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저널리즘의 위기는 다층적이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과 심층 취재 부족은 뉴스의 전문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프라인에선 광고에 의존하는 수익모델에 위기가 왔다. 온라인에선 조회 수를 올려 돈을 버는 ‘클릭 저널리즘’이 야만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은 여론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대신 여론을 잠재우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역언론은 고사 직전이다. 서울공화국의 단면이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안적 모델을 찾는 연재를 기획했다. 건강한 저널리즘 없이 사회는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월 23일부터 2주간 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언론현장을 찾아 저널리즘이 ‘사양산업’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공영방송, 온라인 뉴스 유료화에 성공한 탐사보도매체, 지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생존한 지역 언론까지 여러 도전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①] 지역신문의 살 길, 결국 지역에 있다 : 틴틀 미디어그룹 회장 레이 틴틀 경 인터뷰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②] 언론의 독립을 원한다면, 독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메디아파르’ 편집국장 에드위 플레넬 인터뷰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③] 국경 없는 공영방송이 유럽을 감싸고 있다: 프랑스·독일 협력공영방송 아르떼(ARTE)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④] 91년 역사의 세계 최대 공영방송 BBC, 연이은 인력감축 속에도 상식 통해 영광 지켜내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⑤] 나찌의 기억 바탕으로 ‘최고수준’의 독립성 확보한 독일 ZDF

2012년 여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전역에서는 성화 봉송이 한창이었다. 주최 측은 ‘영감을 주는 사연을 가진 8000명’을 성화 봉송 주자로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자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 공식 스폰서인 아디다스를 비롯한 각 후원사들은 임원이나 직원들에게 ‘포상하듯’ 성화 봉송 기회를 나눠줬다. 심지어 하나의 사연을 베껴 낸 7명의 아디다스 직원들도 성화 봉송 주자로 선발됐다. 규정을 어긴 것이었다.

성화가 봉송되는 구간 8000곳 중 대부분(90%)이 일반에 공개된다는 약속과 달리, 실제로는 공개된 구간이 71%에 머물렀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해 연말에는 지방정부들이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성화 봉송 예산을 지원받고도, 이를 전혀 다른 용도로 쓴 사례도 밝혀졌다. 지방정부 100곳의 예산·결산안을 들여다 본 결과였다. 모두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헬프 미 인베스티게이트(Help Me Investigate: HMI)’의 작품이었다. 

   
폴 브래드 쇼 교수
 

“취재를 도와줘!”…뉴스가 변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HMI는 ‘언론사’라기보다는 ‘사이트’에 가깝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공유해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른바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crowdsourcing journalism)’이다. ‘런던올림픽 시리즈’도 그렇게 탄생했다. 소수의 ‘기자’들이 취재 결과를 기사로 쓰고, 독자들은 수동적으로 이를 읽기만 하는 전통적 의미의 ‘언론사’와는 거리가 있다.

폴 브래드 쇼(Paul Bradshaw) 버밍엄시티대학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HMI를 세운 인물이다. 지난 5월24일,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60㎞ 떨어진 버밍엄(Birmingham)에서 그를 만났다. ‘온라인 저널리스트’ 또는 ‘블로거’로 소개되는 그는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할 때 단골로 꼽힌다. 그는 영국 가디언을 비롯해 미국 하버드대의 니만리포트(Nieman Reports) 등 여러 매체에도 글을 썼다.

폴 교수는 “온라인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저널리즘의 성격과 뉴스의 유통 과정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뉴스를 읽는 장소가 달라졌다”는 점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로 꼽았다. “사람들은 주로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종이신문을 펼쳐 읽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직장에서도 컴퓨터를 통해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뉴스를 읽을 수 있지 않나.”

중요한 건 독자들이 뉴스를 읽는 ‘장소’만 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뉴스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플랫폼이 변화함에 따라 기사의 형식이나 길이, 내용도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뉴스의 생산 방식도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핵심은 인터넷이 가져다주는 ‘양방향성(interactivity)’과 이를 활용한 독자들의 참여다.

“10년 전, 기자들은 수백 개의 단어로만 기사를 써야 하는 제약에 얽매여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깊이 있는 정보를 분량의 제한 없이 쓸 수 있고, 라이브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할 수도 있다. 취재를 하러 가는 도중 트윗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무엇을 취재할 건지 사전에 독자들과 상의할 수도 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지만, 뉴스 생산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사는 기자들만 쓰는 게 아니다”…독자와의 ‘협업’ 저널리즘

폴 교수는 다시 ‘런던 올림픽 시리즈’ 이야길 꺼냈다. HMI가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들은 영국 가디언을 비롯해 텔레그라프, 인디펜던트, 데일리메일, BBC 등에 소개됐다. 그는 “종이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뉴스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8000명의 성화 봉송 주자들의 명단을 분석하고, 8000곳의 성화 봉송 구간을 꼼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인력을 갖춘 언론사는 없다.

