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를 처음 보고 다소 당혹스러웠다. 상업영화에서 이제껏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하지 않은 감독의 영화라고 하기엔 큰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적 완성도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전의 그의 영화, 즉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와는 꽤 달랐다. 이전 영화에서 그는 초반의 황당한 상황을 마치 벽돌을 쌓아올리듯이 차분히 쌓아, 중반 이후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 구조 안에 깨알 같은 유머와 감흥을 심어두는 설정을 기묘하게 구사했는데, <미스터 고>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공을 들인 유머가 영화 중간에 꽤나 많이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었다. 야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야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보기에 스포츠의 박진감과 감흥을 제대로 그리고 있지 않아, 그리 흥미가 없다. 대신 중국에서 온 소녀 웨이웨이와 고릴라 링링의 관계를 통해, 인간마저 상품으로 팔아치우는 프로스포츠의 비정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서술 구조가 움직이지 않으니 큰 감흥이 없었다.      

김용화 감독이 만든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결국에는 감정적 동화가 일어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는 웃음을 띄게 만들었다. 아니, 기필코 그렇게 했다. 그 힘을 이전 세 영화가 충분히 입증해 주었지만, <미스터 고>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황당한 상황, 즉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설정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고, 그런 고릴라가 인간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영화 <미스터 고> 포스터.
 

이런 이유 때문에 김용화의 신작, 그것도 총 제작비가 무려 220억 원이 투입된 영화, 더구나 고릴라 링링과 실사를 조화시키는 데만 120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할지 의문이 들어 시사회를 본 날, 다른 평론가들이 어떻게 봤는지 자문을 구했다. 혹 내가 잘못 본 게 아닌지 걱정 됐기 때문이다.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영화에 동화되어 재밌게 봤다는 이들이 있는 반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이들이 있었다.

결국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다. 앞으로 이 영화가 한국영화 시장에서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기에, 관객들이 어떻게 이 영화를 바라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알려진 것처럼, <미스터 고>는 중국 3대 메이저 제작사 가운데 하나인 화이브라더스가 제작비의 25%를 투자했고, 중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개봉된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영화가 3D 영화라는 사실이다. 2009년 <아바타>의 국내 상륙 이후 관객들의 기대감은 높았지만 2011년 <7광구>의 처절한 실패 후 국내영화계에서 감히 3D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흥행불패의 김용화가 고릴라를 CG로 그리면서 3D 영화에 도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스터 고>에는 지금 한국영화가 할 수 있는 거의 실험이 들어있다.

   
영화 <미스터 고> 한 장면.
 

개봉 첫날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감시자들>보다 1.5배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상영횟수도 그만큼 늘렸는데도 11만4427명 대 9만4955명으로 밀렸다. 개봉 둘째 날에는 스크린 수가 절반도 안 되는 <레드: 더 레전드>(13만1463명)가 1위를 하고, <감시자들>(9만8277명)이 2위, <미스터 고>는 7만6070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셋째 날도 거의 비슷한 점유율로 같은 순위를 기록했다.

개봉한 지난 3일의 결과만 놓고 보면 <미스터 고>는 앞으로 흥행에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속도라면 처참한 흥행 실패가 예상된다. 내가 영화를 보고 들었던 걱정이 맞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불편했다.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실험을 하고 있는데, 그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 한국영화의 파이는 그만큼 작아지게 된다.

엄격히 말하면, 이 영화의 CG는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고릴라의 털이나 움직임을 스크린에 재현한 CG는 사실감이 강하다. 할리우드에 내놔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3D 효과에 대해서는 좀 엄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야구공이 객석으로 날아오는 3D 효과는 꽤나 사실감이 넘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3D 효과에 비하면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야구공이 객석으로 자주 날아오는 3D 효과를 제외하면, 다른 3D 효과는 꼽을 만한 것이 없다. 관객들의 눈높이는 <아바타>에 맞추어져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많이 약하다.

   
영화 <미스터 고> 한 장면.
 

<미스터 고>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은 확실한 포인트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스타가 없다. 거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의 구미를 당기는 스타를 고용하지 않은 것은 만용에 가깝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국의 소녀 배우와 가상의 고릴라가 주인공이니 홍보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다음으로 장르적 쾌감이 없다. 오히려 <국가대표> 같은 스포츠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런 스릴과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스포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쾌감을 느낄 곳이 없다. 손에 땀을 지는 이야기도 없다. 셋째, 서사의 리듬이 약하다. 초반의 이야기는 너무 빠르고 중반은 늘어지고 결론은 바쁘게 닫아버린다. 서사의 리듬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지니 결정적인 장면이나 부분이 없다.

<미스터 고>는 분명 의미 있는 실험이다. 무엇보다 한국영화가 동남아 시장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야 할지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3D 영화의 거대 자본으로 갈지, 우리 역사를 큰 자본과 결합시킨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갈지, 아니면 동남아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영화’로 갈지, 영화의 흥행이 실마리를 던져줄 것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개봉 첫날 흥행 1위를 했다고 하니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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