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떨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다들 내게 묻고는 있지만, 나 역시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지 4~5일 만에 21만 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어디까지 내 대자보가 퍼졌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해외에서도 응답이 올 정도니 말 그대로 예측불가이지 않을까. 그런 모두가 새삼스럽게 궁서체로 묻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말이다.

처음 대자보를 쓸 당시에는 울분이 8할이요, 기대가 2할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적어도 말하는 자유만큼은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토해낸 게 ‘안녕들 하십니까?’란 자보였다. 하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된 소통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대학이란 공간에서, 비록 손글씨로 자보를 적었다 하여 학생들이 반응하리란 기대를 갖진 않았다. 나 스스로도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기에. 물론 예상은 극적으로 뒤집혔다.

그래서 글을 나눠 적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안녕하시냐는 물음 속에서 되짚어 갔다. 당장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당일 하루만에 4천 2백여 명이 직위해제 당했다. 누구는 직위해제와 해고가 엄연히 다르다고 하지만,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차차 깎아가며 결국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 과연 해고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누군가는 정부가 한사코 KTX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데 왜 그리 소란이고 선동이라 비난한다. 그러나 수서발 KTX가 자회사 형태로, 정확하게는 주식회사 형태로 풀리면 적어도 지금은 민영화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다.

이처럼 내 주장에는 ‘팩트’가 없는 게 아니라, 척 봐도 아는 ‘상식’이 담겨 있다. 공공재인 철도를 민간자본에 내주겠다는 비상식에 대해 말하는 데 이를 두고 ‘팩트’ 없는 선동이라 말하는 건 그걸 말하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과 진배없다. 무조건 그건 ‘정부가 말했으니 믿어!’라거나 ‘그런 너희들은 다른 의도가 있어!’라고 몰아세우는 건 딱 봐도 답이 나오는 거 아닌가? 다들 느낌 아니까.

그리고 나서야 내 세대의 이야기를, 소위 88만원이라 불리는 세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 수 있었다. 나면서부터 달려야 했고, 달리지 않으면, 한 눈 팔면, 주류의 흐름을 쫓지 않으면 벼랑으로 떨어진다고 주입받은 세대다. 우리는 저항하는 법을 글로 보고 배워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태생적으로 안 된다고 받아들인 세대다.

그럼 또 다른 세대론인가? 아니다. 사실 세대론은 차이점을 지적하는 수준에서 끝날 뿐 각각의 세대 간의 차이를 봉합해가는 지점을 모호하게 내버려두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세대론은 각 세대의 차이점을 인식하되, 그것이 어떤 구조에서 형성되었으며 그런 구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온 세대론은 그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간단히 물었다. “안녕하시냐고” 이건 우리 세대만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두고 별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다. 신상을 터는 것은 물론이요, 선동이니 뭐니 하는 색깔 씌우기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물음을 막고 있다. 정말이지 쓴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여기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소위 내 배후로 지적되는 노동당 활동을 안 한지가 벌써 수개월이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노동당은 당명의 교체과정과 강령을 세우는 과정에서 큰 홍역을 겪었고 거기에 실망한 사람들이 당을 떠나거나 거리를 두었다. 그런 건 아랑곳없이 마치 배후세력처럼 이야기한다면 양쪽 다 적잖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덕분에 난 별로 안녕치 못하다.

지금의 홍역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앞으로의 계획과 미래를. 거기에 대해 나는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왜냐? 이런 폭발은 누가 계획해서도 이끌어서도 아닌 자발적으로 터져 나온 물음이다. 지금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것 이외에는 무엇을 계획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이미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안녕’을 만들어가기 위해 누구는 펜으로 누구는 노래로 누구는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그야말로 자기 정치의 복원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 주현우 고려대 학생
 
나는 그저 99.999999도의 물에 약간의 분탕을 쳤을 뿐이나 들끓은 분노는 엄청난 기체, 바람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내불고 있다. 대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회사와 정치계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지경까지 오도록 방임한 언론에게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난 내 대자보에 대한 감상으로 ‘속 시원하다.’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대안을 제시한 것도, 심지어 무얼 하시라 선동한 것도 아닌데도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말한다. 왜? 알고 보니 말하는 건 허락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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