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

지난 7월 18일 검찰이 5·18 책임자들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와 성명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성공한 폭력은 무죄’라는 검찰의 해괴한 논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인 분노의 표시였다.

그러나 방송 보도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KBS와 MBC등 주요 방송사들도 7월18일 검찰 발표가 있는 직후 3∼4일 동안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7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시위와 각종 성명보도는 아예 다루지 않았거나 축소됐다.

7월 22일 서울과 광주에서 수천 명이 모여 연 대규모 집회는 MBC의 경우 단신 처리됐고 KBS 9시 뉴스는 보도하지 않았다. 7월 28일에 열린 불기소 규탄대회에서는 5·18때 아들·딸을 희생당한 어머니들이 삭발투쟁에 나섰는데도 방송은 이 어머니들의 눈물을 외면했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난 7월31일 고려대 교수들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는 교수성명이다. 이렇게 전국의 교수들이 한뜻으로 성명을 내고 있는 것은 지난 87년 호헌조치 반대이후 최초의 일이다.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교수들의 성명 동참 인원은 지난 11일 현재 3천2백 여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방송보도는 이런 지식인 성명에 대해 눈감고 귀감고 있다. KBS와 MBC는 7월 31일의 고려대 교수 성명을 단신으로 보도했다. 그나마 KBS의 경우는 수도권 로컬시간에 편성해 지방에 있는 시청자들은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KBS의 라디오정보센터는 성명 다음날인 8월 1일 성명을 낭독한 김우창 교수 인터뷰를 약속했다가 고위층의 지시로 서둘러 취소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교수 3천 여명과 변호사·문인 등 지식인 성명은 철저히 외면돼 9시뉴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에는 전국 16개 대학에서 1천6백80여명의 교수가 성명을 내고 광주·전남지역교수들은 전남대에서 전남도청 앞까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방송보도는 역시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날 광주지역 교수들이 시위하며 행진한 그 길은 지난 80년 5월15일에 교수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그 길을 15년만에 이번에는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다시 걸어간 것이다. 그런 상징적인 사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마땅히 진실을 밝히고 역사의 바른 길을 잡아가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책무를 지식인들이 앞서 행하고 있는데도 사실보도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의 이런 태도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다 한번 정해진 정부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는 방송인들의 패배주의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보도뿐만 아니라 각종 편성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반영돼 5·18 불기소 방침이 발표된 때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은 한 건도 없다. 80년 5·18 당시,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죽어간 사람들을 폭도로 내몬 방송의 입장에서는 다시 씻을 수 없는 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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