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련·기자협회·PD연합회 등 언론3단체는 최근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을 마련하고 상호존중과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국명과 호칭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자고 제의, 언론에서의 북한에 대한 호칭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3단체는 남북 대화를 위해서는 상호인정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북한에 대한 호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 조선)이라고 하고 인물에 대한 호칭은 성명다음에 직책을 붙여 호칭할 것을 제의했다. 언론3단체의 이같은 제의를 계기로 언론에 있어서의 북한 호칭사를 되돌아 본다. <편집자>


언론에서 ‘북한’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나서부터다.
당시 문공부는 정부의 공보지침으로 종래 ‘북괴’로 부르던 것을 ‘북한’으로 호칭할 것과 ‘김일성과 그 체제에 대한 중상 비방을 삼갈 것’을 시달했다. ‘북괴’라는 호칭 대신 ‘북한’이라는 호칭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같은 정부의 지침이 있은 후였다.

이전까지 언론에서 북한은 ‘적’이며 ‘괴로집단’이었다. ‘북한괴로군’ ‘적괴’ ‘북괴’‘공산괴로장권’이라는 적대적인 표현은 그나마 점잖은 표현에 속했다. ‘붉은 이리떼들’ ‘붉은 괴뢰’‘붉은 적’ ‘공산도배’‘공산악당’ ‘붉은 공산집단’ ‘김일성 괴뢰도당’등 살벌하고 원색적인 표현이 서슴없이 지면에 등장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사용되기 시작한 ‘북한’이라는 호칭은 그러나 74년 8·15 행사장에서의 ‘대통령 저격사건’이후 남북관계가 또다시 급격하게 경색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원위치 됐다. ‘북괴서 암살지령’(74. 8. 19 동아), ‘북괴 공작선서 접촉’(74. 8. 19 조선)등이 사건이후 언론은 북한을 ‘북괴’로 지칭했다. 이런 현상은 80년 이전까지 계속됐다.

80년대 들어서는 대체로 ‘북한’이라는 호칭이 많이 쓰였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며 이뤄진 남북 화해 무드와 함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 등 북한에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제시하면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북괴’라는 호칭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까지도 정권이나 군대, 공산당 핵심인물 등을 지칭할 때는 여전히 ‘북한공산집단’(81. 8.15 서울), ‘김일성 집단’(83. 5.18 조선), ‘북괴’(84. 2.11 조선)라는 호칭이 사용되곤 했다. 87년 ‘6·29선언’이후 언론에서 ‘북괴’라는 호칭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간혹 ‘북한괴뢰정부’(89. 8.15 동아)등이 돌발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예외적인 경우였다.

어쨌거나 노태우 정권이 가시적으로 내세웠던 ‘북방정책’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북한 호칭문제는 정부의 대북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시각이 그래왔지만 오히려 정부의 정책기조보다 ‘냉전적’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언론이 ○○○총리 등 북한의 정치적 담당자를 호칭할 때는 직책을 붙이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도 ‘김일성 주석’이라는 말은 좀처럼 쓰지 않으려 했던 것도 언론의 이같은 냉전의식의 반영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언론 3단체가 ‘북한’을 ‘조선’으로 호칭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상호주의에 입각했을 때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부터 ‘남북’이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민족내부단계’의 표현에 ‘한국’ ‘조선’이라는 호칭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안된다’는 발상보다는 차분하고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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