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지역신문의 살 길, 결국 지역에 있다
지역신문의 살 길, 결국 지역에 있다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①] 틴틀 미디어그룹 회장 레이 틴틀 경 인터뷰

한국 사회 저널리즘의 위기는 다층적이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과 심층 취재 부족은 뉴스의 전문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프라인에선 광고에 의존하는 수익모델에 위기가 왔다. 온라인에선 조회 수를 올려 돈을 버는 ‘클릭 저널리즘’이 야만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은 여론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대신 여론을 잠재우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역언론은 고사 직전이다. 서울공화국의 단면이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안적 모델을 찾는 연재를 기획했다. 건강한 저널리즘 없이 사회는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월 23일부터 2주간 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언론현장을 찾아 저널리즘이 ‘사양산업’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공영방송, 온라인 뉴스 유료화에 성공한 탐사보도매체, 지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생존한 지역 언론까지 여러 도전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모든 거리마다 신문을! (newspaper for every street!)”

지난 23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판햄(Farnham)에서 만난 레이 틴들 경(Sir. Ray Tindle, 88)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10번째로 큰 미디어그룹인 틴들 그룹(Tindle Newspaper Group)의 유일한 소유주이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회장이다. 틴들 그룹은 200개 넘는 지역신문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발행부수는 140만부에 달한다.

   
틴틀 미디어그룹 본사 로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과거 이 지역 경찰서로 쓰이던 건물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은 간단했다. “매우 지역적이고 작게 (신문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다. 틴들 경은 “독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지역신문을 산다”고 강조했다. 영국 시티 대학교의 로이 교수는 “‘하이퍼 로컬리즘(Hyper localism)’이라는 단어가 있기 전부터, 그것을 실천해 온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이 한국 언론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약 두 시간 동안 그와 가진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틴들 뉴스페이퍼 그룹에서 200개 넘는 신문이 발행된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몇 개나 발행되고 있고, 임직원은 몇 명 정도 되나.
“현재 217개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라디오(Tindle Radio)까지 포함하면 임직원은 800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는 100년 넘게 발행되고 있는 신문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 중 하나는 창간한지 205년이 됐다.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정도는 (창간한지) 100년에서 200년 사이다.”

-어떻게 해서 틴들 그룹이 영국 10위권의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울트라 로컬’ 철학(ultra-local philosophy)은 그룹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나.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더 몸집을 키우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역신문의 성공 비결은 매우 지역적이고 작게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독자들은 자신들의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4~5마일(7~8㎞) 밖에서 벌어진 일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1개의 큰 신문보다 작은 6개의 신문을 원한다. 그게 중요한 ‘비밀’이다. 한국에서라면 얼마든지 (이 비밀을) 써먹어도 좋지만, 우리 경쟁사에게는 알리지 말라. (웃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리 그룹 중 <사우스 런던 프레스(South London Press)>라는 매우 오래된 신문사가 있다. (주: 1865년 창간) 계속해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난해 6월, 웬디(Wendy Craig, 전무)와 함께 남런던 지역에 위치한 신문사 사무실을 찾아가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이 신문은 크로이든, 윔블던, 포레스트 등 남(南)런던 지역을 커버하고 있었다. 구독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150년 넘은 이 신문을 2주의 기간 내에 6개의 신문으로 나눌 것을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스트렛햄, 브릭스톤, 뉴크로스, 윔블던, 둘위치 등 각각의 (더 좁은) 지역 별로 신문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마 직원들은 내가 신문의 문을 닫고 자신들을 해고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직원들은 6일 만에 신문을 7개로 나눴다. 하락하던 구독률은 반전에 성공해 큰 폭으로 다시 상승했다. 이 사건은 영국 언론계에서도 큰 화제였다. 전국 단위 신문사들에서도 이 ‘사건’을 관심 있게 다뤘다. 이게 바로 우리가 평생 믿고 있는 것이다.”

   
틴틀 미디어그룹 소속 지역신문들의 모습.
 

-당신이 ‘지역(Local)’을 말할 때, ‘지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는지 궁금하다.
“‘모든 거리마다 신문을!’. 나는 이미 여러차례 이 같은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이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거리에서 매주 신문이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반드시 사서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더 좁은 지역을 다룰수록, 독자 수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더 좁은 지역을 다룰수록, 사람들은 더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신문에 자기가 아는 거리나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주의를 기울여 읽게 되지 않나. (앞에서 언급했던) 사우스 런던 프레스는 매우 좋은 사례다.”

