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3만 여명의 시민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다.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집회로, 국정원 규탄 집회로는 최대 인원이 모인 날이었다. 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한 공성순씨는 “민주주의 훼손은 당을 떠나 참을 수 없는 문제여서 아이와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과 달리 주요 방송과 신문의 모습은 ‘민주주의 훼손’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KBS·MBC, 국정원 규탄 집회보다 피서객 물놀이 정보가 중요해= 3일 KBS와 MBC는 첫 대규모 국정원 규탄 집회를 메인뉴스에서 한 꼭지로 보도했다. 이마저도 절반은 여당, 절반은 야당으로 나눠 여야 공방으로 처리했다. KBS와 MBC는 이날 여름휴가 리포트에 집중했다. 휴가철에도 불구, 수만 명의 시민이 휴일 밤 집회에 모였지만 “전국은 피서중”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했다.

1차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렸던 6월 28일부터 8월 5일까지 KBS <뉴스9> 리포트를 조사한 결과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내용을 다룬 리포트가 7월 6일 17번째 단신, 7월 27일 18번째 단신기사로 단 두 건에 불과했다. MBC의 경우에는 관련한 단신 한 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같은 기간 SBS도 단신 4건 포함 총 5건에 불과했다.

KBS는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3일, 여름휴가와 관련된 리포트를 네 꼭지나 세웠다. <여름 피서 절정…전국 바다 계곡 피서객 몰려>, <본격 휴가철…250만 인파 바다 축제 중>, <물놀이 잇단 사고…해외 여행지서 배 전복도>, <휴가철 물놀이 사고 예방 수칙은?>이란 제목이었다.

MBC는 KBS보다 심각했다. 3일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가 <‘대한민국은 휴가중’ 산으로 바다로…피서인파 북적>이었다. 다음 리포트가 <동해안, 100만 인파 북새통…시원한 바닷물 풍덩풍덩>이었다. 그 다음에서야 <민주, 장외투쟁 첫 대중집회…朴대통령에 영수회담 제안> 리포트가 나왔다. 리포트는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를 하는 배경은 찾을 수 없었다.

반면 3일자 종합편성채널 JTBC는 <주말뉴스>의 첫 꼭지로 <‘장외투쟁’ 민주, 대규모 집회…김한길, 영수회담 제안>을 내보내며 “장외투쟁 첫날인 1일 JTBC와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을 둘러싼 책임이 새누리당이 44.2%로 민주당 보다(34.5%) 10%포인트 가까이 더 높게 나왔다”고 보도했다. JTBC는 <민주당 장외투쟁 정국, 향후 전망은>이란 분석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공영방송이 종합편성채널보다 나을 게 하나 없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올법한 대목이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008년 촛불 때는 공영방송사에서 매일 리포트가 나갔고,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중계도 많았다. 그 때도 지금도 KBS·MBC는 공영방송인데 지금은 수만 명이 참가한 촛불집회를 외면하고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처럼 굉장히 이례적인 사안도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희완 사무처장은 “국정원 선거개입처럼 의제가 점점 커지고 있는 사안은 리포트를 하는 게 정상인데 벌어지고 있는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진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권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조중동, ‘대선불복’ ‘좌파’로 물타기… 민주주의·촛불민심 외면= 1차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렸던 6월28일부터 8월6일까지 세 신문의 촛불집회·시국선언 내용보도는 조중동 모두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신 ‘촛불집회는 대선 불복 움직임이다’거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과 주최측이 같다’, ‘진보와 보수의 맞불 집회다’는 내용으로 조선일보 3건, 중앙일보 1건, 동아일보 2건이 있었다.

같은 기간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국정원 대선개입에 관한 국민들의 목소리 등 현장 스케치, 민주주의 의미에 대한 분석 등 촛불집회의 본질에 대한 기사를 각각 12건, 20건 보도한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다.

조선일보는 <반복되는 선거 不服, 민주주의 흔든다(7월16일자)>기사에서 “일부에선 박 대통령을 ‘불법 부정 당선범(犯)’이라고 불렀다. 박 대통령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고 보도했다. 민주주의를 흔든 사건에 대한 비판이 민주주의를 흔든다는 ‘적반하장’의 보도태도이다.   

중앙일보도 <5년마다 도지는 대선 불복 ‘돌림병’(7월 16일자)>기사에서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선거에 진 세력들이 불복 심리 때문에 집회를 열거나 탄핵을 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좌파는 촛불, 우파는 맞불, 시민은 열불(7월2일자)>기사에서 촛불집회를 좌우 대립 프레임으로 규정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국정원 정치개입은 헌법질서를 파괴한 국기문란 범죄임에도 ‘이념공방’으로 물타기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자 조선일보는 <大選 불복 절대 아니라면서…朴대통령에 공격 화살 돌리는 민주당(8월3일자)>기사에서 “야권 성향 단체들이 열어온 ‘촛불 집회’에도 참여키로 한 것은 결국 ‘대선 불복 심리’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사안의 본질을 흐렸다.

동아일보는 <민주당, 촛불 세력과 손잡으면 국민 지지 잃는다(8월 3일자)>사설에서 “민주당이 이런 집회에 들러리를 선다면 ‘대선 불복이나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며 민주당에게 촛불집회와 거리를 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민주국가는 공정한 선거로 민의를 모은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공정선거의 토대를 흔든 권력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마땅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국정원 선거개입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헌법질서를 흔든 문제다. 정치적 지지 세력의 유·불리를 계산해 보도하지 않거나 또는 면피보도·왜곡보도에 나선다면 저널리즘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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