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중의 하나는 그를 따르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그들의 해박한 지식이 김영삼을 비판하는데는 전혀 쓰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우상화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김정남

그중 대표적 인물은 청와대 교문수석을 지낸 김정남이다. 김영삼을 예찬하는 많은 글 가운데 김정남만큼 그를 우상화하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김정남은 심지어 김영삼이 백범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백범이 민족에 함몰됐던 데 반해 대통령은 21세기의 민주기상에 맞는 열성으로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김정남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번 대선 때 민자당의 용공시비는 정당한 것이었는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크게 잘한 일도 아니고 성공하지도 못했다”고 답했다. 김정남은 청와대에 있는 동안 내내 ‘빨갱이’ 시비에 시달리다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김정남을 빨갱이로 몬 건 정당한 일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김정남을 빨갱이로 몬 사람이 똑같은 답을 한다면 그는 어떤 생각이 들까. 그는 민자당이 김영삼의 정당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이영희

인하대 교수에서 여의도 연구소장으로 진출해간 이영희도 눈여겨 볼 만한 지식인이다.
이영희가 김영삼을 지지하는 명분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YS를 통해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군부의 저항을 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김영삼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군부의 저항’ 타령을 늘어놓는지, 이젠 정말 듣기 지겹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김영삼의 반진보성엔 기꺼이 눈감아주면서 자신을 속이기 위해 ‘군부의 저항’이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읊어대는 데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김문수

김문수는 “왜 민주당이 아니라 민자당에 입당했느냐”는 질문에 “지금 재야출신을 제외하고는 정치인들 중에 가장 개혁적인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기택 대표보다 더 개혁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점에선 진보입네 하는 지식인보다 보수적인 지식인이 훨씬 솔직하다. 박재윤은 “김영삼이 야당후보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문수는 차라리 박재윤의 솔직함을 배워야 한다.

송복

송복은 “지방선거의 지역할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나. 일부에서는 지방당 출현은 우려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결국 지방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지자제의 근본의미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말도 김대중이 하면 그냥 두질 않는다. 6·27선거 하루 전 그는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내 지역의 발전, 내 지역의 사랑을 넘어서서 내 지역을 패권의 기틀로 삼는 것, 이 또한 가장 후진적인 정치양태의 하나다. 역사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역사의 논리 중 가장 명백한 사실은, 물러갈 때 물러가지 않는 사람을 역사는 응징한다는 것이다”

백기완

백기완은 그의 책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에서 김대중을 ‘병든 당나귀’로 매도하고 있다. 87년 후보 단일화를 못한데다 “광주에서 사람을 죽인 살인마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앞장선 것” 때문이다. 백기환은 김대중이 “노태우 군사독재를 대변한다”는 모함까지 하고 있다.
어디 백기완에게 한번 물어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3백42년간 지속돼온 천인공노할 인종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임 백인 대통령 데클레르크와 ‘정권의 흑백공유’라는 대타협을 이끌어 냈다. 백기완은 대답하라. 만델라가 병든 당나귀인가. 김대중은 ‘한국의 만델라’가 되고 싶어한다.

장기표

나는 장기표가 한국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성의 하나라는 데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세포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는 ‘반DJ정서’엔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그는 요즘 “세대교체를 포함해 97년 집권을 목표로 한 정당이 조만간 부상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다니기에 바쁘다.
“이제 양김의 한계는 명백히 드러났다. YS의 경우 개혁실종이 그것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의 개혁은 일관성도 형평성도 없었으며 즉흥성에 기대기 일쑤였다. DJ의 경우도 최근 똑같은 한계를 이미 드러냈다.
특히 DJ는 YS의 개혁에 사사건건 시비를 붙이며 상처를 냈다”
이건 사실 날조다. 김대중이 김영삼의 개혁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사처를 냈다니 정말 망언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신문철을 하나씩 들쳐봐라. 김대중은 내내 김영삼의 개혁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도 김영삼은 김대중의 비정치적 활로마저도 사사건건 방해했다.

고성국

내가 아주 괜찮은 정치평론가로 평가해온 고성국이 최근 어찌해 사안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김영삼과 김덕룡을 옹호하는 글만 써대는지 그게 안타깝다.
고성국은 김영삼의 ‘세대교체론’에 대해 “이번의 세대교체공방을 지켜보면서 김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적 주도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대통령이라는 지위와 정면돌파로 상징되는 정치적 퍼스낼리티가 세대교체론으로 응집돼 나타남으로써 여타의 모든 정치적 이슈를 제압해 버렸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정치평론가로선 유일하게 언론비판에도 앞장서온 고성국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그는 아마도 언론보도상으로 그렇다는 뜻으로 말한 것 같은데 그는 우리 나라의 언론을 그렇게 신뢰한단 말인가. 분명히 해두자. 언론보도상으로도 세대교체론이 결코 여타의 이슈를 제압하지는 못했다.

박찬종

박찬종의 양비론은 정말 철두철미하다. 그의 이데올로기가 양비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지역감정에 대한 이해도 양비론이고, 그의 세대교체론도 일종의 양비론이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비록 검토단계에 머물렀다고는 하지만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 무소속 중 무엇이라도 택할 수 있는 ‘네다리 걸치기’라는 사상 초유의 정치적 신축성을 과시했다. 그가 결국 무소속으로 남은 것은 원칙과 명분 때문이 아니라 이해득실을 따져본 정치적 산술의 결과였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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