이 같은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은 이미 다양한 매체에서 시도된 바 있다. 영국 가디언은 2009년, 영국 하원 의원들의 활동비 청구내역 46만여 건을 모두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2만7천여 명의 독자들이 참여해 이 중 22만여 건의 청구서에서 문제점을 찾아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나 허핑턴포스트도 등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통해 독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미국 CNN의 ‘iReport’나 가디언이 최근 출시한 ‘Witness’앱도 같은 맥락의 시도들이다.

폴 교수는 “언론사가 수백 명의 기자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수많은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으로 인해 각기 다른 독자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가디언은 일찌감치 이 같은 ‘오픈저널리즘’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기자들은 세계의 유일한 전문가들이 아니다”라는 앨런 러스브리저 가디언 편집장의 ‘선언’은 상징적이다.

폴 교수는 “이미 수많은 전문가와 목격자들이 있다. 이들을 참여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자들을 알아가고, 이들과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독자들의 의견을 기사나 편집에 ‘반영’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기자들이 스스로 ‘정보의 독점’을 깨고 독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보다 깊이 있고 흥미로운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폴 교수는 “온라인 저널리즘은 독자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기사를 쓰는 행위나 취재가 기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낚시’ 기사가 아니라 차별화된 콘텐츠로 경쟁하라 

그러나 온라인과 모바일의 등장이 곧 저널리즘의 혁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거나 ‘SNS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들이 반복됐지만, “기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는 게 폴 교수의 지적이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국내에선 온라인 저널리즘이 기껏 ‘네이버 저널리즘’ 수준으로 이해될 뿐인 상황도 이를 웅변한다.

폴 교수는 “영국에서는 많은 기자들이 온라인을 또 다른 형태의 저널리즘을 위한 도구로 봤고, 이것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온라인은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진 공간이다.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와 자원들을 제공해주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실험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이다. 폴 교수는 “영국에서 성공한 온라인 매체들을 보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콘텐츠를 제공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비즈니스’의 관점도 포함된다. 폴 교수는 “언론사들은 광고주들에게 ‘우리 독자들은 (사이트에) 더 오래 머물고, 더 충성스럽다’는 점을 어필할 수도 있다”며 “<더선(The Sun)>은 ‘섹시 타이틀’과 사진을 앞세워 가장 많이 팔리는 잡지로 꼽히지만, 온라인에서는 가디언, 데일리메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낚시’ 기사가 아니라 “차별화된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지적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나온다.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네이버가 온라인저널리즘을 정의하고 있다”며 “총체적인 혁신의 부재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제 뉴스는 누구나 다 만든다”며 “인사이트, 관점과 전망을 보여주는 (차별화된) 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을 열어놓고 독자들과 개방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폴 교수는 “명확한 변화는 기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쇄적인 편집국과 출입처에서 벗어나 트위터도 해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차피 이미 많은 독자들이 봤을 법한 뉴스를 쏟아내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포털에 의존해 혁신을 게을리해왔던 국내 언론들에게, 온라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위 특별기획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독자들은 이미 온라인으로 떠났다”

   
 
 
탐사보도 사이트인 ‘헬프 미 인베스티게이트(HMI)’는 영국의 버밍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9년 영국 지상파 ‘채널4’의 기금 등을 출연받아 설립된 이후, 주로 지역의 이슈들을 다뤘다. 버밍엄 주정부 웹사이트 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처럼 ‘권력 비판’형도 있었고 ‘주차단속 딱지가 가장 많이 발급된 거리’처럼 생활에 밀접한 주제들도 다뤄졌다.

지난 1월, HMI는 지역신문사인 <버밍엄 메일>과 함께 ‘Behind the Numbers(숫자 뒤에 숨겨진 것들)’이라는 데이터블로그를 선보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자료의 숫자 뒤에 숨겨진 ‘팩트’를 찾아내 소개하겠다는 취지다. 역시 독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폴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블로그로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스팟어스(Spot.us)’의 실험적 사례가 관심을 모은다. 기자가 취재 아이템을 내면, 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에 돈을 기부하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방식이다. 현재까지 2만1650명 이상의 독자들이 참여했다. 기부금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스팟어스와 제휴한 언론사들을 통해 기사화로 이어질 경우 이 금액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그밖에도 세계 각지에서는 온라인저널리즘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폴 교수는 “종이신문들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같은 뉴스라도) 어떻게 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관적인 인포그래픽과 인터랙티브 서비스 등 뉴스 편집자들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는 <뉴스타파> 등이 주류언론과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독자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소싱’ 개념이지만, 기사를 쓰거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기자들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연합뉴스의 미디어랩 등이 데이터 저널리즘과 인터랙티브 뉴스 등을 시도해왔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에서는 아직 관심 밖의 일일 뿐이다.

폴 교수는 “종이신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독자들은 뉴스를 읽는 데 온라인을 더 많이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은 이미 온라인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번 편으로「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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