도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4월 10일부터 6월 9일 간 두 달 간 방송내용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이슈 등 내용요소와 앵커, 뉴스‧기자 명칭 사용, 제목 위치 등 형식적인 요소로 구분하여 분석한 것이다.

CBS가 방통위의 유사보도 목록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CBS 프로그램 중 ‘CBS 뉴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하근찬의 아침뉴스’ ‘김현정의 뉴스쇼’ 등이 유사보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불교방송(BBS), 교통방송(TBS), 한국경제TV, SO(종합유선채널) 지역채널인 CJ헬로비전의 프로그램 등이 유사보도로 꼽혔다. RTV가 방송하는 GO고발뉴스와 뉴스타파도 목록에 포함됐다.

   
▲ 방통위가 발표한 ‘유사보도 프로그램 목록’
 
▷ 방통위 ‘유사보도’ 법적 근거 있나=방통위가 CBS 등의 프로그램을 유사보도로 규정한 근거는 방송법 시행령 제50조다. 이 조항에 따르면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제외한 ‘전문편성 방송사업자’는 보도를 할 수 없다.

방통위는 이 조항을 근거로 “이들 방송사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문의 갈등상황을 보도, 논평하면서 여론,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분석됐다”며 “전문분야에 대한 정보제공과 보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는 방송사가 스스로 방송법규를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CBS는 방통위의 주장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한다. 방통위는 CBS의 프로그램들이 유사보도라고 문제 삼았지만, CBS가 뉴스보도를 할 수 없는 전문편성방송이라는 내용의 법률이나 시행령, 고시는 없다. (관련 기사 :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유사보도’라 불법이라니?>

CBS는 1954년 정부로부터 최초의 ‘민영방송’ 허가를 받는다. 당시에는 방송의 영역이나 조건 등의 구별이 없었기에 CBS는 자연스럽게 뉴스를 보도했다. 62년 처음으로 방송사항을 명시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을 때 방송사항에 ‘시사뉴스’가 명시됐고, 68년 무선국 허가장에도 연예, 오락, 기독교 전도와 함께 ‘보도’가 포함되어 있다. 70년 무선국허가장에 방송사항을 ‘방송사항 전반 및 기독교전도 상업선전 30%’로 기재하고 있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이를 “68년 허가장에 구체적으로 나열했던 것(보도, 연예, 오락 등)을 (70년에) 방송사항 전반이라는 용어로 통칭한 것”이라며 “종합편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71년과 74년 무선국 허가장 방송사항에는 ‘방송사항 전반 및 기독교 전도, 상업방송 30%’라고 기재했다.

   
▲ 1968년 보도 허가 구체적 명시(좌), 1970년 방송사항 전반 및 기독교 전도 상업선전으로 명시함(우). 사사진=CBS 제공
 
논란은 신군부의 집권 이후 시작됐다. 80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81년부터 88년까지 CBS 재허가 때 방송사항에서 ‘방송사항 전반’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기독교전도방송 및 음악방송’으로 명시해 CBS의 보도기능을 박탈했다. 87년 무선국허가장에는 ‘기독교전도방송과 기독교전도를 위한 협찬광고방송’이라고 명시한다. 권 기자는 “이 개념이 지금의 전문편성 개념과 유사한 허가내용”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인 89년 무선국허가장에는 ‘기독교전도방송을 중심으로 한 방송사항 전반 및 광고방송’이라고 기재됐고, 이를 근거로 CBS는 보도를 재개했다.

