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팬들에게 6~7월은 ‘잔인한 세월’이다. 시즌이 한창일 때는 매주 주말마다 경기를 지켜보느라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았던 국내 축구팬들도 다르지 않다. 한 시즌이 끝나는 5월말부터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8월까지 그저 ‘경기가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공허한 주말 밤이 이어진다. 축구팬들의 공허함을 달래주기 위해서일까. 이적설 보도가 홍수를 이룬다. 
 
태초에 언론이 ‘이적설’을 창조하시니!
 
한국축구의 ‘신성’으로 떠오른 손흥민 선수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는 말이 있었다. 올해 초의 일이다. 지난 시즌 독일 분데리스가 함부르크에서 리그 33경기에 출전, 12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친 덕분에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맨유에 이어 첼시, 리버풀, 토트넘, 인터밀란 등이 손흥민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뉴스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맨유도 손흥민 영입 위해 167억 이적료 준비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질 정도였다. <손흥민, 맨유 이적 구체화하나? …연봉까지 제시>라는 식의 기사도 있었다. 언론들은 ‘해몽’을 곁들여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맨유는 그의 능력과 상품성을 높이 샀고, 첼시는 마케팅 효과를 기대했다는 식이다. 결론은 ‘믿을 만한 뉴스다!’라는 것.

   
▲ 국민일보 2월18일자 21면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결론은 달랐다. 손흥민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유도, 첼시도, 기사에 언급됐던 그 어떤 팀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지난 6월13일,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바이어04 레버쿠젠으로 팀을 옮겼다. 이로써 손흥민 선수를 둘러싼 수많은 이적설도 종지부를 찍었다. ‘왜 이적설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열심히 전파하던 수많은 언론보도가 무색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문이 쏟아진다. 허공에 떠도는 수많은 ‘~카더라’는 말들이 활자가 되어 기사로 태어난다. 최근에는 호날두, 수아레즈, 루니, 카바니, 이과인, 요베티치, 베일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수백억원의 가격표를 달고 소문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축구팬들은 기다림과 실망, 기대와 좌절을 반복한다. 이적시장이 마무리되는 8월31일까지 반복될 풍경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우선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은 해외축구 기자를 ‘앉아서’ 쓴다. 직접 현장에서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외신보도가 사실상 거의 유일한 취재원이 된다. 적지 않은 기사의 끝에는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 대신 ‘외신팀’이라는 바이라인이 달린다. 직접 취재하지 않고,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도 안 믿는 이적설, 기자도 안 믿는다?
 
외신들은 어떨까. 한국 언론들이 즐겨 인용하는 영국의 <더선>지나 <데일리미러>, <뉴스오브더월드>, <더피플> 등은 이적설 루머의 대표적 ‘진원지’로 꼽힌다. 영국의 사이트 <풋볼트랜스퍼리그>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일례로 2006년 여름부터 <데일리미러>가 쏟아낸 7689건의 이적설 기사 중 사실로 드러난 경우는 1604건에 불과하다. ‘적중률’로 따지면 20.9% 수준이다.  
 
물론 원래 수많은 말들이 떠도는 곳이 유럽축구 이적시장이다. 선수와 에이전트들은 몸값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소문’을 흘리고, 구단 역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슬쩍 ‘언론플레이’를 한다. 일상적인 일이다. 누구도 믿지 않았던 소문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결국 ‘루머’로 끝났지만 실제로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훗날 드러나는 사례도 종종 있다. 

   
▲ 스포츠동아 2월18일자 6면
 
 
이적설을 하나의 ‘오락’으로 즐기는 분위기도 있다. 두 달 넘게 경기가 열리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무료한 상황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적설만큼 무료함을 달래기에 좋은 소재도 없다. 심지어 몇몇 구단들은 비시즌 기간 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팀에 관련된 이적설’을 따로 모아 연재할 정도다. 이적설을 ‘기사’가 아닌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한국 언론들의 무책임한 받아쓰기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신을 인용한 기사라 하더라도, 기사의 책임은 결국 기자에게 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사실관계 확인을 거쳤고, 자신 있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쓰는 게 기자의 역할”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블로거나 취미로 게시판에 글 쓰는 일반 팬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장과 가까울수록 믿을만한 기사가 나오기 마련이다. 한국 언론 중 유럽 현지에 취재진을 보내는 언론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언론사에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직접 현지로 날아가 취재를 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언론사에 판매하는 프리랜서 기자나 전문매체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는 기존 언론사들의 무관심과 한계, 무책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에 가깝다. 
 
국내 축구팬들의 수도,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근거가 희박하거나 사실과 전혀 다른 ‘외신발’ 이적설 보도, 최소한의 합리성과 타당성도 갖추지 못한 기사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기사를 쓴 기사도 안 믿는다’는 말이 나온다. 최 평론가는 “요즘 유럽축구 마니아들은 (한국 언론들의) 이적설 보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여실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 2월18일자 25면
 
 
‘이적설’은 포털을 타고 흐른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적설 기사들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여과 없이 유통되고 확산된다. 이영표 선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2008년, <이에스피엔(ESPN) 사커넷>과의 인터뷰에서 “이적설이 너무 잦다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라며 “특히 한국 미디어가 얘기하는 이적설 보도는 거의 100%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의 책임을 언급하는 의견도 있다. 최동호 평론가는 “포털에서 스포츠섹션을 꾸며놓고 담당자도 두긴 했는데, 전문적인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 검증이나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 없이 선정적인 기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문’을 무책임하게 옮겨대는 언론사들과 ‘찰떡궁합’인 셈이다. 
 
<풋볼트랜스퍼리그>에 따르면, 가장 높은 적중률을 기록한 언론사 중 한 곳은 영국 <가디언>지다. 2006년 여름 이후 쏟아낸 이적 관련 보도 692건 중 사실로 드러난 게 234건(33.8%)이다. 절반도 안 된다. 이를 근거로 ‘부정확한 보도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9.7%를 기록한 <토크스포츠>나 12.7%에 그쳤던 <메트로>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포털사이트 입장에서는 <가디언> 같은 언론사보다는 <토크스포츠>나 <메트로> 같은 언론사가 매력적일 수 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적설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사일수록 관련 기사의 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이영표 선수는 “책임감 없이 전달되는, 사실이 아닌 뉴스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근거 없이 남발되는 이적설 보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