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원장이 8시면 어김없이 ‘칼퇴근’하는 종업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세븐일레븐을 긍지로 여기던 미용실 원장은 칼같이 퇴근하는 종업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국민일보 2007년 1월28일자 기사 중)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의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극단적 사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위에서 언급된 사례는 우리의 ‘일상적 풍경’일 수도 있다. 
 
‘성실’과 ‘장시간 노동’ ‘밤 11시 퇴근’을 동일어로 여기는 사회에서 칼퇴근은 ‘나태’ ‘무성의’ ‘이기주의’와 한 맥락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과로사회>(이매진)의 저자 김영선 씨가 얘기하듯 “(대한민국은) 장시간 노동이 워낙 굳건한 터라 칼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일탈자로 처리되기 마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하다. “장시간 노동을 이상적인 것 또는 생산적인 것, 나아가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탓에 칼퇴근을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가 생겨나는” 곳에서 칼퇴근하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일탈인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땡녀’라는 공격적인 단어로 칼퇴근자를 비하하고, ‘땡녀’로 불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조직문화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교만 벗어나면 왕따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땡녀’라는 비하적인 단어 속에 포함된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왕따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된다. <과로사회> 저자 김영선 씨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왕따 현상처럼 다른 동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하는 사회, 그것을 바람직한 문화로까지 여기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조직 문화에서 ‘삶’이 갖는 가치는 초라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야근과 특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심리적·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과 삶의 불균형’이 고착화되면서 심리적 불안감은 가중되고, 여성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으로 출산율 감소와 고령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과로사회> 저자 김영선 씨는 특히 “조직 문화는 개선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프로그램들은 이용자들이 하소연만 늘어놓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면서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일터의 현실적 맥락에서 관한 이해를 높이려고 노력하면서 ‘국가 정책→기업 이해→조직 문화→개인 이해’로 이어지는 선순화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과로 사회’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것. “자의든 타의든 일상적인 야근이 조직을 향한 충성도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지는 현실”에선 ‘과로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아무리 소리 높여 지적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현실을 지탱시키는 조직문화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시간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것만큼 공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TV화면이나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최고 경영자를 소개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성실’ ‘근면’ ‘성공신화’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과로사회’ 신화에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를 벗어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과로사회> 저자 김영선 씨는 “장시간 노동을 질병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병에 관한 냉철한 인식이 과로사회를 해체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김영선 씨는 “장시간 노동관행을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아주 부드럽게 돌아가는 과로회사의 톱니바퀴 리듬 속에서 피곤에 찌들어 충혈된 눈으로 과로사의 순번만 기다리며 혹사당하는 실험용 쥐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책을 집어든 일부 독자는 <과로사회>가 ‘과로사회’를 극복할 대안이 없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저자 주장처럼 “‘과로사회’는 과로 사회 너머의 세계를 진지하게 그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시간 불 밝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과로 사회의 굴레를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 책에 공감할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과로사회>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직접 안내하지는” 않는다. 허나 과로사회의 문제점과 그것을 넘어설 기획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적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시간의 민주화를 통해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을 해체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다른 현재, 다른 미래,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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