하지만 표현의 차이가 남았다. 70년대까지는 허가장에 ‘방송사항 전반 및 기독교 전도 상업선전 30%’라고 명시했지만, 이 표현이 ‘기독교전도방송을 중심으로 한 방송사항 및 광고방송’으로 바뀐 것이다. 권 기자는 “이 표현의 차이가 지금의 CBS의 위상을 좌우하고 있다”며 “방송위원회를 거쳐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방송사항 전반 및 기독교 전도 상업선전 30%’에서는 방송사항 전반이 주편성이고 기독교 전도는 부편성이지만 ‘기독교전도방송을 중심으로 한 방송사항 전반 및 광고방송’에서는 기독교전도방송이 주편성이 방송사항전반이 부편성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기자는 “이후에도 CBS를 종교방송의 범주에 포함시켜 ‘특수방송’이니 ‘전문편성사업자’니 하는 용어로 제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1985년 기독교 전도방송 및 음악방송(뉴스,광고,시사해설 제외)을 명시적으로 표시한 방송 허가장. 사진=CBS 제공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정부에 CBS의 ‘전문편성 규제 해소’ ‘방송사업 제한 해소’ ‘민영 종합방송으로서의 지위 회복’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권고는 이행되지 못했고, 이것이 현재의 ‘유사보도’ 논란으로 이어졌다.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은 이에 대해 “민주화 이후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하고 CBS의 종합편성 기능을 회복시켜줬어야 했는데 논란을 벌이기 싫으니 안 했다”며 “방통위가 유사보도 관련해 법 제도를 재정비하고 싶으면 유사보도 하는 곳, 법령미비로 인해 이상한 처지에 놓여 있는 곳 등을 구분한 다음 보고서를 내놨어야 하는데 다 묶어 유사보도라며 프로그램 이름까지 박아놓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승진 CBS 매체정책부장 역시 “정부가 과거사위원회 권고대로 원래 위치를 회복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이행하지 않는 정부가 직무유기”라며 “그런데 방통위는 수십 년 간 지속되어 오던 문제를 마치 새롭게 유사 보도하는 매체들이 발견된 것처럼 보도 자료를 뿌렸다.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 유사보도 목록은 ‘비판언론 옥죄기’?=방통위의 유사보도 목록 발표에 대해 언론계 일각에서는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라는 반응이 나온다. 31일 언론노조는 성명을 내 “현 정권은 대선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도 모자라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사유화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신군부처럼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이다 보니 이제 와서 신군부 흉내 내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CBS는 노사 구분 없이 이번 일을 박근혜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CBS뉴스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는 “보도금지, 80년 왜 그 시절이 생각나는 걸까요? 올해가 몇 년도였죠?”라는 글이 올라왔다. 변상욱 본부장 역시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통해 “25살 CBS에 입사할 때 나의 신분은 불법기자였다. 정부의 프레스카드 즉 취재허가증이 없는 뉴스 불허 방송사에 속한 기자였으니 그랬다”며 “이제는 내가 사이비 기자란다, 이 정부가 정말…”이라고 비판했다.

CBS노조는 성명을 통해 “정당성 논란에 휩싸인 유사(類似) 정권의 오만과 독선이 이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현재의 방송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CBS가 두렵긴 두려운가 보다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린을 건드린 정권에 어영부영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유사언론이고 누가 유사정권인지 분명히 가려 보겠다”고 밝혔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방통위의 ‘유사보도’ 목록 발표는 박근혜 정부의 ‘비판언론 옥죄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장악은 공영방송사에 낙하산을 내려 보내고, 이에 반대한 기자들을 해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언론장악은 ‘규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규제를 통해 비판언론을 통제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다. 방통심의위는 국정원이 간첩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다룬 <추적60분> 보도에 대해 ‘재판 중인 사건을 다뤘다’는 이유로 중징계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JTBC <뉴스9> 역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소식을 전하며 통합진보당의 입장만 들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관계자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채동욱 혼외자 의혹을 전하며 채 전 총장의 반론을 받지 않은 TV조선에 대해선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고 시사평론가들의 입을 빌려 온갖 편향적인 막말을 쏟아낸 채널A와 TV조선 역시 솜방망이 제재에 그쳤다. 공정성을 근거로 ‘표적심의’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CBS 역시 여러 차례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받았다. CBS <하근찬의 아침뉴스>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8월 29일 리포트에서 “통합진보당이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됐다” “(국정원이) 정치적 도박에 나섰다”는 표현을 썼다가 공정성 위반으로 권고 조치를 받았다. 유사보도 목록에 오른 ‘김현정의 뉴스쇼’ 역시 ‘연평도 포격’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했다가 ‘공정성 위반’으로 법정 제재를 받을 위기에 놓였다. 지난 4일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여권 추천 인사들은 김현정의 뉴스쇼가 박 신부의 ‘불법대선’ ‘연평도 포격’ 발언을 옹호하는 진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 김현정의 뉴스쇼. 사진=CBS제공
 