-틴들 미디어그룹 소속 기자들은 모두 해당 지역 출신인가? 아무래도 그 지역에 대해 잘 아는 기자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특별히 기자들에게 교육하는 것 또는 주문하는 게 있나.
“영국의 기자들은 국가가 공인한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일례로 기자들은 대개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나 더 타임스(The Times) 같은 큰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자들에게 ‘만약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을 한다면, 우리는 오직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취재하길 원한다’고 주문한다. 물론 기자들이 더 큰 신문사로 옮겨 더 큰 이슈를 취재하기 원하는 걸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신문사에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며칠 전에 런던에서 테러가 벌어져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현재 이게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모든 기자들도 이 사건을 취재하기 원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다르다. 다른 지역에서 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건 우리 지역에선 뉴스가 안 된다. 다른 신문에서도 그 소식을 볼 수 있지 않나. 독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지역신문을 산다. <판햄 헤럴드>의 오늘자 1면에선 판햄 지역의 자치구 독립을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톱 기사다.” 

-영국은 지방 분권이 잘 되어 있는 편인가? 한국의 경우는 서울과 수도권에 권력과 자본이 집중되어 있어 뉴스도 ‘지역’ 단위가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역신문의 발전 조건을 제약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는 어떤가.
“1974년에 영국 정부는 여러 작은 지방자치 단체들을 묶어 하나의 지역정부로 만들었다. 판햄 주민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문제다. 지역 주민들에 의해 지방 정부가 구성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지방 정부를 움직이고 있어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 일례로 웨이벌리 보로 정부는 판햄 지역에 수많은 상점과 주택들을 짓고 싶어 하지만, 주민들은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마을을 그대로 보존하길 원한다.”

   
틴틀 미디어그룹 본사가 위치한 판햄(Farnham) 지역에서 발행되는 <판햄 헤럴드>, 1892년 창간됐다. 5월 24일자 신문에는 판햄 지역의 자치구 독립 움직임 소식이 1면 톱기사로 배치됐다.
 

-전 세계적으로 신문 산업이 위기라는 사실에 동의하나. 틴들 미디어그룹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왔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신문들을 모두 하나로 합치지 않으면서도 그룹을 키워왔다. 각 계열 신문사들에 전화해서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별 신문들이 모인 형태로 그룹을 유지해오면서, 우리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영국 내 어느 신문사보다 위기를 잘 견뎌왔다. 하나의 신문사도 문을 닫지 않았고, 그룹 전체에서 단 한명의 기자도 해고하지 않았다. 경제위기를 맞아 단 한명의 기자도 해고하지 않은 곳은 영국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우리는 그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매출액이 상당히 감소한 건 사실이다. 경제위기가 이어지다보니 구인 광고로 들어오는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아무도 사람을 안뽑으려 하지 않나. 이 때문에 우리도 타격을 입었고, 새로 직원을 채용할 형편은 못 된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직원들을 해고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회사를 떠나는 인원이 생길 경우, 그들을 대체할 직원을 뽑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도 해고하지 않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비교적 고통 없이 경비를 줄일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워렌 버핏이 지역신문을 계속 인수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워렌 버핏은 멋진 양반이다. (웃음) 지역신문들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은 지역신문을 사양 산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고,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이 엄청난 돈을 지역신문에 투자하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나 역시, 그보다는 적지만,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뒤에도, 우리는 18개의 신문을 창간했고, 한 두 곳의 신문사를 인수했다. 지역신문은 당신이 어디에 살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신의 이웃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지역신문 말고는 없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그것이다. 워렌 버핏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영국=판햄)

위 특별기획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60년 넘게 지역신문 외길…레이 틴들 경은 누구?

인터뷰를 가진 레이 틴들 경의 사무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였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눈으로 보기에도 100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신문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모두 해당 신문들이 발행될 당시 첫 번째 인쇄본이라는 설명이다. 그룹에 속한 지역신문들 중에는 100년 넘은 역사를 지닌 곳이 적지 않다. 틴들 경은 60년 넘게 오직 지역신문에만 몸을 담아왔다.

   
틴틀 미디어그룹 회장 레이 틴틀 경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군에 입대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파병됐다. 전쟁터로 향하는 5주 넘는 항해 기간 동안, 그는 수송선 안에서 신문을 만들었다.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 앞서 독일이 런던을 공습할 때, 그는 학생이었다. 런던 학생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그는 지역신문 경영진 가족의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

다른 한쪽 벽에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해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찰스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영국 왕실의 인사들과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왕실 만찬에 초대된 기록도 남아 있었다. 그는 지역신문 발전에 기여한 바가 인정돼 1994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바 있다.

그는 60년 넘는 시간을 회상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사우스 런던 프레스 ‘사건’이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실패했다면,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을 것이고, 우리 그룹의 나머지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졌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패했다면 오늘 여기에 앉아 당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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