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찌질한 키보드워리어였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박근혜는 선거쿠데타?”   
“’NLL 발언록’ 공개 국정원, 물타기에 ‘게거품’ 물었다”  

내가 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집회’ 기사의 제목이다. 모두 참가자의 발언으로 제목을 땄다. 첫 제목은 촛불이 켜진 6월 21일, 한 대학생의 발언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23일, 24일에 만난 시민들의 발언이다.

촛불이 타오르기 전 지난 6월 14일, 서울고검 기자실에 있었다. 이진한 중앙지검 2차장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담담하게 발표문을 읽었다. 그는 “국정원이 그릇된 인식하에 직무 범위를 넘어선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릇된 인식이라...’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 ‘민주주의를 유린했다’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검찰 발표문과 공소장이 딱딱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촛불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국정원의 그릇된 인식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릇된 인식’이 만들어낸 현상이 대한민국에 어떤 역사로 남을 것인지 그들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장맛비가 내려도 아스팔트가 폭염에 이글거려도 그들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지난 3일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휴가철로 인해 참가자가 들쑥날쑥했지만 증가세는 뚜렷했다. 주최 측은 오는 10일, 10만 촛불을 예고하고 있다.

시민들은 마이크를 잡지 않아도 손수 만든 피켓으로 목소리를 냈다. “우리도 다음 선거엔 일진 동원하고 시험지 공개해도 되죠?”, “우리는 누가 몸통인지 알고 있다”, “바꾼 애는 구속, 바뀐 애는 방 빼”. 촌철살인의 민심이었다. 

발언, 피켓으로 그치지 않았다. 즐겨 듣는 노래에 이번 사건을 끼워 넣었다. 한 고등학생은 가수 조용필씨의 히트곡 를, 이번 사건으로 결성된 류앤탁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개사해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를 불렀다. 촛불 앞에서 서서 사람들과 열창했다. 즐길 줄 아는, 놀 줄 아는 시민들의 축제였다.

“우~우우~풍문으로 들었소. 박근혜의 당선이 이상하단 그 말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단 그 말을~”
방송사를 향한 분노도 촛불 열기만큼 불타올랐다. 지난 3일 열린 ‘5차 범국민 촛불대회’가 바로 한 예다. 그날 좁은 청계광장 인도에서 모시를 입은 노인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난동을 피우나 했다. 가까이 다가섰더니 노인들은 KBS 카메라에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방송도 안 할 건데 왜 찍어”
“시청료는 청와대가 다 내라”
“KBS는 새누리당 방송이여! 관제방송이야!”

   
강민수 오마이뉴스 사회팀 기자
 
그날도 현장에는 방송 카메라가 많았지만, 방송에서 촛불은 단신 처리됐다. 분명 공정성을 잃은 보도였고 국민의 알 권리 침해였다. 사람들이 든 피켓에도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만큼 방송사들의 촛불외면을 규탄하고 있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방송이 국민을 기만하고 있었다. 오히려 방송사의 외면이 촛불에 기름을 붇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시민은 “KBS, MBC, YTN, 조중동, 여름전어나 쳐 먹으러 가라”고 적힌 피켓으로 종편 카메라를 가리기도 했다.

언젠가 촛불 속에서 한 시민에게 물었다. 촛불이 예전 같지 않다는 취지였다. 수백 명으로 시작한 촛불이 만, 2만, 3만으로 참가자수가 늘고 있지만 열기가 곧 사그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답은 예상을 깼다. 그의 말을 어떻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이 지면을 통해 담는다.

“눈에 보여야만 촛불인가요? 사이버 촛불이 한 달 넘게 켜져 있어요. 광화문 촛불도 좋지만 각자 집 컴퓨터에서, 스마트 폰에서 촛불을 켜고 있어요. 예전 같지 않다고요? 보이지 않는 촛불을 조심해야죠. 그 권력 영원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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