언론계 일각에서는 방통위의 유사보도 목록 발표가 방통심의위 심의처럼 규제를 통해 비판언론을 옥죄는 시도라는 의견이 나온다. 김상철 CBS노조 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땡박뉴스 만들고 언론공정성 훼손하고 해직언론인 복직 문제 해결하지 않는 상황과 같은 맥락”이라며 “공영방송에 대해선 작업이 끝났다고 보고, 그동안 입막음이 여의치 않았던 CBS 등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박건식 MBC PD협회장은 김현정의 뉴스쇼를 ‘유사보도’로 규정하면서, 방통심의위 심의대상으로 삼은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박 PD는 “방송법상 심의를 통해 ‘공정성 위반’으로 제재할 수 있는 대상은 보도·논평”이라며 “한쪽에서는 보도라며 징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사보도’라고 규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방송법 제33조는 방송심의 대상을 “보도·논평의 공정성·공공성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 법 재정비는 필요…‘광고배당’ 등 현실적인 문제=이번 사안을 ‘비판언론 옥죄기’가 아닌 방송관계법 재정비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방통위는 이번 유사보도 목록 발표의 목적을 ‘법과 현실의 일치’라고 밝혔다. 방송법상 뉴스보도를 할 수 없는 채널들이 뉴스보도를 하고 있지만 방송법과 시행령, 정부고시 등은 일관성 있게 정리가 안 된 상황이다. 어떤 방송이 전문편성이고 어떤 방송이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다.

곽진희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 과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뉴스보도와 정보 전달을 구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비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해 실태조사를 했을 뿐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오히려 CBS를 빼고 발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재 방통위원장 역시 7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에 유사보도 목록을 분류할 때 CBS가 포함된 것은 법과 현실이 괴리돼 있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한 것”이라며 “현실에 맞도록 방송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계 일각에서도 방통위 요구대로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양승진 부장은 “방통위의 목표는 내년 중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CBS가 보도를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하지 않으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한다. CBS가 뉴스보도가 가능한 종합편성채널의 위치를 획득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야권 추천 인사) 역시 “유사보도는 해묵은 의제이고 현황 파악 수준에서 조사를 한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제기로, 비판언론 재갈물리기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광고 배당’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유사보도 목록에 오른 한경TV 등 증권TV나 SO 지역채널 등은 법적으로 뉴스보도를 할 수 없는 채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뉴스보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광고시장의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 이경재 위원장은 9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도 기능을 갖고 있는 다른 방송들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조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양승진 부장은 “종편이 광고 때문에 ‘유사보도’ 채널에 대한 규제를 요청하고, 증권방송이나 SO 등이 ‘왜 우리만 규제하나. 종교방송도 뉴스보도 하지 않냐’는 식으로 나오자 종교방송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문제 삼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연합뉴스 등 이해관계에 있는 언론들이 이런 맥락은 간과한 채 자사 이익에 맞게 마치 CBS나 ‘유사보도’로 규정된 방송들이 불법보도를 한 것처럼 기사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번 유사보도가 정부의 ‘다용도 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변상욱 본부장은 “법령을 재정비하면서도 한편으로 (종편 등에) 광고시장을 터주고, 비판적인 매체들은 제어하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고민 속에서 정치적인 상황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방송통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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